이우현 OCI그룹 회장(왼쪽)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 실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이우현 OCI그룹 회장(왼쪽)과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 실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재계 순위 38위의 에너지·화학 기업 OCI그룹과 국내 5위권의 제약 기업 한미약품그룹의 통합 선언이 경영권 분쟁으로 번질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창업자의 아내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장녀인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실장이 주도한 그룹 통합 결정에서 배제된 장남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크게 반발하고 있어서다.

재계에 따르면 임종윤 사장은 개인회사인 코리그룹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한미사이언스와 OCI 발표에 대해 한미 측이나 가족으로부터 어떠한 형태의 고지나 정보, 자료도 전달받은 적 없다”며 “현 상황에 대해 신중하고 종합적으로 파악한 후 공식 입장을 표명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임 사장은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오너 일가의 독단적이고, 일방적인 경영으로 한미약품그룹의 경쟁력이 훼손되고 있다”며 “필요하면 가처분 신청과 이사회 구성 변경 등 최후의 수단을 언제든지 동원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차남인 임종훈 사장도 비슷한 입장으로 알려졌다. 임종윤 사장 측은 행동주의펀드, 사모펀드 등을 통해 대응 방안을 모색하면서 향후 임시이사회 소집 요구나 가처분신청 등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겠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다만 임종윤 사장은 한미약품 사내이사지만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는 속해 있지 않아 적법하게 이뤄진 이사회의 지분 교환 결의를 실효성 있게 막을 만한 방법은 많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임종윤 사장이 경영권 분쟁에 뛰어든다면 주요 주주인 차남 임종훈 사장,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월 11일 기준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임종훈 사장과 신 회장이 각각 10.56%, 11.52%를 보유하고 있다. 임종윤 사장(9.91%)이 두 사람과 연대하면 31.99%에 달한다.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14일 오전 서울 방이동 한미약품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임종윤 한미약품 사장이 14일 오전 서울 방이동 한미약품 본사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한국경제신문
이번 합병은 한국 기업사에서 유례없는 ‘이종(異種) 합병’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앞서 1월 12일 OCI그룹 지주사인 OCI홀딩스와 한미약품 지주사인 한미사이언스는 대주주 지분 맞교환 방식으로 두 그룹을 통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OCI홀딩스는 7703억원을 투입해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인수하고, 한미약품그룹의 송영숙 회장과 장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실장을 포함한 한미사이언스 주요 주주는 OCI홀딩스 지분 10.4%를 취득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OCI홀딩스는 한미사이언스의 최대주주에 오르고, 임주현 실장 측은 OCI홀딩스의 개인으로는 1대주주(10.37%)가 된다.

이번 통합 결정은 2023년 말부터 본격화해 한 달여 만에 일사천리로 협상이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우현 회장의 모친 김경자 송암문화재단 이사장과 임 실장의 모친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의 친분이 통합 논의의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각각 미술관을 운영하는 그룹사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번 통합 결정은 OCI그룹의 제약·바이오산업 진출과 한미약품그룹 오너일가의 상속세 재원 마련에 대한 고민 등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미약품그룹 오너 일가는 2020년 창업주인 고 임성기 회장의 별세 이후 5000억원이 넘는 상속세를 마련해야 했다. 이로 인해 지난 3년간 시장에선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매각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돼 왔다.

증권가는 OCI그룹과 한미사이언스 간 통합 시너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오의림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번 계약은 양사 간 니즈가 부합해 발생한 결과”라며 “향후 두 그룹 간의 시너지 발생을 위한 사업 전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재경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OCI의 현금 창출 능력을 기반으로 신약 개발에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점, OCI가 기존에 보유한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해 기존 내수 위주의 매출에서 수출 비중을 확대할 수 있다는 점은 기대해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OCI그룹은 이번 통합으로 제약·바이오라는 확실한 미래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이우현 OCI그룹 회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OCI의 주력인 화학·소재산업은 성장성이 낮아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면서 “석유·화학에서 제약·바이로 변신한 독일 바이엘의 길을 따라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송영숙 한미약품 회장은 12일 내부게시판에 '새로운 50년, 새로운 한미가 시작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한미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동반자와 함께 보다 크고 강한 경영 기반을 우선 마련해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한미그룹과 OCI그룹은 아름다운 동반자로서 공동 경영을 통해 소재·에너지와 제약·바이오라는 전문 분야에 각각 집중하면서도 시너지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