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희 슈메이커(홀라웨이브 대표)

30~40년 전 동네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수제화 가게는 이제 사라져 찾을 수 없는 추억이 돼 버렸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지만 그 시절 전국 10만이 훌쩍 넘던 수제화기능인들은 현재 손에 꼽을 정도로 명맥을 아스라이 유지하고 있다.

성수동 수제화 골목 역시 멋쟁이들의 방앗간이었던 옛 시절을 지나 지금은 신발이 아닌 다른 것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레트로 열풍에 옛 공간에 요즘의 트렌드가 섞여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가 되어 버린 것처럼 굳은살이 베긴 손으로 망치질을 하고 굵은 바늘로 한땀한땀 바느질을 이어 신발 한 켤레를 만들던 ‘수제화기능인’은 어느새 ‘슈메이커’라는 현대식 이름으로 바뀌었다.

오랜 시간을 거쳐 명맥을 이어왔다지만 그 흔한 자격증 하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무관심 속 그 자리를 지켜온 국내 손꼽히는 슈메이커를 만났다. 신발의 메카로 불리는 부산에서 김병희 씨를 만나 직업의 세계를 들어봤다.
김병희 슈메이커(홀라웨이브 대표)
김병희 슈메이커(홀라웨이브 대표)
슈메이커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슈메이커는 한 켤레의 신발을 처음부터 끝까지 핸드메이드로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보통 신발제조는 재봉 따로, 본드칠 따로, 기계 다루는 사람 따로 역할 분배가 되어 있는데, 이 모든 부분을 혼자서 맡아 신발을 만들어 내는 직업이에요.

보통 가죽을 활용해 핸드메이드 신발을 많이 만들잖아요.
일반적으로는 천연가죽을 많이 활용하죠. 하지만 가죽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소재를 활용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자동차 배터리 피복을 벗겨 만들거나 해양 폐기물, 쇼핑백, 비닐 등등 슈메이커들이 만드는 신발 소재는 무궁무진합니다. 물론 신발의 기능을 할 수 있는지 착화 테스트는 거쳐야 하죠.

“슈메이커, 천연가죽으로 신발을 만드는 이유···착화감이 뛰어나고 자체 에이징이 돼 멋스러움 연출 가능해”

천연가죽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뭔가요.
천연가죽이라고 하는 게 평생 벌판을 뛰어다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소들의 가죽이에요. 그런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면 신을수록 질이 들어 착화감이 뛰어나고 자체 에이징(aging)이 돼 멋스럽게 보이기도 하죠. 공장에선 단가도 안 맞고, 기계로 다룰 수 있는 가죽이 아니라 대량생산하기 어렵죠.

당연히 공장에서 찍어내는 신발과 비교하면 제작시간은 오래 걸리겠네요.
그렇죠. 아무래도 공정에서 소비되는 시간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어요. 특히 신발의 틀에 가죽을 씌워 모양을 만드는 라스팅 공정은 일일이 사람 손으로 당기고 망치로 때려 모양을 만들어 주거든요. 또 가죽의 두께나 질감에 따라 힘을 주는 부분이 달라져서 아주 견고한 작업입니다. 보통 이 공정에만 반나절 이상 걸립니다.

수작업으로 신발을 만드는 과정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사실 만드는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이긴 하지만 기본적인 핸드메이드 슈메이킹의 과정을 말씀리면 ▲패턴설계 ▲가죽재단 ▲가죽피할(가죽을 두께를 조정) ▲갑피(upper)제작(본딩, 재봉) ▲라스팅(라스트라는 구두골에 가죽을 싸고 망치질을 통해 신발의 형태를 잡는 일) ▲미드솔(중창) 가공 ▲아웃솔(밑창)가공 ▲사상작업(염색 및 광내기 또는 마무리작업)으로 진행됩니다.
"이 기술 배우려 수 년간 전국 발 품 팔며 돌아다녔습니다" [강홍민의 굿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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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신발 한 켤레를 만드는데 시간은 어느 정도 걸리나요.
천연가죽으로 제작할 땐 빠르면 3일 평균 5일 정도는 걸립니다.

수제화를 신어본 분들이 느끼는 장점도 분명할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사람의 손으로 모든 공정을 거쳐 만든다는 것이 특징이자 장점으로 꼽을 수 있죠. 기계는 절대 사람의 눈과 손을 따라오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조그마한 디테일 하나하나 정성스레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것이 수제화이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고객의 요구사항 또는 불편함을 반영해 제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죠.

반면 단점은 뭐가 있나요.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량생산·유통이 안 된다는 점이죠. 물론 수제화의 인식이 유럽이나 일본처럼 높아져 백화점에서 파는 명품구두보다 수제화 장인들의 신발이 인지도가 높아지면 좋겠지만 국내 수제화는 낮은 인지도로 인해 장인들이 사라지고 수익적인 부분이 떨어진다는 것이 단점이에요.

“유럽, 일본의 슈메이커는 장인으로 인정받는 문화가 이어져···반면 국내는 빠른 생산이 자리 잡아 장인 문화 쇠퇴해져”

우리나라에서 슈메이커는 인정받는 직업인가요.
사실 우리나라의 스타일은 빨리빨리 만들어내야 했던 산업생산국이었다 보니 화학적, 기계적으로 만들어 지는 신발의 종류가 인기를 얻고 성장했죠. 그렇다보니 핸드메이드 신발이 인정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반면 유럽이나 일본은 사정이 다릅니다. 그 나라에선 슈메이커들의 굉장히 존경받는 장인으로 대우를 받습니다. 오랜 전통과 역사가 이어져 온 그들의 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유럽식 또는 일본식 스타일을 저만의 스타일로 바꾸어 신발을 만들고 있죠.

유럽과 일본에서의 방식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신발을 만드는 방식의 차이라기보다 특장점이 다릅니다. 우선 유럽의 경우, 좋은 천연가죽이 많습니다. 특히 천연가죽을 생산하는 가문들이 있는데, 그들이 소를 키우는 이유는 고기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질 좋은 가죽 얻기 위해서죠. 와인처럼 좋은 가죽을 대를 이어 만드는 가문이 많다보니 슈메이킹의 역사와 전통이 그대로 보존돼 있어요. 일본 역시 오래 전부터 장인문화가 깃들여져 있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특히 대장장(쇠를 두드려 기물을 만드는 장인)의 역사가 오래돼 칼이나 바늘 등 수작업에 필요한 도구류가 굉장히 뛰어납니다. 자연스레 유럽과 일본의 슈메이킹 기법이 오랜 역사를 잘 보존하고 있는 셈이죠.

국내에서의 수제화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사실 핸드메이드 신발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그다지 높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는 뛰어난 기술을 보유했지만 계승이 되지 않고, 빠른 생산에 집중하다 보니 제작이 오래 걸리는 슈메이킹 제품은 빛을 보지 못하는 현실이 되고 있죠.

주문·판매는 어떤 식으로 하나요.
거의 주문 제작입니다. 홈페이지나 SNS 또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하는 형식이죠.

유튜브도 운영하시는군요.
신발제작 과정 영상을 올리거나 작업실 내 콘텐츠를 촬영해 올리고 있어요. 사실 저도 처음엔 슈메이킹을 배울 곳이 없어 굉장히 어려웠었어요. 자료를 찾아보고, 시도해 보면서 독학으로 많은 것들을 배웠는데, 이런 과정들을 누구나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에 영상을 만들게 됐습니다.
"이 기술 배우려 수 년간 전국 발 품 팔며 돌아다녔습니다" [강홍민의 굿잡]
김병희 씨가 참여한 핸드메이드 신발 전시회.
김병희 씨가 참여한 핸드메이드 신발 전시회.
고객이 원하는 디자인으로 제작이 가능하겠네요.
모든 부분이 커스터마이징 가능합니다. 키높이나 발 모양이 특이한 분들 역시 맞춤으로 제작이 가능하고요. 오래 신다보면 헤지거나 구멍이 나는 경우엔 수선도 가능합니다.

고객의 스타일을 반영하지만 슈메이커만의 색깔은 갖추고 있어야겠죠.
그렇죠. 전 옛 방식을 고수하지만 최신의 트렌드를 반영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죠. 옛것의 깊은 스타일과 요즘의 트렌드가 합쳐지면 최고의 결과물이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핸드메이드 신발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인가요.
모든 부분이 중요하지만 그중에서도 패턴설계와 라스팅 작업을 꼽을 수 있어요. 옷을 만들거나 기계를 설계할 때도 도안이 정확하고 잘 맞아야 결과물이 잘나올 수 있는 것처럼 신발도 마찬가지죠. 처음 설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지거든요. 라스팅 작업 역시 꼼꼼하게 잘 해야 발이 편하고 예쁜 신발이 나오기 때문에 매우 중요해요.

수작업이니 도구들도 꽤 필요할 것 같아요.
망치나 가위, 칼, 자, 그리고 재봉기, 그라인더, 고소리(라스트핀서) 등 굉장히 많은 도구들을 사용합니다. 도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신발을 만들기 위해선 적정 크기의 작업실이 있어야 해요.

슈메이커 관련 자격증이 있나요.
자격증은 없어요. 다만 신발류 제조 기능사라고 있는데, 이건 공장에서 생산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이에요. 민간 자격증도 못 본 것 같아요. 예전보다 배우려는 분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데 제도화가 되면 더 좋긴 할 것 같아요.
"이 기술 배우려 수 년간 전국 발 품 팔며 돌아다녔습니다" [강홍민의 굿잡]
신발 공방에서 수강생들이 한 땀 한 땀 신발을 만들고 있다.(김병희 씨 제공)
신발 공방에서 수강생들이 한 땀 한 땀 신발을 만들고 있다.(김병희 씨 제공)
슈메이커가 되려면 어느 정도 교육을 받아야 하나요.
정해진 기간은 없습니다. 개인차가 커서 평균치를 내기가 애매한 부분도 사실이고요. 손이 빠른 분들은 한 달 만에 한 켤레를 만들기도 하는 반면, 느린 분들은 6개월이 걸려도 완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신발 특성상 대칭이 아니고, 대부분 곡선으로 이뤄져 있어 숙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장비도 손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슈메이커가 되기 위해 꼭 갖춰야 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모든 게 수작업으로 이뤄지다 보니 늘 부상의 위험이 있어요. 저 역시 검지손가락 관절이 다 녹아 손가락 모양이 이상해졌는데요. 자칫 망치나 바늘을 쓰다가 손을 다치는 경우가 많아 성격 급한 분들은 오래가지 못하더라고요. 성격이 차분하고 느려도 오래갈 수 있는 그런 분이라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슈메이커 경력은 어느 정도 되나요.
벌써 15년 정도 됐네요. 그동안 제가 만든 신발이 한 500켤레는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동안 10여 회 이상 슈메이킹 전시회를 개최하면서 이 직업을 알리려고 노력했죠. 특히 이 업을 배우고자 하는 수강생들을 가르치면서 명맥이 끊이지 않게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기억에 남는 고객도 있겠군요.
예전에 저희 작업실 옆에 있던 중국집 사장님이 ‘무지외반증’을 앓고 있었어요. 발의 뼈 모양이 특이해 평생 구두를 한 번도 신지 못한 분이었는데, 제가 첫 구두를 만들어 드렸죠. 그러다 한 5년이 지난 뒤에 길거리에서 우연히 그 사장님을 뵈었는데, 그 구두를 신고 지인 결혼식을 가시더라고요. 기분이 좀 묘했어요.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슈메이커를 접하게 된 건 알바 때문이었어요. 서울 성수동 구두방에서 4년 정도 알바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의 인연으로 신발의 매력에 빠져 지금까지 하고 있는 셈이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기술을 배우고 저만의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있었어요. 쓰레기통을 뒤져가며 버려진 신발을 분해한 그 시간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다른 일을 하고 있었겠죠.(웃음)

현재 국내 활동 중인 슈메이커는 몇 명 정도 되나요.
글쎄요. 업계에 있는 사람마다 ‘슈메이커’로 구분 짓는 기준이 다 달라요. 제 기준으로 진짜 슈메이커는 한 10명 정도 있는 것 같아요.

이 직업의 장점 그리고 단점을 꼽는다면.
가장 큰 장점은 내가 신고 싶은 신발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죠. 그리고 누군가에게 세상에 단 하나뿐인 신발을 선물해 줄 수 있다는 것도요. 단점은 부상이 잦다는 거예요. 손은 물론 작업하면서 이곳저곳 많이 다치다 보니 가족들이 늘 안쓰러워하시죠. 그래도 완성된 신발을 볼 때의 성취감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거든요.(웃음)

수입이나 근무환경은 어떤가요.
예전에 비해 근무환경은 아주 좋아졌죠. 인식도 나아지고 있고요. 요즘에서야 슈메이커라고 하면 멋있게 보는 분들이 많아졌지만 원래는 구두장이로 불렸어요. 예전 선배님들은 일이 있으면 도급 일당을 받고 하루 작업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지 못했죠. 근무환경도 열악했고요. 그런 선배님들의 노력 덕분에 스튜디오를 꾸려 활동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수입도 제 또래 직장인들보다는 더 많이 버는 것 같은데요.(웃음)

슈메이커의 직업적 비전은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처럼 핸드메이드 신발이 백화점 명품 신발들보다 주목받고, 인정받을 수 있는 시기가 분명히 오리라 믿습니다. AI와 인공지능이 아무리 인간을 지배한다하더라고 사람이 가진 미세한 기술은 절대 이기지 못하거든요. 핸드메이드화의 트렌드가 오는 그 시점에 슈메이커라는 직업이 주목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기술 배우려 수 년간 전국 발 품 팔며 돌아다녔습니다" [강홍민의 굿잡]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