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가장 큰 닮은 점은 ‘만의 하나’를 무시했다는 점이다. 점잖은 말로 리스크관리를 안 했다. 1월 12일까지 확정 손실액이 1000억원(손실률 50% 안팎)을 넘은 홍콩 ELS는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데자뷔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2021년부터 만기 3년의 홍콩 ELS를 팔았다. 19조3000억원이나 된다. 이 중 10조2000억원이 상반기 만기다. 손실률을 50%로 잡으면 5조원가량의 원금손실이 불가피하다.
50% 손실이라니?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홍콩H지수를 맹신했다. 홍콩H지수는 2021년 이전 10여 년 동안 1만 안팎을 오르내렸다. 그해 2월엔 1만2229까지 올랐다. 금융회사들은 “중국이 망하지 않는 한 주가가 급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입을 권유했다.
그런데 웬걸. 정반대였다. 홍콩H지수는 2021년부터 내리막을 타더니 급기야 반토막(1월 17일 5130) 나고 말았다. “미·중 관계가 이렇게 악화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는 게 금융회사들의 하소연이다. ‘만의 하나’ 가능성을 외면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독일 국채금리가 -0.2% 아래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고 판매를 독려했다가 최대 98%의 원금손실을 기록한 2019년 DLF 사태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부동산 PF도 비슷하다. 이 사업은 평균 땅구입비 40%, 건축비 40%, 금융비용 10%, 마진 10%로 구성된다고 한다. 부동산경기가 좋던 시절, 시행사와 시공사는 경쟁적으로 부지 확보에 나섰다. 땅구입비가 껑충 뛰어 전체사업비의 60%를 넘어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분양가를 올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금융회사들은 PF대출(잔액 135조원)을 퍼주며 경쟁을 부채질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금리인상과 부동산 경기침체로 분양이 멈춰섰다. 이를 본 금융회사들이 발을 빼자 사업비의 95%를 대출에 의존해온 사업자들은 궁지에 몰렸다. 3조원이 넘는 PF대출을 쓴 태영건설 사태도 그렇게 불거졌다. “부동산 경기가 갑자기 식을 줄 몰랐다”는 게 PF사업자와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들의 설명이다. 몰랐다니? 부동산 경기의 급랭 가능성을 아예 무시했다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증권사들이 전전긍긍하는 일임형 랩과 신탁을 통한 돌려막기도 같은 경로를 거쳤다. 대개 장기금리는 단기금리보다 높다. 증권사들은 이걸 이용했다. 예를 들어 3년만기 채권을 연 6%에 사서 3개월만기 랩에 편입한 뒤 연 4%에 파는 식이었다. 만기불일치가 찝찝했지만 앉아서 2%포인트를 먹는 장사였다. 그런데 2022년 난데없이 ‘레고 사태’가 터졌다. 단기금리가 껑충 뛰어 역마진을 보는 상황에 몰렸다. 이걸 감추려고 돌려막기하다 들키고 말았다. 역시 ‘만의 하나’를 무시했다가 당한 경우다.
금융회사와 건설사 등이 ‘만의 하나’ 가능성을 애써 무시한 이유는 간단하다. 쉽게 돈을 벌기 위해서다. 이렇게 번 돈으로 한때 호황을 누렸다.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런데 그 대가를 다른 경제주체들이 왜 분담해야 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기 짝이 없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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