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현대차 사장은 왜 여의도로 갔나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고위직 출신 인사가 나란히 여의도 입성에 도전한다. 혐오 정치로 피로감을 느낀 국민들에게 합리적인 경제 논리로 다가가겠다는 복안이다. 양당은 총선 때마다 ‘경제통’ 영입 경쟁에 나섰지만 글로벌 기업의 C레벨 출신 인재를 여야가 동시에 영입한 건 이례적이다.

산업계 반응은 엇갈린다. 반도체, 전기차 등 핵심 산업을 둘러싼 글로벌 공급망 경쟁이 격화하면서 시장과 산업을 대변할 수 있는 목소리가 필요한 만큼 이를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다.
산업계는 환영vs부담 반응 혼재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칩스법이 통과되며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됐고 기업에 가장 큰 수출국이자 원재료국인 중국과의 관계 역시 촉각을 곤두세워야만 한다. 각국의 정치 현안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만큼 기업 입장에서는 산업을 이해하고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기업 규제완화가 속도를 낼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온다. 양당 입장에서도 운동권이나 법조계 출신이 아닌 인재를 내세우며 민생 경제에 대한 전문성을 강화하면서도 신선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

반면 기업 이미지가 정치적으로 활용될 수 있어 부담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공장 유치나 투자를 통한 산업 육성과 일자리 확보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표심을 얻기 위해 기업인을 내세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이 같은 논리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노동계나 법조계 인사보다는 기업인 출신 인사가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현대차 사장은 왜 여의도로 갔나
한동훈 제안 삼고초려 끝에 받아들여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월 22일 삼성 갤럭시 Z플립을 집어 들어 셀카를 찍었다. 이날 국민의힘에 입당한 고동진 전 삼성전자 사장을 환영하기 위한 세리머니였다. 고 전 사장은 한 위원장이 직접 영입했고 삼고초려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갤럭시 신화’를 만든 스타 최고경영자(CEO) 출신이다. 삼성전자에서 IT·모바일(IM) 부문장을 맡았고 사원에서 사장까지 오른 정통 삼성맨이다.

고 전 사장은 영입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에 대해 “4월 10일 이후에 ‘저는 없다’고 한 (한 위원장의) 말이 매우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며 “나는 과연 제2의 인생에서 저런 결심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고 결국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그는 첫 화두로 “청년의 미래”를 던졌다. 아울러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소프트웨어 산업 경쟁력 강화와 인력 양성 등을 정치인으로서 과제로 제시했다. 산업의 최전선에서 일했던 경험을 정치에 녹이겠다는 의지다.

고 전 사장의 총선 출마 방식은 미정이다. 당 안팎에선 비례대표 혹은 삼성전자 본사가 있는 경기 수원무 지역구 출마가 거론되고 있다.

고 전 사장이 당선될 경우 국회에 입성한 삼성 출신 중 최고위직이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엔지니어 출신인 양향자 국민의희망 대표는 상무를 지냈다.
삼성전자·현대차 사장은 왜 여의도로 갔나
고 전 사장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공영운 전 현대자동차 전략기획담당 사장의 입당 환영식이 열렸다. 공 전 사장 역시 여러 차례 입당 제의를 받은 끝에 이를 수락했다.

언론인 출신인 공 전 사장은 2005년 11월 현대자동차 전략개발팀 이사대우로 입사했다. 그는 해외정책팀 부서를 신설해 글로벌 연결망 구축에 앞장섰으며 2018년 12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사장으로 일했다. 그렇게 2022년 말 퇴임까지 18여 년을 임원으로 재직했다.

공 전 사장은 정치를 결심한 이유에 대해 “0%대 저성장 시대가 우려되는 현실 속 우리 경제가 악순환에 빠지지 않으려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을 발굴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기존 산업에 혁신의 옷을 입히고 경쟁의 판도를 바꿀 신기술에서 돌파구를 찾아 혁신성장의 생태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 민주당의 일원으로서 온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운동권·법조계 이미지 벗고 전문성 내세울 수 있어이들 외에도 여야는 기업인 출신 인재 영입에 총력을 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HD현대그룹 계열사인 HD현대로보틱스 대표이사를 지낸 강철호 로봇산업협회장을 1월 15일 영입했다. 그는 외교관 출신이자 로봇산업 전문가로 과학기술 분야 산업을 육성해 온 전문경영인 이력을 인정받아 과학 인재로 영입됐다.

민주당도 지난해 12월 14일 엔씨소프트 등에서 15년 동안 임원 생활을 한 이재성 전 엔씨소프트서비스 대표를 ‘2호 인재’로 영입했다. 그는 최근 정강·정책 방송 연설에서 민주당의 첫 주자로 나섰다.

정당의 정책 방향과 비전을 밝히는 방송 연설에서 민주당 1호로 정치 신인이 나선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영입 당시 비례대표가 아니라 고향인 부산에 출마하겠다고 말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통상 보수 텃밭이었던 부산은 민주당에 험지이기 때문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도 정치권은 재계 인사들을 대거 영입한 바 있다.
삼성전자·현대차 사장은 왜 여의도로 갔나
국민의힘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여성 벤처인을 위주로 영입했다. 효림산업 창업자인 한무경 의원, 지오씨엔아이를 설립한 조명희 의원, 테르텐을 설립하고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이영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비례대표로 당선됐다.

민주당에서는 네이버 부사장을 지낸 윤영찬 의원, 카카오뱅크 대표 출신 이용우 의원, 미래에셋대우 대표를 역임한 홍성국 의원이 합류하며 국회에 진출했다.

한 정계 관계자는 민주당이 기업인 출신 인재영입에 적극적인 이유에 대해 “민주당이 중대재해법, 노란봉투법 등 기업에 부담이 되는 법안 발의를 주도한 만큼 기업인 영입을 통해 반기업 이미지를 쇄신하고 전문성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기업인 영입에 총력을 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계가 기업인을 영입해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발굴하고 의미 있는 논의를 이어가기보다는 총선을 위한 이미지 싸움으로만 활용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홍성국 민주당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대표적이다. 미래에셋대우 사장 출신으로 지난 총선에서 세종시에 당선된 홍 의원은 ‘후진적인 정치구조’를 지적하며 이번 총선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지난 4년간 국회의원으로서 나름 새로운 시각으로 우리 사회를 바꿔보려 노력했다”며 “대전환을 경고하고 대안을 만드는 것이 내가 정치를 하는 목적이자 소임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정책 발굴을 위한 객관적인 주장마저도 당리당략을 이유로 폄하 받기도 했다고 꼬집었다.

홍 의원은 여야가 극렬 대립하는 정치 구조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언급하며 “내가 이기기 위해 남을 제거해야 하는 ‘제로섬’ 게임이다. 열심히 일하면 보상받는 민간 부문과는 달랐다”고 했다.

후진적인 정치구조에서 경제 전문가로서의 소신과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는 고백이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