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네이밍에 얽힌 흥미로운 사실들

[브랜드 인사이트]
제스프리 키위. 사진=제스프리 페이스북 캡처
제스프리 키위. 사진=제스프리 페이스북 캡처
‘Un:expected = Unique + Expected’.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지어본 적 있을 것이다. 가장 아끼는 인형, 월급 모아 산 자신의 첫 자동차, 집 앞에서 자주 마주치는 길고양이, 곰 모양 젤리를 닮기 시작한 소중한 생명에게. 이름이라는 것은 그 대상의 정체성을 결정짓고 이미지를 만들어 기억하게끔 한다. 그리고 누군가와 관계 맺게 한다. 그냥 길고양이가 지나갈 때와 그에게 이름을 붙여 나와 관계 맺은 ‘치즈’가 지나가는 것은 분명 다르다.

브랜드 네임은 브랜드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고객과 관계 맺게 한다. 중요한 것은 길고양이의 이름은 그저 고양이의 털 색깔을 닮은 치즈여도 좋지만 브랜드 네임은 ‘언익스펙티드(Unexpected)’하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Unexpected’는 예상 밖의 특이한 단어를 활용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고객이 당연히 기대하는 가치(Expected)에 브랜드만의 유니크(Unique)한 이야깃거리, 콘셉트를 더해 고민해야 한다는 뜻이다.

뭔가 다른 브랜드 네임은 이 ‘Un:expected’ 프레임으로 시작된다. 브랜드만의 유니크함이 어떻게 발견되고 네임으로 연결되는지 인터브랜드의 브랜드 네임 개발 사례로 알아보자.

열정과 활기를 주는 상큼한 맛, 제스프리

지금은 사과, 배, 딸기처럼 과일의 보통 명사로 쓰이는 키위. 하지만 ‘KIWI’도 ‘나이키, 애플, 테슬라’처럼 특정 기업의 상품에만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등록 상표, 즉 브랜드였던 적이 있다.

1900년대 초 뉴질랜드의 한 여교사가 중국에서 야생다래씨를 가져가 심기 시작했고, 그 열매를 ‘차이니즈 구스베리(Chinese Gooseberry)’라 불렀다. 뉴질랜드 농부들이 차이니즈 구스베리 재배에 성공하면서 잔털이 나 있는 자그마한 녹색 열매에 ‘키위’라는 이름을 붙였다. 뉴질랜드 토종새 ‘키위’와 닮았다는 이유였다. 키위는 독특한 맛과 선명한 녹색 과육으로 전 세계에서 유명해졌다.

하지만 브랜드 키위에 대한 관리 소홀로 뉴질랜드 농부들은 키위의 독점 사용권을 잃게 된다. 누구나 키위라는 이름으로 차이니즈 구스베리를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칠레, 미국 등 재배 기후가 적합한 다른 국가들이 키위를 재배해 같은 이름으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이에 뉴질랜드 키위 농가들은 차별화를 위해 하나의 기업형 조합을 설립하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공동 연구개발을 통한 품종 개량과 공동 마케팅이 진행됐고, 뉴질랜드 키위만의 우수성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 개발도 결정됐다.

브랜드 네임 개발을 위해 인터브랜드에서 가장 먼저 진행한 것은 키위에 대한 글로벌 인식 조사였다. 5대륙 10개국 이상에서 수천 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폭넓은 리서치가 이뤄졌다.

해당 조사는 ‘키위의 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키위에 얽힌 개인적인 경험이 있는가’, ‘뉴질랜드산 키위만의 특징은 무엇일까’와 같은 질문들로 구성돼 키위에 대한 경험과 감정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했다. 가장 공통된 결과는 ‘톡 쏘는 상큼함’. 많은 세계인이 뽑은 키위만의 특징이었다.

다음 단계로 ‘톡 쏘는 상큼함’이라는 매력을 잘 표현하기 위해 키위를 ‘톡톡 튀는, 상큼한 사람’으로 비유한 브레인스토밍이 진행됐다. 사람이라면 어떤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있을지, 라이프스타일은 어떠할지 다양한 상상들이 튀어나왔다.

개성 있는 외모와 긍정 기운으로 가득 차 주변인들에게 신선한 자극을 전달하는, 쾌활하고 건강한 캐릭터로 의견이 모였다. 이를 통해 뉴질랜드 키위를 관통하는 콘셉트는 ‘열정과 활기(Zestfulness & Liveliness)’로 결정됐다. 이 콘셉트는 키위라는 과일을 다른 농산품들과 차별화하는 기준이 됐다.

열정과 활기, 상큼함이 느껴질 수 있는 발음과 의미의 후보안들이 개발됐다. 최종 결정된 브랜드 네임은 ‘제스프리(Zespri)’다. ‘zest(열정)’와 ‘esprit(재치·활기·쾌활)’이 합성된 것으로 상큼한 맛이 영혼까지 기분 좋게 해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앞서 진행된 리서치 결과 및 콘셉트와도 일관성을 가지는 이름이다.

부드러운 유성음(z)과 강렬한 무성음(p)이 적절히 조화돼 ‘톡 쏘는’ 이미지도 언어적으로 표현했다. Zespri라는 이름에서 가장 주목성을 가지는 스펠링 ‘Z’는 ‘뉴질랜드(New Zealand)’의 ‘Z’를 연상시킴으로써 뉴질랜드산 키위만의 브랜드임을 잘 반영하고 있다.

키위에 브랜드를 붙인 것은 뉴질랜드가 처음이다. 키위라는 과일을 전 세계에 알린 뉴질랜드는 제스프리라는 브랜드를 통해 ‘키위는 제스프리’라는 공식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혼합현실(MR) 플랫폼 ‘마이크로소프트 메시’ 소개 영상의 한 장면. 사진=마이크로소프트 메시 유튜브 캡처
마이크로소프트의 혼합현실(MR) 플랫폼 ‘마이크로소프트 메시’ 소개 영상의 한 장면. 사진=마이크로소프트 메시 유튜브 캡처
인간 중심 기술, 마이크로소프트 메시

실내체육관 바닥이 갈라지더니 고래가 튀어 올라 헤엄을 친다. 손바닥 위에 코끼리를 올려 놓고 이리저리 관찰할 수도 있다. ‘혼합현실(MR)’이라면 가능하다. 애플이 애플워치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야심작 ‘비전 프로(Vision Pro)’도 혼합현실을 경험하게 하는 헤드셋이다.

혼합현실이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정보를 결합해 두 세계를 융합시키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사용자가 현실과 가상을 상호 작용할 수 있게 한다.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혼합현실에서 만나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어떨까.

마이크로소프트는 팬데믹이 발생하기 훨씬 전부터 차세대 협업 툴에 대해 연구해 왔다. 코로나19의 결과로 원격 근무가 급증하면서 혁신의 필요성은 더욱 대두됐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혼합현실에서 공동 작업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플랫폼을 개발했다.

인터브랜드는 마이크로소프트 내부에서 ‘Concept X’라고 불렸던 이 MR플랫폼이 경쟁 브랜드와 차별화될 수 있도록 브랜드 네임 개발에 착수했다.

브랜드 네이밍을 위한 핵심 인사이트는 MR 카테고리에 포함되는 디바이스, 플랫폼, 서비스 등의 경쟁 브랜드 네임들을 검토하면서 얻을 수 있었다. 대부분 마법과 판타지에 초점을 맞추거나 지나치게 기술 자체를 강조해 차가운 느낌을 줬다. 이는 어떤 가치를 전달하겠다는 명확성과 자신만의 차별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인간성이 결여돼 있는 것이기도 했다.

인터브랜드는 얼마나 미래지향적인가, 얼마나 환상적인 기술인가가 아닌, ‘Concept X’는 우리 삶에 얼마나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주목했다. ‘팔로우’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 아닌 직접 만나고 협업하는 것. 어디에 있든 진정으로 함께하는 것. ‘Concept X’가 만드는 경계 없는 세상은 모두를 환영하고 연결하며 함께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돕는다.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한다. 그리하여 결국 사람이 주목받는 미래를 만든다. 기술이 아닌. 이로부터 ‘Concept X’의 콘셉트는 ‘인간 중심(human-centric)’으로 규정됐다.

브랜드 네임의 발상은 마법을 발휘하는 듯 비현실적이거나 딱딱한 기술을 표현하기보다 실제적이어서 익숙하고, 설명적인 키워드들을 사용해 이뤄졌다. 사람이 존재하고 살아가는 현실에 집중한 표현이 오히려 차별성과 호소력을 높일 수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총 1500개 이상의 발상안 중에서 법률 검토 후에는 300여 개가, 언어적·문화적 부정 연상 검토 후에는 80여 개만이 살아남았다. 지난한 과정을 거쳐 최종 네임 후보안은 6개로 압축됐다. 선정된 브랜드 네임은 ‘Microsoft Mesh’. 메시(Mesh)는 ‘(사물이) 서로 맞거나 성공적으로 함께 작동하게 하다, 망사, 그물망’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 자연어다.

Mesh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요 요구 사항을 충족했다. 짧고 기억하기 쉬우면서 설명적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강력한 마스터 브랜드 전략을 가지고 있는데, ‘Microsoft Mesh’라는 브랜드 네임은 M의 반복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장점을 갖고 있기도 하다. 더불어 개발 과정 중에 제언했던 브랜드 약속 문구 ‘Here can be anywhere’는 브랜드 슬로건으로 채택됐다.

브랜드만의 유니크한 이야깃거리, 콘셉트는 고객에게 줄 수 있는 이점을 넘어 브랜드가 존재하는 이유를 말해야 한다. 제스프리는 상큼한 맛으로 사람들에게 열정과 활기를 전달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메시는 혼합현실 기술로 사람이 주목받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 당신의 브랜드는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
김서연 인터브랜드 한국법인 수석부장. 사진=인터브랜드 한국법인
김서연 인터브랜드 한국법인 수석부장. 사진=인터브랜드 한국법인
김서연 인터브랜드 한국법인 수석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