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순 요양보호사

예부터 내려오는 ‘기로전설(棄老傳說)’이라는 설화가 있다. 70살이 된 늙은 아버지를 그 시대의 풍습대로 아들이 지게에 지고 산중에 버리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함께 갔던 손자가 나중에 아버지가 늙으면 지고 온다며 그 지게를 다시 가져오려고 하자, 아들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 지성으로 봉양했다는 이야기다. 이후 ‘고려장(늙은 부모를 산속에 버려두었다가 죽은 뒤 장례를 지내는 풍습)’의 풍습이 없어졌다는 교훈적 의미를 담고 있는 이 이야기가 오늘날에도 적용이 된다.

삶의 고단함으로 부모를 버리고 자식의 도리를 하지 않는 이들의 소식을 종종 뉴스에서 접한다. 굳이 패륜의 영역까지 가지 않더라도 삶의 피폐함으로 부모를 돌보지 못하는 자녀들이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 됐다. 늙고 병든 부모를 돌보는 일이야말로 당연한 자식의 도리이지만 세상은 그 도리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노령화가 급속도로 빨라지면서 노인들의 삶 역시 중요한 사회의 숙제로 부각되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노령인구는 944만명, 10년 뒤에는 1,426만명으로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50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72년에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것이라는 통계청의 결과는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노령화의 속도가 급격히 빨리지면서 주목받는 직업군도 생겨나고 있다. 그 중 병든 노인들의 삶을 오롯이 지탱해주는 ‘요양보호사’다. 불과 수 년전만 하더라도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와주는 파출부 대체로 인식됐지만 최근에는 자녀들이 할 수 없는 부모의 봉양을 대신해주는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고 있다. 올해로 8년째 요양보호사로 활동 중인 이상순 씨를 만나 직업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상순 케어링 요양보호사
이상순 케어링 요양보호사
오늘도 어르신 돌봄케어를 하고 오셨죠.
“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을 케어하고 있습니다. 빨간날은 쉬어요.(웃음)”

요양보호사로 활동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올해로 8년째네요. 자격증은 2008년에 취득했는데, 그동안 묵혀 뒀다가 2016년 9월부터 시작했어요. 그때만 하더라도 교육만 이수하면 자격증을 주던 시기라 요즘과는 분위기가 달랐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캐나다에서 온 지인이 있었는데, 그 분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어요. 캐나다에서는 요양보호사가 각광받는 직업인데, 앞으로 한국도 노인복지가 중요한 산업으로 바뀌고, 요양보호사라는 직업도 뜰 거라고 귀뜸해 주셨죠.”

선뜻하겠다고 하신 거네요.
“처음엔 고민을 좀 했어요. 교회에서 여러 봉사활동을 해오긴 했었지만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은 당시에 생경했거든요.”

당시 교육은 어떻게 진행됐었나요.
“3개월 간 매주 5일, 일일 6시간을 교육받았어요. 노인분들 목욕 시키는 방법부터 식단, 응급처치, 놀이교육 등을 배웠죠. 정말 교육기간동안에는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열심히 배웠어요.”

실제 요양보호사는 어떤 케어서비스를 하게 되나요.
“오전, 오후 시간을 정해 집으로 방문하면 신체활동 지원부터 일상생활, 인지·정서활동 등을 지원하는 역할이에요. 이를테면 목욕이나 식사, 방청소를 하고 말벗도 돼 드리죠. 몸 상태가 좋은 분들은 주변 산책도 나가고요.”
이 직업이 없었다면 현대판 ‘고려장’ 일어나지 않았을까? [강홍민의 굿잡]
요양등급판정 기준 표&등급판정 절차
요양등급판정 기준 표&등급판정 절차
케어대상자는 어떻게 구분되나요.
“1등급부터 6등급(인지지원등급)까지 등급이 구분돼 있어요. 1~2등급의 경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분들이고, 5등급, 6등급(인지지원등급)은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들이에요. 제가 맡고 있는 어르신은 1등급 환자인데, 움직이지를 못하셔서 방문하면 우선 밤에 잘 주무셨는지를 체크하고 기저귀를 갈아드려요.”

"케어대상자 1~6등급(인지지원등급)까지 구분…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건보공단 소속 직원이 직접 방문해 체크해 결정"

등급판정은 어디서, 어떻게 하는 건가요.
“우선 장기요양인정신청을 하게 되면 간호사,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등으로 구성된 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속 장기요양 직원이 직접 방문해 체크합니다. 신체기능부터 인지기능, 행동변화 등 총 52개 항목을 전문가들이 체크하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심의 및 판정을 하게 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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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보호사는 어떻게 신청인을 배정받게 되나요.
“보통 각 지역별 센터에서 배정을 해줘요. 아무래도 경력에 따라 센터에서 잘 판단해 배정을 해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전 이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케어링 도봉점에 소속돼 있어요. 일을 해보니 센터와 호흡도 중요하더라고요.”

초창기 요양보호사로서 일하실 때와 지금 비교해보면 달라진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많이 달라졌죠. 요양보호사가 국가 자격증이지만 당시엔 파출부인줄 아셨어요. 케어 대상자 집에 가면 이것저것 시키고 집안일에 김장까지 해달라는 분도 계셨죠. 그렇게 시키시면 안된다 말씀 드렸지만 통하지가 않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초반엔 너무 힘들어 살이 8~9kg이 빠질 정도였으니까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요양보호사에 집안일에 김장, 심부름 등 온갖 허드렛일 시키는 곳 많아…인식 개선됐지만 아직 부족한 부분 있어"

지금은 매뉴얼이 정해져 있죠.
“요양보호사의 업무 범위가 정해져 있어요. 그리고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홍보도 하고 있고요. 이를테면, 애완동물을 돌봐 달라거나 가족들 식사를 챙겨달라거나 김장을 해달라는 부탁이 굉장히 많아요. 근데 그런 일들은 우리의 업무가 아니거든요. 초반엔 어르신 방청소를 하다 보면 다른 가족분이 오서는 “여기는 왜 안하느냐? 여기도 청소해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어요.”

많이 힘드셨겠군요.
“처음엔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었어요. 그만둘까도 생각했었는데, 보호자인 가족들이 한사코 말리시더군요. 사실 가족들이 부양해야 하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아 저희가 도움을 드리고 있는 거잖아요. 서로 배려하는 자세가 중요하죠.”

간혹 서로 맞지 않는 경우에는 요양보호사를 교체할 수도 있나요.
“그럼요. 양쪽 모두 교체가 가능해요. 다른 센터의 얘길 들어보면 물건이 없어졌다고 요양보호사를 의심하는 경우도 있고, 난동을 피워 경찰이 출동한 적도 있었대요. 그런 일이 있으면 몸도 몸이지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죠.”

쉽지 많은 않군요. 그럼에도 일 하면서 보람을 느낀 적도 있을 것 같아요.
“수년 전 명절이었어요. 어르신의 아드님이 의사였는데, 늘 어머니를 뵈러 밤에 다녀가셨어요. 명절 전 아침에 가봤더니 웬 봉투가 하나 놓여져 있길래 봤더니 ‘엄마를 하루라도 더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편지가 있었죠. 그 편지를 받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보호자분들이 우리를 믿고 있다는 걸 느꼈죠. 그 일을 계기로 일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면서 일한답니다.”

보통 요양보호사들이 은퇴 후 제2의 직업으로 많이 도전하시잖아요. 연령대도 50~60대가 많으신 걸로 아는데, 체력적으로 부담될 때도 있겠어요.
“어르신 케어부터 집안일, 산책도 나가야 하니까 힘들 때도 있지만 봉사하는 마음을 가지니 크게 힘들진 않아요. 개인적으로 비위가 아주 약한 편인데, 어르신들 기저귀를 간다거나 음식물을 치울 때 더럽다는 생각이 전혀 안 들어요. 몇 년 째 하다 보니 이 일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말씀하신대로 봉사정신이 중요한 것 같네요. 그것 말고 요양보호사가 갖춰야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건 어르신을 공경하고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해요. 상대를 존중하고 유대관계를 먼저 형성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하죠. 그래야만 상대방도 마음을 열 수 있거든요. 자격이라면 요양보호사 국가자격증을 취득하고, 교육·실습과정을 거쳐야 하죠. 합격한 후에도 센터에서 주기적으로 교육을 받아야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어요.”
이 직업이 없었다면 현대판 ‘고려장’ 일어나지 않았을까? [강홍민의 굿잡]
요양보호사가 소속돼 있는 기관마다 차이점이 있나요.
“센터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속한 케어링은 요양보호사 자격증 취득부터 도와줍니다. 이론교육부터 현장실습을 지원하고, 취업까지 이어질 수 있게 도와줘요. 직영으로 관리하는 요양보호사 교육원에는 10년 이상 경력의 교수진들이 배치돼 있기도 하고요. 올해 1월 기준 4700명의 수료생을 배출하기도 했어요. 무엇보다 케어링은 타 센터에 비해 시급이 좀 더 높아요.(웃음)”

센터마다 책정시급이 다르군요. 얼마나 높나요.
“저희는 케어 환자 등급별로 시급이 나눠지는데요. 1급은 1만4000원, 다른 급수는 1만3000원 등으로 지급되고 있어요. 올해 최저시급이 올랐지만 그보다 한 15% 정도 더 높죠. 들어보니 여기 대표님이 돈을 많이 줘야 돌봄 서비스가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신대요.(웃음)”

공휴일을 제외하고 매일하시니 수입도 꽤 되겠네요.
“전 오전시간에만 하는데 월 200만원 초반대(비급여 포함) 정돈 됩니다. 하루 두 타임을 하는 분들은 더 많겠죠.”

요양보호사를 해보시니 어떤 직업 같으세요.
“음···나라를 살리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노인인구가 갈수록 많아지는데 가족이 부양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지고 있어요. 요양보호사 한 명이 한 가정을 살리고 그 가정이 사회를, 국가를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분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도전하실 분들에게 자부심을 가지시라는 말씀 드리고 싶어요. 우린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거든요.(웃음)”

강홍민 기자 khm@hankyung.com
[사진=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