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LG에너지솔루션 충북 오창에너지플랜트 1공장에서 직원들이 ‘2170 원통형 배터리’ 완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충북 오창에너지플랜트 1공장에서 직원들이 ‘2170 원통형 배터리’ 완제품을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LG에너지솔루션
고속성장을 거듭해온 배터리업계의 실적 성장세에 제동이 걸렸다.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전기차 산업이 일시적으로 수요가 정체되는 ‘캐즘(Chasm)’ 국면에 진입하면서 배터리업계가 2023년 4분기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삼성SDI는 지난해 4분기 매출 5조5648억원, 영업이익 3118억원을 기록했다고 1월 30일 밝혔다. 매출은 전년 대비 6.7%, 영업이익은 36.5% 감소했다. 삼성SDI가 아직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수혜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삼성SDI는 이날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전기차 수요 성장률이 조금씩 둔화하면서 배터리 공급 과잉 우려도 불거지고 있으나 올해 공장 가동률을 유지하고 캐파(CAPA·생산능력) 증설도 계획대로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경기침체와 더불어 캐즘 현상으로 전기차 성장세 둔화가 우려되고 있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2025년 실시 예정인 유럽의 이산화탄소 규제 등 친환경 정책의 영향으로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대응을 가속화함에 따라 하반기부터 성장세가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박종선 삼성SDI 중대형전지 전략마케팅 부사장은 “올해는 2025년 이후 본격적인 전기차 성장 시기에 본격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신규 거점 캐파 증설을 차질 없이 추진하는 한편, 기존 라인 생산 효율을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박 부사장은 이어 “지난해 하반기 신규 가동한 주력 공장인 헝가리의 경우 90% 초중반 수준 가동률을 유지하고 있다”며 “헝가리 라인을 포함해 높은 가동률을 유지함으로써 매출 성장과 수익성 극대화를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삼성SDI는 올해 1분기 중대형 전지의 신규 제품의 판매 확대를 추진할 계획이다. 자동차 전지는 고용량 프리미엄 배터리 P6 제품의 양산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매출 확대를 추진하고 수익성도 개선해 나갈 방침이다. ESS(에너지저장장치) 전지는 에너지밀도와 안전성을 강화한 일체형 ESS 시스템인 ‘SBB(삼성배터리박스)’의 확판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삼성SDI는 2023년 6월 독일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전시회에서 ESS 신제품 ‘삼성배터리박스(SBB)’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진=삼성SDI
삼성SDI는 2023년 6월 독일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전시회에서 ESS 신제품 ‘삼성배터리박스(SBB)’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사진=삼성SDI
성과급 반토막, 사장도 연봉 일부 반납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4분기 매출 8조14억원, 영업이익 3382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3%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42.5% 증가한 수준이지만 시장 컨센서스(5877억원)를 43.5% 밑돌았다. 영업이익에서 IRA상 공제액(2501억원)을 빼면 4분기 영업이익은 800억원대에 그쳤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업황 둔화로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성과급도 대폭 축소했다. 지난해 기본급의 870%를 성과급으로 지급한 LG에너지솔루션은 올해 성과급을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했다. 이에 따라 올해 성과급을 기본급의 340~380%, 전체 평균으로는 362%로 책정했다.

SK온은 당초 지난해 4분기로 목표했던 흑자 전환에는 실패했지만, 적자 폭은 축소했다. SK온은 지난해 1분기 3449억원, 2분기 1322억원, 3분기 861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4분기에는 186억원까지 영업 손실 규모를 줄이며 출범 이후 분기 기준 영업 손실 규모를 역대 최소 수준으로 낮췄다. 이석희 SK온 사장은 1월 30일 서울 종로구 SK온 관훈캠퍼스에서 취임 후 첫 임원 간담회를 열고 흑자 달성 시까지 연봉의 20%를 자진 반납하기로 했다.

이 사장은 “현재 미국 금리인상 랠리와 글로벌 경기침체에 따른 시장 성장 속도 둔화라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2024년은 ‘턴어라운드 원년’이라는 막중한 소명 속에 CEO와 임원이 사활을 걸고 위기 극복에 앞장서서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임원들에게는 오전 7시 출근을 권장했다. 대내외 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글로벌 톱3 배터리 기업 도약을 위한 발판을 다지고, 올해 연간 흑자전환을 이뤄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발 ‘IRA 리스크’도 비상

배터리의 전방산업인 전기차 시장은 성장 둔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에서 전기차 판매율이 둔화하고 있고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전기차 생산 목표를 연기하거나 축소하고 있다. 리튬 등 주요 메탈가 하락으로 배터리 평균판매단가(ASP)가 하락하고 완성차 업체들이 보수적으로 재고를 운영하면서 배터리업계의 실적이 악화했다.

문제는 이 같은 부진한 실적 흐름이 올해 1분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높아진 금리와 경기 둔화 우려 등의 영향으로 약세로 돌아선 전기차 수요가 이른 시일 내에 회복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며 “특히 높아진 전기차 재고가 정상화하기까지 적어도 1개 분기 이상 시간이 소요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배터리 셀 수요 감소세는 불가피하다”고 내다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외부 우려기업(FEOC) 세부 규정 발표로 전기차 보조금 지원 대상 차량이 지난해 43종에서 올해 19종으로 줄었다. 완성차 업체들의 배터리기업에 대한 AMPC 공유 요구도 거센 상황이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전기차 우호적인 기존의 정책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부담 요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IRA를 가리켜 “역사상 가장 큰 세금 인상”이라고 비난하며 폐기까지 언급해왔던 만큼 재집권한다면 IRA 발효 후 미국에 많은 투자를 한 한국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영향이 불가피하다.
SK온의 서산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 제품. 사진=로이터
SK온의 서산공장에서 생산된 배터리 제품. 사진=로이터
폼팩터 다변화·차세대 기술로 위기 돌파

배터리 업계는 올해 경영환경도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고 제품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프리미엄 제품인 하이니켈(High-Ni) NCMA 제품 역량을 높여 경쟁 우위를 지속하고, 중저가 시장 공략을 위한 고전압 미드 니켈(Mid-Ni) NCM, LFP 배터리 기술 개발을 가속화할 방침이다.

소형 전지 사업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원통형 신규 폼팩터인 46시리즈 생산을 시작한다. ESS 사업 또한 지난해 말 생산을 시작한 LFP 제품의 시장 공급을 본격화하고 통합 솔루션 사업도 확대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SK온은 각형 배터리에 이어 원통형 배터리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테슬라가 에너지 용량과 출력을 높여 주행거리를 늘린 4680형(지름 46mm, 길이 80mm) 원통형 배터리 양산에 성공하면서 BMW, 볼보, 스텔란티스 등도 적용을 추진 중이다.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1월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4’ 현장에서 “원통형 배터리 개발이 꽤 많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파우치형 배터리만 양산하는 SK온은 완성차 업체의 다양한 폼팩터 수요에 부응하고자 각형 개발에 나서 시제품 생산에도 성공했다.

여기에 원통형이 더해지면 ‘3대 폼팩터’를 모두 만드는 업체가 된다. 2022년 약 108GWh 수준이었던 글로벌 전기차용 원통형 배터리 시장 규모는 2025년 241GWh, 2030년 705GWh까지 늘어나며 연평균 27%씩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SDI는 차세대 배터리로 꼽히는 전고체 배터리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목표 시점을 2027년으로 설정하고 본격적인 생산 준비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삼성SDI는 지난해 말 조직개편에서 중대형전지사업부 내에 ‘ASB 사업화 추진팀’을 신설하며 차세대 배터리 리더십 확보에 나섰다. 박종선 부사장은 “지난해 4분기 전고체 배터리 샘플을 고객사에 공급했다”며 “고객사에서 성능과 수명 테스트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받으면 더 빨리 배터리 성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