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진보가 정권을 잡으면 왜 아파트값은 급등할까 [EDITOR's LETTER]
“광채가 그녀를 비춘 것은 분명 아니었으나 베르사유 왕비는 더욱 유쾌한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의 강림이었다. 생기와 환희로 가득 차 샛별처럼 반짝거리는 그녀를. 오 혁명이라니.”

‘보수의 원조’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에 칼이 겨누어지는 것을 보고 한 말입니다. 그는 프랑스혁명에 대해 “유럽의 영광은 소멸했다”고 한탄했습니다.


당연히 누군가 나서 이를 반박했겠지요. “버크는 깃털을 가여워하면서 죽어가는 새는 잊고 있다. 버크는 프랑스의 낡은 정권이 자행한 끔찍한 짓을 감추는 비극적 그림을 스케치했다.” 이 말의 주인공은 진보의 아버지로 불리는 토머스 페인이었습니다.

버크와 페인의 설전은 광대한 분야에서 이뤄졌고, 이를 모아놓은 ‘위대한 논쟁’이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현재 세상의 모든 보수와 진보가 그들의 후예들입니다. 프랑스혁명 후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그 후예들은 곳곳에서 다양한 문제에 대해 논쟁 중입니다. 경제만 보면 전통적인 논쟁의 주제인 정부의 역할, 세금 등이겠지요.

한국에는 논쟁이 되는 특수한 이슈가 하나 더 있습니다. 부동산입니다. 한국인들의 삶을 들었다 놨다 하는 부동산을 둘러싼 전통적 논쟁에서 양 진영의 차이는 극명합니다. ‘진보는 규제, 보수는 부양’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뇌구조의 차이로 봐도 당연한 결과입니다. 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말합니다. “진보의 뇌는 본능적으로 약자에 대해 배려하지 않는 것에 혐오를 느끼고, 보수의 뇌는 질서를 파괴하는 행위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부동산에 대입해 보겠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의 피해자는 경제적 약자입니다. 집 사기가 더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진보 정부의 뇌’는 혐오감을 느끼고 규제하려 나서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보수는 이런 규제로 인해 시장의 질서가 흐트러졌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합니다. 보수 정부는 이를 바로잡기 위해 부양책을 쓰는 것도 뇌과학으로 설명 가능합니다.

그러나 함정이 있습니다. 부동산 정책의 결과는 항상 의도와 반대로 나타났습니다. 진보가 정권을 잡고 규제를 하면 아파트는 폭등했습니다. 보수가 정권을 잡고 부양책을 동원해봤지만 부동산은 침체를 벗어나기 쉽지 않았습니다. 2000년대 ‘진보 집권=부동산 급등, 보수 집권=부동산 침체’라는 아이러니한 명제는 법칙처럼 작용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금리, 성장률, 전세가격, 인구구조 변화 등 다양한 변수들을 살펴봤습니다. 두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선 시장에 정면으로 맞서는 정책은 실패했습니다. 큰 강물의 흐름을 따라 배가 흘러갈 때 노를 아무리 반대방향으로 저어도 배의 항로를 거꾸로 바꿔놓지 못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항해의 목표는 배가 암초에 부딪히지 않고, 물결이 잔잔하는 곳까지 유도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또 다른 사실은 시간의 미스매칭입니다. 부동산 정책의 효과는 당장 나타나지 않습니다. 특히 공급대책은 더합니다. 빠르면 3~5년, 늦으면 10년이 지나야 아파트 입주가 시작됩니다. 한 정부의 정책은 대부분 다음 정부에 효과 또는 숙제로 넘어가게 됩니다.

국내에서는 딱 한 번 그 방향과 타이밍이 모두 일치했던 적이 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입니다. 한국 경제의 급성장기였습니다. 정부 초기 아파트 가격은 폭등했습니다. 전세가격도 올라 가족이 자살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노태우 정부는 강력한 투기 근절책을 내놨습니다.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 등 토지공개념 3법이 그때 나왔습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주택 200만 호 공급 계획을 내놨습니다. 현재 일산, 분당을 보면 알 수 있듯 수요자들이 원하는 지역에, 원하는 평수의 아파트를, 시세의 반값에 공급했습니다. 노태우 대통령 임기 중 분당 입주가 시작되면서 시간의 미스매칭 문제도 해결했습니다.

물론 노태우 정부도 시장의 큰 흐름을 되돌려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마지막 해 집값을 잡았지만 5년간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70% 에 이르렀습니다. 수혜자는 정권을 이어받은 김영삼 정부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안정된 부동산 시장을 물려받아 큰 숙제 하나를 덜고 금융실명제, 하나회 해체 등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다른 정책을 펼칠 수 있었습니다.

노태우 정부 부동산 정책은 정책의 미학을 보여준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시장의 흐름에 대한 장기적 대응, 산발적 대응이 아닌 심리를 한번에 돌려놓을 수 있는 압축적인 대응, 채찍과 당근의 결합 등이 그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부동산 시장은 하락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많이 나옵니다. 아무리 부양책을 써도 방향을 돌려놓기는 쉽지 않다고도 합니다. 주택 수요자 입장에서는 시장의 큰 흐름을 보며 철저히 준비한다면 현재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는 시점에 기회가 한번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국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