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비즈니스는 1년에 두 번 합본호를 냅니다. 추석과 설날 2주치를 한꺼번에 낸다는 말입니다. 기자들은 이때 약간은 숨을 돌릴 여유를 갖습니다. 물론 온라인 기사도 써야 하기 때문에 마냥 맘이 편할수 만은 없지만요. 이 정도로는 좀 아쉽다는 독자분들이 계셨습니다. 그래서 한경비즈니스 편집진은 올해 썼던 기사 가운데 ‘시간의 간섭’을 받지 않는 기사들을 추려봤습니다. 공부해두거나 읽어두면 상식이 되거나, 트렌드를 이해할 수 있는 기사입니다. 이를 한곳에 정리했습니다. 연휴 기간 영상에서 벗어나 활자의 세계로 눈을 돌린 독자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편집자 주>
직장이 밀집한 서울 종로의 한 횡단보도에서 시민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직장이 밀집한 서울 종로의 한 횡단보도에서 시민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용문점액(龍門點額)’. 물고기가 급류를 힘차게 타고 협곡을 넘으면 용으로 변해 하늘로 날지만, 넘지 못하면 문턱에 머리를 부딪혀 이마에 상처가 난 채 하류로 떠내려간다는 중국 전설이다.

청룡의 해인 갑진년 새해 한국 경제를 표현하는 키워드로, 새로운 도약을 해내거나 중장기 저성장 늪에 빠질 수 있는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꼭 알아둬야 할 2024년 경영 키워드 6개를 뽑았다.


1. L자형 저성장

한국 경제는 2024년 뚜렷한 경기 반등 없이 ‘L자형’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나왔다. LG경영연구원은 ‘경영인을 위한 2024년 경제 전망’에서 올해 한국 경제가 소비와 투자 부진, 더딘 수출 회복 등에 따라 2년 연속 1%대 성장률에 그치며 ‘L자형 장기 저성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구원은 2024년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8%(상반기 1.9%, 하반기 1.7%) 수준으로 제시했다. 이는 올해 연간 성장률 추정치(1.3%)보다 0.5%포인트(p) 높지만, 한국은행의 전망치(2.1%)와 비교하면 0.3%p 낮은 수준이다.

과거 경제위기 상황을 제외하면 처음으로 2년 연속 2%에 못 미칠 뿐 아니라 잠재성장률(2.0%)에도 미달하는 수준이다.

높은 물가와 금리 수준이 이어지면서 가계 소비가 위축되고 늘어난 재고 부담으로 기업 설비투자도 부진해 전반적인 경기 회복세가 미약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세계경제 성장률 역시 2023년(2.9%)보다 낮은 2.4%로 전망됐다.

2. 생성형 AI

2023년은 오픈AI의 챗GPT로 촉발된 생성형 인공지능(AI)을 둘러싼 글로벌 빅테크들의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생성형 AI 활용 분야가 전 산업계로 확대되고 있는 만큼 2024년에도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더욱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분석기관 IDC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생성형 AI 시장 규모는 1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며, 2027년에는 143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MS 오피스 제품에 생성형 AI를 탑재한 ‘MS 365 코파일럿’을 출시했다. 구글은 2023년 2월 AI 챗봇 바드를 공개한 데 이어 12월 차세대 다중언어모델(LLM) 제미나이(Gemini)를 선보였다.

생성형 AI의 발전과 광범위한 AI 기반 애플리케이션 사용에 따라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최적화된 반도체 디바이스 구축이 필수가 됐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AI 시장의 성장세에 따라 글로벌 AI 반도체 매출도 2023년 534억 달러 규모에서 2024년 671억 달러로 25.6%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2027년에는 AI 반도체 매출 규모가 1194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3. 긴축 경영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와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따라 2024년에도 긴축 경영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조는 최근 정기 임원 인사에서도 확인됐다.

삼성전자, SK그룹, LG그룹 등이 임원 승진 규모를 예년보다 축소했다. LG디스플레이는 2019년 이후 4년 만에 파주·구미 공장의 만 40세 이상 생산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다. 2023년 3분기까지 6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한 가운데 인력 운영 효율화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는 1월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 박람회인 ‘CES 2024’와 갤럭시 언팩 행사를 앞두고 출장자를 최소화하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10월부터 ‘다운턴 태스크포스(TF)’를 꾸린 SK하이닉스는 임원·팀장 예산을 각각 50%·30% 감축했다.

최근엔 지주회사인 SK(주)를 비롯해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SK그룹 주력 계열사가 팀장을 대폭 줄였다. 그룹의 핵심 사업 분야인 통신·석유화학·배터리 분야 부진이 지속되고 그룹 전체적으로 저성장 추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조직 효율화와 내실 다지기로 선제 대응에 나선 것이다.

2024년 경영계획을 짠 기업 10곳 중 8곳은 2023년보다 허리띠를 졸라맬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전국 30인 이상 기업 204곳의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임원을 대상으로 ‘2024년 기업 경영 전망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의 약 80%가 2024년 현상 유지(44%)와 긴축 경영(38.3%)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고 답했다. 긴축 경영 시행 방안으로는 전사적 원가절감(50%), 인력운용 합리화(24.1%), 신규투자 축소(16.7%) 등이 제시됐다.
서울 중구 서린동 SK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중구 서린동 SK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4. 구조조정

고물가·고금리 장기화로 인한 소비위축으로 직격탄을 맞은 유통업계에는 구조조정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영화관 롯데시네마와 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는 2023년 11월 말부터 근속 3년 차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신청받았다.

롯데마트는 전 직급별 10년 차 이상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GS리테일도 1977년생 이상 장기 근속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11번가는 창사 이래 처음 희망퇴직에 나섰다. 쿠팡을 제외하고 이커머스업체 대부분이 적자인 상황에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직구 플랫폼까지 한국에 상륙하며 출혈 경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들도 구조조정의 칼날을 피하지 못했다.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매출 부진 전망 속 비용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며, 구글은 3만 명에 달하는 광고 판매 부문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출의 상당 부분을 광고에 의존하고 있는 구글이 검색엔진과 유튜브 등의 광고에 생성형 AI 기술을 도입하면서 기존처럼 많은 직원이 필요 없게 됐기 때문이다.

5. 프렌드쇼어링

공급망 측면에서 2024년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프렌드쇼어링’과 ‘알타시아’다. 바이든 정부가 미국 기업의 생산기지를 자국 또는 인접국으로 옮기도록 하는 리쇼어링(Reshoring)과 니어쇼어링(Near-shoring)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유럽연합(EU)과 일본 등 여러 국가는 우방국 또는 동맹국끼리 공급망을 구축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을 택하고 있다. 지역과 동맹국 중심의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고자 하는 현상은 2024년 더욱 심화되며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6. 알타시아

미·중 갈등 심화 속에 코로나19, 전쟁 등으로 공급망 재편 압력이 가중되면서 중국을 대신할 국가나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알타시아가 부상할 전망이다. 알타시아는 ‘얼터너티브(Alternative)’와 ‘아시아(Asia)’를 조합한 신조어로, 새로운 경제 공급망 생태계를 의미한다. 기술력이나 물류, 자원, 투자정책 등 부문별로 나눠볼 때 여러 국가가 모인다면 중국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경제발전 수준이 높은 한국·일본·대만·싱가포르, 인구가 많은 인도·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 아세안(ASEAN) 국가인 베트남·말레이시아·태국·필리핀·캄보디아·라오스·브루나이 등 14개국을 알타시아 국가로 주목했다.

14개국의 전체 노동 인구는 14억 명으로 중국(9억5000만 명)을 추월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인구 역시 중국보다 많다. 글로벌 기업들은 알타시아로 생산시설 이전에 나서고 있다. 애플은 생산시설을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있으며, 삼성전자는 베트남과 인도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