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문제, 한국 사회 뒤흔드는 최대 이슈로 떠올라
정부와 의료계의 강대강 대치...최악의 의료공백 우려도 제기
의과대학 정원 증원 문제가 한국 사회를 뒤흔드는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정부가 19년째 3058명으로 묶여 있던 의대 정원을 당장 내년부터 2000명 늘리기로 하자 의사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의사 수는 곧 생명과 건강에 직결된 사안인 만큼 의료계뿐 아니라 온 국민의 관심이 의대 증원에 쏠려 있다. 돈과 명예 모두 가진 직업이다 보니 이번 기회에 의대에 도전하겠다는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많아 학원가도 난리다.
정부 정책에 대한 찬성 여론은 높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의대 증원에 찬성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의 80% 이상이 의대 증원을 지지한다. 야당도 의대 정원 확대라는 총론에는 찬성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아직 의대 증원이 정부의 계획대로 이뤄지리라고 낙관하긴 힘들다. 풀지 못한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의료계의 동의’라는 큰 산이 당장 눈앞에 놓여 있다. 또 의대 정원 확대가 목표로 하는 필수의료, 지방의료 정상화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 경로는 제시되지 않고 있다.
정부와 의사들이 4년 만에 다시 극한의 갈등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슈는 그때와 같다. ‘의대 정원 확대’.
총선용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의사 수를 늘리는 것에 대해 많은 국민들은 동의한다. 바글거리는 병원에서 긴 시간을 기다린 씁쓸한 기억과 함께 의사가 없는 지방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 소아과 오픈런 사태 등이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근거가 되는 가장 중요한 지표는 OECD 국가 중 인구 1000당 가장 적은 의사 수다.
과거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다 의사의 반발에 물러났던 야당도 찬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다르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오랜 기간 빼앗기기만 했다’는 잠재적 피해의식이 근저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의대 정원 확대만으로는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등 부족한 의사를 채워줄 수 없다는 현실적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OECD 최고 수준의 평균수명, 진료 횟수 등도 이들이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근거다.
이 같은 인식차로 ‘의정 갈등’은 폭풍전야다. 대한의사협회(의협),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애초부터 의대 증원에 반대했던 단체들은 점점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정부는 “총선 전에 의대 정원을 발표하겠다”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며 갈등은 파국으로 향하고 있다. 2000명이란 숫자의 함정“늘어나는 정원에 맞춰 교육이 잘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신찬수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에게 정부의 의과대학 증원 계획에 대한 의견을 묻자 돌아온 답변이다. KAMC는 전국 40개 의과대학 학장들이 회원으로 있는 단체다. 어떻게 교육을 해야 ‘더 좋은 의사’들을 양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 위해 만들었다. 의대 교육 현장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이들의 모임인 셈이다.
신 이사장 역시 서울대 의대에서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원래 의대 증원 찬성론자였다. 그러나 정부가 의대 증원 규모를 2000명으로 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신 이사장은 “(정부의 증원 규모가) 어안이 벙벙할 만큼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수준이었다”며 “좋은 의사를 배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교육 환경이 중요한데 정부의 급격한 증원 계획이 공개된 이후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일선 교수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며 현장의 반응들을 전했다.
최근에는 신 이사장처럼 기존에 의대 증원에 찬성했던 이들마저 정부에 반기를 들기 시작했다. 2000명이라는 파격적인 규모의 증원을 결정하자 큰 실망감을 드러내며 정부 정책의 수정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기세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런 의료계의 움직임에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반드시 의대 증원을 이뤄내겠다는 목표다. ‘의대 정원은 돌이킬 수 없다’는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까지 나왔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가 사상 최악의 의료대란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고령사회 2000명 증원이 필요하다는 정부2000명이라는 숫자는 다른 모든 의료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따라 앞으로 늘어나게 될 의료 수요 문제 해결을 위해선 파격적인 의대 증원밖에는 답이 없다고 판단해 2000명 증원이라는 안을 내놨다. 그것도 당장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인력난에 허덕이는 지역·필수의료 분야의 의료인력 유입에 도움이 되도록 의료 수가 인상 등을 위해 1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10조원을 어떤 분야에 얼마씩 투자할지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현재까지 정부가 확정한 것은 2000명이라는 의대 정원 숫자가 전부인데, 이 하나만을 놓고도 증원 수가 많냐 적냐를 놓고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국가 간 비교를 하면 한국에 의사가 부족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활동 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2021년 기준 인구 1000명당 2.6명이다. 멕시코 2.5명에 이어 밑에서 둘째며 OECD 평균 3.7명의 70% 수준이다.
그러나 대다수 의료계 관계자들은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1000명당 의사 수가 OECD 평균보다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의사가 부족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거리 곳곳마다 병원이 들어서 있어 몸이 아픈 환자들이 언제든 쉽고 적절하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환경이 구축됐다는 얘기다. 더욱이 한국은 고령화만큼 심한 저출산을 겪고 있다. 빠르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인수 수를 감안하면 부족한 의사 수는 굳이 의대 증원을 하지 않아도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의대 증원에 찬성했던 의료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2000명이라는 숫자를 발표하자 불만이 터뜨리고 있다. 의대 증원 규모가 당초 예상했던 수준을 크게 웃돌았기 때문이다.
의대 학장 모임인 KAMC는 의대 증원이 발표되기 전 정부에 이와 관련한 적극적인 조언까지 했다. 교수의 수나 강의 시설 등을 고려해 의학계에서 수용 가능한 증원 규모는 350명 정도가 적절하다고 제안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했던 의대 정원 확대 숫자다. 그러나 정부가 이를 무시하고 2000명이라는 숫자를 발표하자 실망한 분위기다. KAMC 관계자는 “정부가 전혀 우리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다”며 “의대 정원에 대해 그동안 공감해왔지만 2000명 증원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숫자”라고 강조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정부 편이었던 ‘아군’들마저 적으로 만든 모양새”라며 “정부와 의료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질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도 고려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가 말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란 의사들의 집단행동 움직임에 따른 의료 공백 현실화다.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의료계 관계자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최근 논란이 된 ‘정부는 절대 의사를 이길 수 없다’는 노환규 전 의협 회장의 글은 아무 근거 없이 나온 얘기가 아니다.
벼랑 끝 대치…의료 공백 현실화?그동안 발생했던 정부와 의료계 싸움 결과를 보면 이런 주장이 결코 헛소리가 아님을 엿볼 수 있다. 보수와 진보 가릴 것 없이 과거 정권에서도 의료부문 개혁이나 의대 증원 등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 의사들의 집단행동 우려 때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들이 의료 현장을 떠나면 심각한 ‘의료 공백’ 사태가 빚어질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필요한 진료를 받지 못해 피해를 입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우려해 항상 정부가 의사들이 집단행동에 들어가기 전 ‘백기’를 들고 마는 결말이 일반적이다. 정부 역시 의견을 굽히지 않아 의료계가 실제 파업에 돌입한 적도 있지만 이 싸움에서도 정부가 완벽하게 이긴 적은 한 번도 없다.
의료계가 정부 정책에 반발해 실제로 총파업에 돌입한 경우는 지금까지 총 세 번이다. 이 중 두 번은 의료계의 완승이었다.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의료기술 발전과 국민편의 증대를 위해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추진했으나 의료계의 집단 휴진이 이어지며 정부는 물러섰다.
코로나19가 덮쳤던 2020년에도 의사 부족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문재인 정부도 의대 정원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전공의들이 대거 의료 현장을 이탈하며 의료 공백이 커졌고 결국 계획을 철회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겠다는 ‘9·4 의정 합의’까지 체결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부가 승리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2000년 의약분업 때는 ‘무승부’를 기록한 역사가 있다. 지금처럼 의사는 진료와 처방만을, 약 조제와 판매는 전문 약사가 하는 의료 시스템이 구축된 배경은 당시 추진했던 정부의 의약분업 정책을 결국 의료계가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의사가 병원에서 진료뿐 아니라 약 처방과 조제까지 모든 것을 처리했다.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정부가 조제권을 약사에게 넘긴다고 하자 당연히 의사들을 ‘왜 밥그릇을 빼앗냐’며 반발했고 총파업에 돌입했다. 의료계 역사에 기록될 만큼 큰 혼란이 빚어졌다. 정부는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의약분업 시행 대신 의대 정원 10% 감축이라는 선물을 안겨주는 대가를 치렀지만 결국 의약분업을 통과시켰다. 이번에는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현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예고했듯이 의사 면허 박탈 등 그 어느 정권보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엄정 대응을 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하면 2020년과 같은 타협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 교수도 “정부 정책과 대응 방침이 확고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불법 집단행동에 들어가도 오래 가긴 힘들 것”이라며 정부 뜻대로 의대 증원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런 정부의 강력한 대응 방침을 걱정한다. 의료계와의 갈등이 더욱 심각해져 사상 최악의 의료대란이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정부와 의료계의 전쟁이 어떤 결말로 이어지든 후폭풍은 간단치 않을 전망이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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