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하반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2.8%에 그쳤다. 전국 수련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충원율은 올해 25.5%였다. 앞으로 소아과 의사는 더 찾기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매년 1000만 명의 환자가 찾는 응급실도 비상이다. 올해 응급의학과 전공의 충원율은 79%까지 떨어졌다. 전문의 이탈현상이 가속화되는 와중에 전공의까지 미달되면서 의료 공백은 더 커졌다.
필수진료과 의사가 부족한 이유는 명백하다. 일은 고되고 진료 난이도는 높은데, 보수는 적고 지원은 미미하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매년 2000명씩 늘려서 이를 해결하겠다고 했다. 여기에 수가 조정, 보상 확대, 정부 지원을 통해 필수의료에 생긴 공백을 메우겠다는 계획이다.
의료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필수의료 공백이 ‘절대적인 의사 수’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논쟁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격화하고 있다.
의대생 ‘2000명’ 증원을 둘러싼 치열한 싸움의 쟁점은 무엇인지 살펴봤다. Q. 의사 진짜 부족한가? 의견이 갈린다. 부족하다는 논리가 있고 충분하다는 논리도 있다.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자료가 OECD 통계다. OECD에 따르면 한국은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가 2.6명으로 OECD 평균(3.7명)에 훨씬 못 미친다.
한의사를 제외하면 2.0명으로 최하위다. 의사 수는 가장 적은 축에 속하면서 OECD 평균 3배 수준으로 많은 병상 수(인구 1000명당 12.8개)를 보유하고 있다. 이 병상 수는 코로나19 사망률을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분석이다.
의사가 충분하다는 진영에서는 OECD 평균이 아니라 한국과 의료시스템이 비슷한 일본(2.6명)이나 미국(2.7명)과 비교하면 한국의 의사 수가 적지 않다고 말한다. 자료에 인용된 38개 나라 중 국가가 의료를 책임지는 나라들과는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또 의료 접근성과 이용률은 세계 최고이고, 국민건강지표(기대수명, 주요 질환별 사망률 등)도 최상위권이라는 통계도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는 근거라고 말한다.
의사들의 말처럼 병원 접근성이 높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국민 1인당 외래진료를 받은 횟수는 연간 15.7회로 OECD 평균(5.9회)의 2.6배다. 전문가들은 이 횟수가 ‘기형적’이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이 논리를 반박하는 주장도 있다. 일명 ‘3분 진료’다. 의사를 만나는 시간이 3분을 넘지 않는다. 의사 수 부족으로 제대로 된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진료 시간을 늘리는 정부의 계획은 오랜 기간 ‘시범 사업’에 그치고 있다.
이 논쟁에서 또 다른 중요한 쟁점은 시간이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다. 인구수는 줄지만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의료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부는 관련 연구 역시 대폭 증원의 당위성을 과학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다. 2035년엔 약 2만7000명(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50년엔 약 2만2000명(한국개발연구원)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국책 연구기관의 결과가 대표적이다. 실제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초고령사회에서 의료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대해 의사단체에선 “의사의 연간 근무일수를 현실보다 적게 잡고 기술 발전에 따른 업무 효율성을 무시했다”며 해당 보고서가 오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통계를 활용한 연구에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서울대 간호대학 김진현 교수의 연구에서는 2050년에 이르면 의사가 2만8279명이 부족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는 2035년 2만7232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연구들은 당장 올해부터 2000명씩 늘려야 한다는 근거로 작용했다.Q.증원은 공감, 2000명은 무리다 “의사 증원에는 공감한다. 2040년까지 의료 수요 대비 의사 수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2000명’이라는 증원 숫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현재 정원의 65%를 단번에 늘리면 부작용이 더 많을 수 있다.”(박은철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
박은철 교수는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한국보건행정학회장, 연세대 의과학연구처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조사연구실장 등을 지내며 보건의료 정책에 정통한 인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후보 시절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 보건바이오의료정책분과 위원장을 맡으며 보건의료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런 박 교수도 정부의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2000명이라는 숫자에는 난색을 표했다. 현재 정원의 65%에 해당하는 인원을 갑자기 늘려버리면 의료교육의 질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이들의 공급을 받쳐줄 대학병원, 종합병원의 고용이 같이 늘어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박 교수는 “지금으로서는 의대 정원 확대가 불가피하지만 1명도 안 늘리고 이대로 가더라도 2051년부터는 다시 공급이 의료 수요를 넘어서고 2070년에는 의사의 32%가 잉여인력이 된다”며 “의대 최대 증원 수를 매년 1000명으로 잡고 5년마다 추계를 보며 이를 재조정해야 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지금부터 2000명씩 증원하는 것도 모자란다는 의견도 있다.
김윤 서울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앞으로 의사가 부족해지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의사가 부족하다”며 “지금 우리나라에서 부족한 의사 수는 동네의원 의사 1만5000~2만2000명, 종합병원에 부족한 의사 수 1만2532명을 더하면 모두 2만7500~3만9500명이 부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Q. 의사 수만 늘리면 해결될까? 의료계가 반발하는 이유는 또 있다. 수가 조정, 필수의료 인력·인프라 확충 및 역량 강화 지원 등을 이행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 중 당장 내년부터 확실하게 이행될 수 있는 건 의사를 매년 2000명씩 늘리겠다는 계획뿐이다.
수가의 현실화, 지방 의료에 대한 지원 등 재정 논의가 필요한 사안은 정책 방향만 제시됐을 뿐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의사들은 필수의료 공백의 본질적인 문제가 ‘숫자’가 아닌 ‘구조’에 있다고 지적한다. 필수의료를 기피할 수밖에 없는 의료제도를 고치지 않고 의사 배출만 늘리면 효과는커녕 부작용만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지적되는 문제는 건강보험 수가다. OECD 자료에 따르면 ‘GDP 대비 건강보험 수가’는 미국을 100으로 했을 때 OECD 평균이 72에 해당한다. 한국은 48로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보다 의료수가가 낮은 나라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 러시아 등이었다.
한국은 병원이 진료비를 마음대로 책정할 수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시민들로부터 걷은 보험료로 진료비 일부를 각 병원에 지불한다. 이때 병원이 달라는 대로 다 주는 게 아니라 의료행위별로 수가를 매긴 뒤 이에 맞춰 급여를 지급한다.
그런데 머리를 열어 뇌혈관질환을 치료하는 개두술 등 난이도가 높은 수술은 수가에 비해 인건비 등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알려져 있다. 병원 입장에서는 수술을 할수록 적자가 늘고, 의사 입장에서는 수술 난이도와 업무 강도도 높은 영역이다.
신경외과 전공의는 부족하지 않은데 개두술을 할 줄 아는 의사가 없는 것이다. 개두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현재 종합병원당 1~2명뿐이다. 의사 1~2명이 365일 24시간 대응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의사 수가 가장 많은 서울아산병원에서조차 간호사가 수술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 서울 사립대학병원 소속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는 “한국은 검사비가 비싸서 검체나 영상 등 장비로 일하는 분야의 수가는 높은 반면 수술 난이도가 높고 의사를 ‘갈아 넣는’ 영역의 수가는 낮은 만큼 응급이나 야간 등 필수의료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적은 노동으로 큰 수입을 얻는 걸 포기하고 어려운 노동으로 적은 수입을 얻는 쪽을 택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의사들 주장의 핵심은 근무 여건을 개선하고 보상을 늘리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수가를 무작정 올리면 의사가 필수의료가 아닌 개원의로 빠질 수 있는 만큼 응급, 야간 등에 대한 성과와 보상 체계를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박은철 교수는 “안과나 영상의학과는 대학이나 종합병원 봉직의(페이닥터)와 개원의의 연봉 차이가 2배가 넘는다”며 “수술이나 진료의 난이도와 상관없이 봉직의들의 월급이 평준화돼 있는 것이 문제다”고 짚었다.
또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직군이 야간과 응급을 싫어하는 만큼 야간과 응급에 대한 보상을 50%가 아니라 2배 이상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응급환자와 중환자를 보는 의사를 크게 늘릴 수 있도록 전문의 인력 기준을 높인 병원에 보상이 주어지게 하면 필수의료 기피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Q. 정부, 증원만 외쳤을까? 정부는 의사들의 부담과 낮은 처우에 어느 정도 공감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의대 정원 증원과 함께 ‘필수의료 패키지’를 들고 나왔다. 여기에는 수가 인상이나 사법리스크 완화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그동안 의료계가 필수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두 가지 해법이다.
정부는 2028년까지 10조원 이상을 투입해 필수의료 분야 수가를 집중 인상하기로 했다.
우선 진료량에 따라 보상을 받는 행위별 수가제를 대폭 개편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행위별 수가제에 칼을 댄 건 인기과와 기피과의 불균형이 진료 ‘횟수’로 보상하는 제도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진료량보단 의료의 질과 성과에 따라 달리 보상하는 식으로 필수의료 보상을 강화한다. 높은 업무 강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필수의료 항목의 상대 가치 점수를 집중적으로 높여 수가를 올리는 방식이다. 정부는 이를 분만과 소아 분야에 우선 적용할 방침이다.
난이도, 위험도, 숙련도, 대기·당직시간 등을 고려한 ‘공공정책수가’와 지역 의료에 부여하는 ‘지역 수가’도 신설하고 불가피한 의료사고에 대한 사법 부담을 덜어주는 의료사고처리특례법도 제정하기로 했다. Q. 의대 증원, 건강보험 재정 부실로 이어지나? 의료계는 의사 수를 늘리면 의료비가 늘어나 오히려 건강보험 재정 부실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의료시장은 서비스 공급자인 의사와 수요자인 환자 간 정보 비대칭성이 큰 만큼 공급이 수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유인수요’ 가설에 기반한 주장이다.
의사 수를 늘리면 경쟁이 치열해지고 ‘과잉 진료’가 늘며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의료정책연구원은 이 같은 이론에 기초해 의대 정원이 1000명 늘면 2040년 건보 지출이 17조원 더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이에 대해 “유인수요론은 1970년대에 나온 낡은 이론”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2012~2022년 의료비 증가 요인을 분석한 결과 해당 기간 건보 급여가 적용된 의료비 연평균 상승(7.9%) 요인 중 수가 인상(2.6%), 고령화(2.1%), 약가 상승(1.6%)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의사 수 증가가 포함된 ‘기타’ 요인은 0.7%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실손보험 확대, 의료기술 발달, 의사 수 증가 등이 함께 들어있다. 의사 수 증가로 인한 요인이 아무리 많아도 0.7% 미만이라는 것이다. 의사 수 증가는 별다른 영향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Q. 보험료율 인상할까 건보 재정 건전성에 우려를 표하는 쪽도 설득력이 있다. 의료계는 “정부가 필수의료 패키지에 담은 방향성은 공감이 가지만 재정적인 부분 등 현실을 고려했을 때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입장이다.
실제 건보 적립금은 추가적인 지출이 없이도 고갈 위기에 빠져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건보 재정 당기 수지는 올해 2조6402억 원 흑자에서 2026년 3072억원 적자로 돌아선다.
당기 수지 적자는 2027년 7895억원, 2028년 1조5836억원으로 가파르게 증가한다.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폭증, 필수의료·요양급여 등 건보 재정 지출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추세로 볼 때 재정 효율화와 수입을 늘리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다면 적자 폭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이 흔들리면서 보험료율 인상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의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모이고 있다. 건강보험료율은 2023년 7%를 넘었다. 법에서 정한 보험료율을 상한인 8%까지 올려도 2030년에는 그동안 쌓였던 누적준비금이 소진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에서는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정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건강보험 수입은 크게 보험료 수입과 국고지원금, 기타 수입으로 분류된다. 정부는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를 국고지원금으로 내야 한다.
그런데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이 최근 9년간 법정 기준치보다 14조3668억원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나라살림연구소). 건강보험 국고지원율은 지금까지 모든 정부에서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
건보 재정이 벼랑 끝에 서면서 정부는 우선 과잉 의료비를 해소해 구조적인 해결책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대표적으로 급여 진료를 받으러 간 환자에게 비급여 진료를 끼워서 권유하는 혼합진료를 금지한다. 도수치료, 백내장 수술 등 과잉진료 우려가 큰 ‘비중증 비급여’의 경우 급여 항목에도 건강보험 수가가 지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Q. 또 다른 함정이 있다?의대 정원 확대를 논하는 과정에서 제외돼 있는 문제 하나가 공공의료다. 한국은 OECD 회원국에서 공공의료 비중이 가장 낮은 국가다. 2022년 기준 공공의료 기관은 전체 의료기관의 5.2%에 그쳤다. 병사 수 기준으로는 8.8%, 의사인력 기준으로는 10.2%로 모두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이다. OECD 평균은 기관 수 기준 55%, 병상 수 기준 72%에 달한다. 의료도 시장에 맡기고 있다고 알려진 미국도 기관 수 기준 23.9%에 달한다.
공공의료 부족은 의료문제 해결을 위해 민간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거나 민간 영역의 의사들을 쥐어짤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서도 공공병원 설립 등 공공의료 확대에 대한 정책은 빠져 있다.
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은 지난해 한 토론회에서 “기존 의대는 공공의료 핵심 역량 배양이 부족했고 대학병원의 진료를 위한 인력 양성 목적에 그쳤다”며 “기존 국립의대 공공적 개혁과 더불어서 공공의대 설립은 필요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일부 학자들은 “정부가 민간으로부터 병원도 빌려쓰고 의사도 빌려쓰는 1977년 만들어진 한국의 의료 렌털 체계는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며 “이 구조를 극복하지 않으면 의대 정원을 늘려도 정부가 원하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