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그룹은 지난 1월 회생절차를 밟고 있던 에이치엔아이엔씨(HN Inc, 옛 현대BS&C)의 최종 인수예정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회생절차를 밟고 있던 국일제지, 엘아이에스를 포함해 최근 1년간 세 곳을 품었다.
우오현 회장은 M&A 시장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그간 법정관리를 받던 기업들이 우 회장의 손을 거치면서 부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우 회장이 이들 기업의 정상화를 통해 또 한번 M&A 성장 신화를 만들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 1년간 법정관리 기업 3곳 인수
에이치엔아이엔씨를 인수한 곳은 SM그룹 계열사인 태초이앤씨다. 태초이앤씨는 우오현 회장의 차녀인 우지영 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에이치엔아이엔씨는 범현대가(家)에 속한 중견 건설사로 시공능력평가 133위다. 노현정 전 아나운서의 남편인 정대선 사장이 지분 81.3%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정대선 사장의 부친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4남인 고(故)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이다.
에이치엔아이엔씨는 아파트 브랜드 ‘헤리엇’과 상업용 건물 브랜드 ‘썬앤빌’ 등을 운영해왔지만 부동산 경기침체와 고금리,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사태로 자금난을 겪으며 결국 지난해 3월 법인회생(법정관리)을 신청한 바 있다. 2022년 말 기준 매출액은 2974억원, 영업손실은 643억원이다.
산업용지 제조업체 국일제지는 SM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라마이더스가 1005억원에 인수했다. 국일제지는 2018년 이후 경영 상황이 나빠져 2023년 누적 순손실 145억원을 기록했다. 이 회사는 3억5000만원 규모의 단기 은행 어음을 막지 못해 지난해 3월 법정관리에 들어갔었다.
SM그룹은 국일제지 인수로 제지업 진출을 노리고 있다. 업계에선 국일제지 자회사 국일그래핀이 탄소 신소재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티케이케미칼, 남선알미늄 등 SM그룹 계열사와 시너지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엘아이에스는 우 회장의 삼녀인 우명아 씨가 지분 100%를 보유한 경영컨설팅업체 신화디앤디가 3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하며 이 회사 최대주주(89.45%)에 올랐다. 디스플레이 장비 기업인 엘아이에스는 2011년 코스닥 상장 후 신규사업으로 진출한 마스크사업 실패로 회생에 들어갔다.
세 곳 인수가 모두 완료되면 올해 자산 총액이 늘며 재계 순위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M그룹의 공정자산은 16조4620억원으로, 공시 대상 기업집단 30위를 기록하고 있다. 1년 사이에 자산 규모가 2조8000억원가량 증가하며 전년보다 재계 순위가 4계단 올랐다. 기업소생술로 대기업 반열 올라
SM그룹의 성장사는 M&A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 회장이 35세이던 1988년 광주에서 창업한 삼라건설을 모태로 적극적인 M&A로 제조, 해운,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군으로 확장하며 61개 계열사를 거느린 30대 그룹으로 성장했다.
우 회장의 M&A 원칙 중 하나는 업종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이다. 평소 “사업 영역이 폭넓어야 경제 상황 변화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사업 영위가 가능하다”고 강조해왔다. 한 우물만 파다 깊이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한 기업이 많고 지금 잘된다고 10년 뒤에도 잘된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한다.
건설업에서 기틀을 갖춘 SM그룹은 2004년 진덕산업(현 우방산업)을 시작으로 M&A 전략을 통해 조양, 벡셀, 남선알미늄, 경남모직, 티케이케미칼, 우방, 대한해운, SM상선 등 계열사들을 잇달아 인수해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우 회장의 M&A 전략은 부실기업을 싼값에 인수해 경영을 정상화시켜 우량기업으로 만드는 것이다. “영원히 좋은 기업도 영원히 나쁜 기업도 없다”는 게 지론이다. 2017년 한 인터뷰에서 “새로 법인을 세우고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나가던 기업이 일시적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어 죽어버리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며 “사람도 아프면 병원에 가 치료를 받아 살아나는 것처럼 기업도 위기를 극복하고 생존할 수 있다면 그만큼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의미에서 1997년 외환위기는 우 회장에게 절호의 기회였다. 경기침체기는 기업가치가 저평가되는 M&A의 적기다. 우 회장은 당시 유동성 위기를 맞은 건설사들이 수도권의 알짜 택지를 헐값에 풀자 하나둘씩 인수해 수도권으로 진출하는 발판으로 삼았다.
2004년 적자 52억원을 낸 진덕산업은 SM그룹에 인수된 지 1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워크아웃 대상 기업이던 벡셀은 SM그룹에 인수되기 전에 적자 21억원을 냈지만 1년 만에 흑자 99억원을 거뒀다.
외환위기 때부터 10년 동안 워크아웃 절차를 밟아왔던 남선알미늄의 경영 정상화도 이뤄냈다. 섬유산업 1세대 기업인 티케이케미칼은 2002년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상장폐지됐으나 SM그룹이 인수한 뒤 재무구조가 개선돼 2011년 4월 코스닥에 재상장됐다.
2013년에는 당시 해운업계 4위 대한해운을 인수하며 해운업에 손을 뻗었다. 2016년 대한상선, SM상선(한진해운 미주·아주 노선)을 잇따라 인수해 해운업을 확장했다. 특히 370억원에 인수한 SM상선은 그룹 영업이익 과반을 책임지는 캐시카우로 거듭났다. 우 회장이 6조~7조원대 대어 HMM 인수전에 뛰어들 수 있었던 것도 SM상선이 보유한 현금창출력 덕분이다.
“파산은 과다 부채 탓…자기자본비율 35~50% 확보”
차입금에 의존하지 않고 최대한 자기자본으로 M&A를 진행한다는 경영 철학을 갖고 있다. 지난해 우 회장은 HMM 인수가를 4조5000억원대로 산정하고 인수에 큰 관심을 보였으나 영구채 전환물량이 딜에 포함돼 매각예정가가 크게 높아지며 비용부담이 커지자 계획을 철회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한때 잘나가던 기업들이 한순간 파산하는 이유는 과도한 부채 때문”이라며 “대출의존도가 낮은 기업은 절대로 망할 이유가 없다. 불황기에 과도한 부채로 파산했던 기업들을 반면교사 삼아 재무구조를 보다 탄탄히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향후 신규 투자를 진행할 때 자기자본비율을 최소 35%에서 50%까지 확보해 재무구조의 건전성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우 회장은 과거 인터뷰에서 “M&A란 집을 짓는 것과 같다. 각 사업은 합쳐 놓았을 때 시너지가 나는 것이지, 개별로 하면 별것 아닌 게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집을 지을 때 벽돌, 시멘트, 철재 등 건설 재료를 조합해 집을 완성하는 것처럼 M&A의 본질이 여러 기업을 인수해 더 큰 시너지를 창출하는 데 있다고 보는 것이다.
1953년생인 우 회장이 70대에 접어들면서 향후 승계 구도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본처와 사실혼 배우자 사이에서 1남 4녀를 두고 있다. 장녀 우연아 전 삼환기업 대표, 차녀 우지영 태초이앤씨 대표, 삼녀 우명아 신화디앤디 대표, 사녀 우건희 코니스 대표, 막내 우기원 SM그룹 해운부문장(부사장)이다.
우건희 대표와 우기원 부사장은 사실혼 배우자의 자녀다. 1992년생인 우 부사장은 유력한 후계자로 꼽힌다. 지난해 9월 사실혼 배우자가 별세하면서 고인이 보유했던 삼라(12.31%), SM스틸(3.24%), 동아건설사업(5.68%)의 지분을 두 자녀가 조만간 상속받게 된다. 이에 따라 우 부사장이 누나들과 달리 그룹의 양대 지주사 격인 삼라(12.31%)와 삼라마이다스(25.99%)의 주식을 모두 확보하게 되면서 후계 구도가 더욱 확고해질 전망이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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