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는 마카오, 필리핀, 싱가포르와 경쟁하기 위해 보유 현금을 활용할 방안을 찾고 있다.

강원랜드 카지노 전경 / 강원랜드
강원랜드 카지노 전경 / 강원랜드
올 들어 주식시장에 ‘저PBR 테마주’가 떴습니다. 한국 기업 주가가 유독 저평가됐다는 의미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말이 있는데요. 이걸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지 손보겠다고 나서니까, PBR이 낮은 종목 주가가 크게 오르고 있는 겁니다.

PBR은 주가순자산비율, 시가총액을 기업의 순자산으로 나눈 것을 말하죠.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400조원이라고 가정하고 반도체 공장과 특허, 본사 건물 등등을 다 팔았더니 800조원이 나왔다고 한다면요. PBR은 400 나누기 800, 그래서 0.5가 되는 겁니다. PBR이 낮다는 건 당장 회사를 청산한다 해도 주주들이 가져갈 게 많다는 의미이고요. 그래서 시장에선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된다면 우선 저PBR 종목부터 시작될 것이란 공감대가 있는 것 같아요.

강원랜드도 저PBR 테마주 가운데 하나로 꼽히죠. 이 회사의 시가총액, 그러니까 기업가치는 2월 21일 기준 3조8000억원가량인데요. 이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금융자산만 무려 2조7000억원에 달해요. 이날 기준 강원랜드 주가가 1만7000원 선인데요. 당장 보유한 현금성 금융자산을 주주들에게 돌려만 줘도 1만2000원 넘게 나온다는 의미입니다. 강원랜드는 어쩌다 현금부자가 됐을까요.

◆강원랜드에 의존하는 강원도
강원랜드 하이원 리조트 전경 / 강원랜드
강원랜드 하이원 리조트 전경 / 강원랜드
강원랜드가 한국의 유일한 내국인 카지노란 사실은 많이들 아실 겁니다. 파라다이스나 세븐럭 같은 서울 시내 카지노가 외국인만 이용할 수 있는 것과 다르게 강원랜드는 내국인과 외국인 누구나 다 이용할 수 있는 ‘오픈 카지노’입니다. 오픈 카지노는 강원랜드 이전에도 그리고 강원랜드 이후에도 없었어요. 엄청난 특혜를 준 준 것이죠.

당연히 이유가 있습니다. 강원랜드가 있는 강원도 정선은 국내 최대 탄광 지역이었어요. 1950년대 초에 함백탄광을 시작으로 1960년대 사북탄좌, 원동탄좌, 동원탄좌 등등이 잇달아 문을 열었습니다. 이때 얼마나 이 지역 경제가 좋았는지 ‘개도 1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 하는 말이 있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탄광 산업의 영광은 얼마 못 갔어요. 1980년대 들어 채산성이 떨어졌고요. 탄광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합니다. 탄광에 의존했던 지역경제는 급격하게 무너졌죠. 이걸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었던 정부는 해법으로 카지노를 세우기로 합니다.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명 폐특법을 만들고 딱 10년만 내국인을 상대로 카지노 영업을 하게 해준 것이었어요.

카지노는 강원랜드가 문을 연 2000년 이전에도 있긴 했는데, 전부 외국인 전용 카지노였어요. 외화가 한 푼이라도 아쉬웠던 시기라 달러를 벌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1967년 인천의 오림포스호텔을 시작으로 서울 워커힐호텔, 제주 칼호텔,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등등에 카지노가 생겼습니다. 강원랜드 이전에 총 13곳의 카지노가 영업을 했는데요. 이게 당시엔 숫자로만 보면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것이었다고 해요. 마카오도 10개밖에 안 됐고요, 필리핀도 12개였다고 합니다.

카지노 산업에 이해도가 높았던 정부가 탄광지역 경제를 단번에 일으킬 특효약으로 오픈 카지노를 꺼내든 것이었어요. 도박중독이란 부작용이 뻔히 보였지만 ‘약발’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우선 테이블 30개로 작게 시작했는데요. 2000년 10월이었어요. 개장 두 달 만에 매출 900억원을 넘겼고, 순이익은 400억원이나 했죠. 카지노 짓느라 쓴 돈이 700억원이었는데, 몇 달 만에 다 뽑아 냅니다. 사람들이 너무 몰려서 난장판이 되니까, 3년 뒤인 2003년에 테이블 100대, 슬롯머신 960대로 대폭 확장했지만요. 이것도 너무 부족해서 앉을 곳이 없을 정도였어요.

게임 테이블에 앉으려면 앞사람에게 30만~40만원을 줘야 자리를 비켜줄 정도였습니다. 카지노에 사람은 몰리고 게임 공간은 부족하고.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니까 2013년에 또 한번 카지노 영업장을 키웠어요. 테이블을 200대까지 늘렸고요. 슬롯머신은 1360대로 확장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춥니다.

그런데 확장만 한 건 아니죠. 도박중독이 시작 때부터 사회적인 문제가 됐으니까요. 규제도 계속 더해집니다. 우선 24시간 영업하는 해외 카지노와 다르게 강원랜드는 아침 10시에 문을 열고 다음 날 아침 6시에 닫아요. 하루 4시간은 영업을 하지 않아 손님들이 카지노에 계속 머물지 못하게 합니다. 또 한 사람이 두 달 연속 15일, 6달간 연속 30일 넘게 출입하면 입장을 못 하게도 합니다. 이건 해외엔 없는 규제예요. 또 베팅 한도를 일반인 기준으로 최대 30만원으로 했습니다.

이 밖에도 강원랜드엔 해외 카지노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게 많아요. 카지노에 들어가려면 입장료 9000원을 내야 하고요. 또 카지노는 사람들이 도박에만 몰입하게 하려고 시계, 창문, 거울이 없는데 강원랜드엔 많습니다. 도박중독을 막는 방안 중 하나라고 해요.

◆마카오·필리핀과 경쟁에서 이겨야
강원랜드, 현금 2.7조를 왜 들고 있는데?...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를까[안재광의 대기만성's]
강원랜드, 현금 2.7조를 왜 들고 있는데?...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를까[안재광의 대기만성's]
근데 강원랜드가 10년 한시적으로 허용해 준 것이라고 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인 지금도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죠. 10년 한도가 다 되니까 10년이 추가됐고요. 2021년엔 화끈하게 25년을 더 연장해줬어요. 그래서 2045년까지 내국인 카지노 독점권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명분은 여전히 폐광지역 경제가 힘들다는 것인데요. 카지노가 돈줄 역할을 하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강원랜드를 통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21년간 9조원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가져갔어요. 국세가 4조원이나 했고요. 폐광지역 개발기금 2조원, 관광발전 개발기금 2조원도 있습니다. 카지노 중독은 카지노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걸 운영하는 정부도 상당한 것 같아요.

그럼 ‘강원랜드는 앞으로도 편하게 돈 벌겠다’ 하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강원랜드엔 위기감이 감돌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덜 오고 있기 때문이에요. 코로나 발생 이전에 한 해 300만 명 넘었던 방문객이 2022년엔 200만 명을 갓 넘겼고요. 작년에도 크게 늘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이전 대비 80% 수준이라고 해요.

강원랜드에 오는 사람은 50, 60대 이상 고연령층이 대부분이고요. 20~30대 젊은 사람들은 새롭게 유입되지 않고 있어요. 매출에도 영향을 미쳐서요. 2019년에 매출 1조5200억원으로 정점을 찍고 회복이 안 되고 있어요. 작년 매출은 1조3000억원밖에 못했거든요.

매출이 부진한 이유를 강원랜드는 불법도박 탓으로 봅니다. 술 마시면서 게임하는 곳을 ‘홀덤펍’이라고 하죠. 이 홀덤펍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무진장 생겼거든요. 아, 물론 홀덤펍은 카지노처럼 칩을 돈으로 바꿔주진 않아요. 재미로 그냥 하는 겁니다. 근데 홀덤펍을 가장한 불법 카지노가 전국에 꽤 많다고 해요.

근데 불법도박을 근절한다고 강원랜드가 살아날까요. 그렇진 않을 것 같아요. 강원랜드 말고도 좋은 카지노가 해외에 많잖아요. 저가항공 타고 마카오, 필리핀, 싱가포르 같은 곳에 가서 하면 24시간 도박해도 되고요. 돈 무진장 걸고 해도 규제가 없습니다. 물론 내국인이 해외에서 도박하면 불법이긴 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단속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해외 원정 도박은 끊이지 않고 있어요.

일본이 2030년까지 오사카 등 거점지역에 11조원을 들여서 초대형 복합리조트를 짓기로 한 것도 위협적이에요. 카지노업관광협회가 경희대에 의뢰해서 작성한 보고서가 있는데요. 일본의 복합 리조트가 열리면 연간 67만 명의 한국인이 일본 카지노로 이탈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습니다. 금액으론 1조3300억원이 유출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건 강원랜드의 한 해 매출에 해당하는 것이죠.

그럼 강원랜드가 뭘 해야 할까요. 여기서 강원랜드의 2조7000억원 금융자산이 의미가 있는 겁니다. 강원랜드는 설립 때부터 한시적으로 내국인 카지노 영업을 허용받았고요. 지금은 해외 카지노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인데요. 장기적으로 강원랜드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투자가 필요해요. 골프장이나 스키장을 더 키우든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사업을 하든지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황금알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야 할 겁니다. 주주들에게 배당을 크게 하거나 자사주를 사서 소각하는 방법도 있죠. 어떤 방안이든 조만간 나온다고 하니까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