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네이버 라인프렌즈 곰 캐릭터 '브라운'. 사진=라인프렌즈
네이버 라인프렌즈 곰 캐릭터 '브라운'. 사진=라인프렌즈
‘육각형 아이돌, 육각형 선수, 육각형 배우자….’

엔터테인먼트, 연애와 결혼시장에서 주로 쓰이던 ‘육각형 인간’ 트렌드가 최근 채용 시장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육각형 인간은 ‘트렌드 코리아 2024’에서 올해의 트렌드로 제시한 단어로 20~30대 사이에서 외모, 성격, 학력, 집안, 자산 등 모든 면에서 흠 없이 완벽한 사람을 선망하는 경향을 보여주는 단어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이직하길 원하는 회사들의 연봉, 워라밸(일·생활 균형), 성장 가능성 등 조건을 나열하고 그에 부합하는 ‘육각형 회사’를 찾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육각형 회사는 직장 선택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사옥. 사진=한국경제신문
2030 직장 선택 기준은 ‘꽉 채운 육각형’

1~2년 전만 해도 이직 준비 시 연봉이 높으면 워라밸은 포기할 수 있다거나 워라밸이 좋으면 낮은 연봉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모든 면에서 이상적인 회사를 찾으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기업들이 경기침체에 대비해 채용을 보수적으로 진행하고 있어 예전만큼 이직 기회를 잡기가 어려워진 만큼 이직희망자도 여러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직장을 찾는 데 신중을 기하는 것이다.

특히 연초 대기업들이 지난해 경영 실적을 발표하고 임직원에게 지급하는 성과급 규모가 공개된 이후 기업별, 부서별로 성과급 희비가 엇갈리면서 이런 기조가 짙어지고 있다. 채용업계 관계자는 “올해 이직 시장 최대 화두는 성과급 이슈”라며 “특히 실적 부진으로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회사들을 중심으로 경력직들의 이직 붐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채용 시장 한파에 조건 더 따져

삼성전자는 지난해 15조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해 성과급이 ‘제로(0)’인 반도체 사업부를 중심으로 불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노조 가입이 급증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 중 최대 규모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조합원이 최근 한 달 새 6000여 명이 증가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현대차·기아는 노조가 사측에 특별성과급을 요구하고 있는 데다 실적이 부진했던 계열사 노조들까지 현대차·기아와 동등한 수준의 성과급을 요구하고 있어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국내 양대 포털인 네이버와 카카오는 코로나 특수 이후 인건비 부담으로 채용 기조를 보수적으로 가져가면서도 핵심 인력의 이탈을 막기 위해 성과급을 지급했다. 지난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둔 네이버는 평균 고과 직원 기준으로 연봉의 15%를, 카카오는 연봉의 4∼7% 수준에서 성과급을 지급했다.

한경비즈니스는 올초 성과급 이슈가 불거진 주요 기업을 중심으로 ‘육각형 회사 지수’를 분석해봤다. 평가 지표는 블라인드가 한국노동연구원과 공동 개발한 ‘직장인 행복도 블라인드 지수’다. 직장인 5만 216명을 대상으로 각 기업 재직자들이 평가한 일, 관계, 문화의 3가지 영역에 대한 행복도(만족도)를 수치화한 것이다.

여기에는 직무 만족도와 동료관계, 워라밸, 복지, 심리적 안전감 등 구성원 행복도에 영향을 미치는 11개 항목이 포함돼 있다. 점수가 100점에 근접할수록, 상위 1%에 가까울수록 구성원 만족도가 높은 회사를 뜻한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자료=블라인드
그래픽=박명규 기자. 자료=블라인드
삼성전자, 모든 면에서 육각형

삼성전자의 블라인드 지수는 상위 18%로 조사됐다. 특히 복지제도에 대한 만족도가 52점으로 전체 평균인 38점보다 높아 상위 20%에 속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인재 이탈을 막기 위해 지난해 ‘오아시쓰(1년에 5일은 나의 성장을 위한 시간으로 쓰자) 휴가’를 시행 중이다. 1년 중 5~15일 내외의 휴가를 받아 온라인 교육 등 자유롭게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제도다.

상위 고과자에게 국내외 대학원 석·박사 과정, 경영대학원(MBA) 등의 진학을 지원하는 학술연수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업무 자율성(50점), 업무의 미감(46점), 워라밸(49점)은 평균 점수와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그래픽=박명규 기자·자료=블라인드
그래픽=박명규 기자·자료=블라인드
현대차·기아, 자동차 할인에 워라밸까지
현대차의 블라인드 지수는 상위 29%였다. 워라밸이 61점으로 전체 평균(48점)을 상회해 삼성전자(49점)를 크게 앞섰다. 복지, 심리적 안전감과 표현의 자유가 각 57점으로 전체 평균보다 10점 이상 높았다. 이 중 복지는 평균(38점)보다 19점 높게 조사돼 상위 17%에 속했다.

기아의 블라인드 지수는 상위 6%로, 현대차보다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업무 자율성(61점), 상사관계(59점), 동료관계(67점), 워라밸(62점), 심리적 안전감(59점) 등의 항목에서 평균을 웃돌았다.

현대차·기아의 복지 제도 중에선 자동차 할인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현대차·기아는 임직원에게 차량을 최대 30%까지 할인해주는 혜택을 제공하는데 퇴직자에게도 2년(현대차) 또는 3년(기아)에 한 번 25% 할인 혜택을 준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자료=블라인드
그래픽=박명규 기자. 자료=블라인드
네이버, 사무실 출근 안 해도 OK

네이버의 블라인드 지수는 상위 4%로 구성원 행복도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항목의 점수가 평균을 크게 상회하며 구성원 행복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73점)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됐다.

네이버는 최수연 대표 취임 이후 2022년 7월 자유롭게 근무 시간과 장소를 선택하는 ‘커넥티드 워크’를 도입했다. 주 3회 사무실 출근과 전면 재택근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방식이다. 코로나19 이후 IT업계가 줄줄이 재택근무를 폐지한 것과 달리 네이버는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 자체 평가에서도 커넥티드 워크에 대한 구성원들의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자료=블라인드
그래픽=박명규 기자. 자료=블라인드
카카오, 월 1회 주 4일제 ‘쏠쏠’

카카오의 블라인드 지수는 상위 14%였다. 카카오 역시 복지(64점)에 대한 만족도가 전체 평균(38점)을 크게 웃돌며 상위 9%에 들었다. 카카오가 제공하는 의료비와 대출 지원, 직장 어린이집 운영 등 다양한 복지 제도 중에서 월 1회 주 4일제 시행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는 매달 마지막 금요일을 ‘리커버리(회복) 데이’로 지정해 임직원들에게 월 1회 휴무일을 제공한다. 다만 업무중요도(55점) 점수가 평균(62점)보다 낮게 나와 카카오 구성원들이 자신의 업무가 회사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성남시 카카오 사옥 ‘카카오 판교아지트’. 사진=한국경제신문
경기 성남시 카카오 사옥 ‘카카오 판교아지트’. 사진=한국경제신문
직무 만족도와 조직 몰입도는 이직 시 고려하는 중요한 요건이며, 기업의 성과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이다. 4년간 블라인드 지수를 분석한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구성원의 직무 만족도와 조직 몰입도가 10점 증가할 때 기업의 시장 가치는 평균값 대비 각각 4.2%, 4.5% 상승했다.

신 교수는 “구성원 만족도 제고는 기업의 재무성과 창출에 필수적”이라며 “기업이 사람을 선택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이제 사람이 기업을 선택하는 시대가 된 만큼 구성원에게 투자하는 기업만이 미래에 살아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