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들은 아니다. 빠르게 국내 증시를 등지고 있다. 같은 기간 5조원 넘게 순매도했다. 2월들어 21일까지는 8조원 가까이 팔아치웠다. 대신 미국 주식을 6조원어치 가량 사들였다. 동학개미가 빠르게 서학개미화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과 개인투자자들이 정반대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의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치 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외국인들은 국내 증시가 저평가돼 있다고 본다. 사상최고치를 경신중인 일본과 인도 대만 증시와 비교하면 특히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앞세워 증시를 부양하겠다고 나섰다. 중국 증시에서 무더기로 빠져나온 외국인으로선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다.
개미들도 이를 모르지 않는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도움이 될 것을 잘 안다. 미국 증시가 상대적 고평가 국면에 접어든 것도 인정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국내 증시를 등지는 것은 기대치가 낮기 때문이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얼마나 성과를 낼지, 얼마나 지속될 지에 대해 의구심이 강하다. 차라리 생성형 AI(인공지능)를 앞세워 바람몰이를 하고 있는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게 유리하다고 본다. 증시 카페에서 “아직도 국장하냐?” “밸류업 프로그램은 총선용”이라는 냉소가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그렇다면 한국 증시는 저평가 돼 있을까. 그렇다. 코스피지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고작 0.9배다. 세계 주요 증시중 유일하게 PBR 1을 밑돈다. “장기적으로 주가가 경제성장률에 수렴하는 걸 감안하면 2023년말 기준 코스피는 12% 저평가된 반면 미국 주가는 13% 고평가돼 있다”는 게 김영익 서강대 교수의 분석이다.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배당과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정책을 강화토록 하는게 핵심이다. 상장 기업이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방안을 2월26일 발표했다. 인센티브에는 세제 지원, 코리아 밸류업 지수 포함, 스튜어드십 코드 반영 등이 담긴다고 한다.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5월 제시할 예정이다. 세제 지원 방안엔 배당 소득세 감면과 분리 과세 등이 검토되고 있다. 이사의 사업 기회 유용 금지 강화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안도 준비하고 있다.
시장의 반응은 뜨악하다. 한마디로 “고작 기업이 알아서 하라는게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에 비해선 진일보한 내용이다. 그렇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저평가 해소를 위한 필요조건일뿐이다. 충분조건은 아니다. 충분조건은 다름아닌 기업가치의 상승이다. 기업들이 꼼수 상속이나 쪼개기 상장 등 장난을 치지 못하게 하되, 새로운 기술을 앞세워 세계 시장을 휘젓도록 하는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게 충분조건이다.
필요하다면 징벌적 상속세 완화와 포이즌필 등 경영권 방어장치를 만들어 주되, 벌어들인 돈을 연구개발 등에 쏟아붓게 하는 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얘기다.
개미들이 미국 증시에 빨려 들어가는 것도 AI를 앞세워 중국 증시 시가총액마저 추월한 ‘매그니피센트 7(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 알파벳 아마존 메타 테슬라)’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증시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것도 밸류업 프로그램 못지않게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한 ‘사무라이7(토요타 미쓰비시 어드반테스트 도쿄일렉트론 스바루 스크린홀딩스 디스코) 의 실적이 확 나아진 영향이 크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한 주주환원정책은 기업 미래가치의 제고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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