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다 다른 임금, 인구 감소하자 부작용 낳아
지방 인력난에 최저임금 통일·인상 여론↑, 정치권도 가세
지방의 젊은 인력들이 대도시로 향하는 건 간사이 지방도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이 929엔인 와카야마현의 젊은 세대들이 1064엔의 이웃 오사카부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반대로 최저임금이 낮은 지역은 소멸 위기를 맞고 있다. 일본 중서부 해안 지방인 후쿠이현의 최저임금은 931엔으로 교토(1008엔), 시가(967엔) 등 주변 지역보다 낮다. 2022년까지 15년간 후쿠이현의 20대 인구는 24% 감소했다. 높은 도시 임금에 지방 젊은 인력 유출
일본의 최저임금은 지역과 업종에 따라 다르다. 그만큼 결정 방식도 한국보다 복잡하다. 먼저 후생노동성의 자문기관인 중앙최저임금심의회가 47개 광역 지방자치단체를 경제 사정에 따라 3개 등급으로 나눈다. 그리고 경기와 고용 지표 등을 참고해 목표 인상폭을 결정한다.
이를 기준으로 경영자와 근로자 대표 등으로 구성된 각 지자체의 지방최저임금심의회가 생계비, 기업의 지급 능력 등을 따져 자기 지역의 인상폭을 최종 결정한다.
중앙최저임금심의회는 매년 6월 말부터 최저임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다. 새로 확정된 최저임금은 그해 10월 무렵부터 적용된다.
업종에 따라 결정되는 ‘특정 최저임금’도 있다. 일본의 최저임금이 두 종류라고 말하는 이유다. 2023년 3월 말 기준 일본에는 226 종류의 특정 최저임금이 있다. 근로자는 지역별 최저임금과 특정 최저임금 가운데 높은 금액을 적용받는다.
한국에서는 매년 최저임금을 논의할 때마다 일본식 최저임금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최저임금이 지역의 현실을 무시한 채 전국 공통이다보니 지방 경제가 피폐해진다는 논리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지역과 업종별로 다른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통일하자는 주장이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집권여당인 자민당에서는 작년 5월 최저임금의 일률화를 목표로 내건 ‘최저임금 일원화 추진 의원 연맹’이 발족했다. 같은 해 4월 일본변호사연합회도 최저임금을 통일하기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지역과 업종의 특성을 반영한 최저임금 제도가 이상적으로 보인다. 총무성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일본 평균을 100으로 했을 때 도쿄도(104.5)와 가나가와현(103.0), 교토부(101.1)의 물가는 평균을 넘었다. 반면 미야자키현(96.2)은 4년 연속 일본에서 물가가 가장 싼 지역이었다. 물가와 생활수준의 차이에 가장 먼저 반응하는 곳은 일본 전역에 점포망을 가진 대형 외식 체인점들이다.
일본 42개 광역 지자체에서 360여 개의 점포를 운영하는 중식 체인 오사카오쇼는 가게마다 메뉴와 가격이 제각각인 ‘마이크로매니지먼트 전략’을 벌이고 있다. 2019년 전략을 시작할 때만 해도 메뉴의 90%가 전국 공통이었지만 현재는 20%만 매장마다 같다.
2022년 10월부터는 간판 메뉴인 군만두 1인분 가격을 270~290엔(세금 포함)으로 지역에 따라 3개 가격대로 나눴다. 지역에 따라 임대료와 인건비 차이가 10배씩 나는 상황을 반영했다. 우에쓰키 다케시 오사카오쇼 사장은 “지역과 고객이 다르면 요구하는 메뉴도 다르기 마련”이라며 “전국 균일 가격으로는 대응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패밀리 레스토랑 ‘가스토’ 매장 1320개를 운영하는 스카이라크홀딩스도 2022년 7월부터 가격을 도시와 지방으로 나눴다. 10월에는 도쿄 등 ‘초도심’ 지역을 추가해 가격대를 3개 등급으로 나눴다. 주력 메뉴인 ‘치즈 인 햄버거’ 가격은 769~879엔(세금 포함)으로 지역에 따라 110엔 차이가 난다.
물가 차이가 엄연하게 존재하는 만큼 지역에 따라 최저임금을 달리하는 제도는 표면적으로는 이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지역별 최저임금이 젊은 인력의 도시 유출을 부추겨 지방 경제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일본변호사연합회는 “인력 유출로 지역경제가 정체하면서 임금은 더 오르기 어려워지고 지역격차가 심해지는 악순환”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저임금의 지역별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2023~2024년 최저임금이 가장 높은 도쿄(1113엔)와 가장 낮은 이와테(893엔)의 차이는 220엔에 달한다. 2002년의 104엔에서 2배 이상 벌어졌다. 지방이 생활비 더 들어, 임금인상 한목소리
원인은 ‘인구감소의 역습’인 인력난이다. 만성 인력난에 시달리는 일본 기업과 외식업체들은 일손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다른 지역과의 인력쟁탈전도 불사하겠다는 분위기다. 최저임금이 낮은 지역은 넋 놓고 있다 젊은 인력을 다 빼앗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최근 일본의 지역별 최저임금 협상은 한국의 도지사 격인 지사가 노조 편에 서서 적극적인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풍경이 흔해졌다. 스기모토 다쓰지 후쿠이현 지사는 2023년 8월 초 이례적으로 후쿠이현 최저임금심의회에 출석해 ‘적극적인 인상’을 요청했다. 이바라키현 심의회의 결정액은 중앙심의위 목표액보다 2엔 많은 42엔이었지만 오이가와 가즈히코 이바라키 지사는 공개질문장을 던지며 최저임금 추가 인상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후쿠이현의 2023~2024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4.8%로 900엔이 넘는 지자체 중에 가장 높았다. 이바라키의 2023~2024년 인상률은 4.6%로 900엔을 넘는 지자체 가운데 세 번째로 높았다. 올해 12개 광역 지자체가 최저임금심의회가 제시한 목표 인상액보다 최저임금을 더 많이 올렸다.
일본 정부도 최저임금을 통일시키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2023년 후생노동성은 A~D의 4단계이던 최저임금 지역 구분을 A~C의 3단계로 줄였다. 최저임금 제도를 현재의 방식으로 개편한 1978년 이후 처음 제도를 바꿨다. 등급을 줄임으로써 지역 간 격차를 축소시키겠다는 의도다.
후생노동성은 “인상폭이 매년 대도시인 A 지역에서 지방인 D 지역으로 갈수록 낮아지면서 도농격차가 확대되는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3개 등급 체계에서는 A와 B단계에 포함되는 지역이 전체의 72%(34개 현)에 달하기 때문에 전체적인 임금 수준을 올리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물가가 비싼 대도시는 생활비가 훨씬 더 들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더 높아야 한다는 상식도 흔들리고 있다. 일본 최대 노동조합 렌고가 2023년 지역별 젊은 독신 남녀의 최저생활비를 비교했더니 지방의 생활비가 더 비쌌다.
A 지역인 오사카와 나고야, 도쿄도 하치오지시의 생활비는 월 16만3083엔(약 145만원)~17만3494엔(약 154만원)이었다. 반면 C등급인 고치시와 오이타시의 생활비는 18만 엔을 훌쩍 넘었다. 오이타시 독신 여성이 한 달을 사는 데 최저 19만1848엔(약 171만원)이 들었다. 대중교통이 발달한 도시와 달리 지방은 자동차가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에 차량구입비와 기름값 같은 유지비가 더 들어간다는 분석이다.
올해 처음 1000엔을 넘었지만 일본의 최저임금은 결코 높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국 평균 최저임금(1004엔)으로 주 40시간 풀타임으로 일해도 연간 수입이 209만 엔(약 1858만원)에 그친다.
과거에는 최저임금으로 일하는 사람이 주부와 학생 등 생계를 보조하는 가계 구성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세대주인 가장이 최저임금을 받는 가계가 늘고 있다. 일본의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2022년 기준)이 37%까지 늘어난 영향이다.
2011년 일본에서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근로자의 비율은 전체의 4%였다. 2022년에는 최저임금 생활자 비율이 16.2%로 늘었다. 올해는 20%에 달할 전망이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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