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14회>
“호주 쉬라즈는 경상도 사나이 분위기”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는 쉬라즈를 사랑했다. 몇 해 전 서울·경기지역 소재 전문병원 관계자 몇 분과 와인모임을 시작했다. 한 달에 두어 차례 만나 테이스팅 겸 식사자리를 갖고 밤새도록 와인과 병원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멤버 중 와인 취향이 독특한 한 병원장 관련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대구에서 나고 자란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쉬라즈가 최고’라고 외쳤던 것. 가격이 비싼 다른 메인 와인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사이드 와인만 마셨다.

웬만해서 호불호를 섬세하게 드러내지 않는 지역정서를 감안하면 쉬라즈 사랑만큼은 이 세상 누구 못지않았다. 평소 소주파였던 그는 왜 쉬라즈에 빠졌을까. 그 답은 ‘강렬함과 심리적 요인’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호주산 쉬라즈를 한 잔 마시고 깊이 감동받았다. 흑후추, 다크 초콜릿의 강렬한 향기와 야생적인 분위기에 푹 빠지고 만 것. 특히 ‘쉬라즈는 씩씩한 경상도 사나이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는 와인 스토리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투 레프트 피트 2020
투 레프트 피트 2020
실제 호주 대표 품종인 쉬라즈는 컬러와 맛, 향이 매우 강한 포도 품종이다. 원래 고향은 프랑스 론 지역. 이름도 ‘시라’로 불리던 이 품종은 이름도 생소한 두레자(Dureza)와 몽두즈 블랑(Mondeuse Blanc) 접합 종으로 알려졌다.

유전자 분석에 따르면 두 종류 DNA와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둘 다 양조용 포도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다행히 아들 격인 시라는 프랑스를 떠나 호주와 미국, 칠레 등 신대륙 지역에서 크게 성공했다.

특히 200년 가까이 서로 다른 환경적인 요소, 즉 테루아와 기후 영향을 받다 보니 와인 스타일도 덩달아 변했다. 생산 지역에 따라 다양한 특징을 나타낸다. 실제 프랑스 북부 론 시라의 경우 포도 열매가 작고 껍질이 두껍다. 그 덕분에 과일 향이 강한 풀보디 드라이 와인으로 주로 생산된다. 반면 쉬라즈는 일반적으로 온화하고 따뜻한 기후를 좋아한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압구정면옥의 김여중 대표는 “쉬라즈는 호주의 다양한 토양과 척박한 사막기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 때문인지 유칼립투스, 민트 향을 포함하는 등 전체적으로 유럽 시라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소개했다.

김 대표가 추천한 쉬라즈 와인은 ‘투 레프트 피트 2020’. 남호주 맥라렌 베일 부티크 와이너리로 잘 알려진 몰리두커 작품이다. 쉬라즈를 베이스(71%)로 메를로와 카베르네 소비뇽을 각각 16%, 13%씩 섞어 만들었다. 작황에 따라 블렌딩 비율이 약간씩 바뀌기도 한다.

시음 초반 검붉은 자두와 블랙커런트 같은 풍만한 과실향이 돋보인다. 시간이 더 지나면서 쉬라즈 특유의 향신료를 비롯해 흑후추와 바닐라, 다크 초콜릿 등 복합적이고 강렬한 향이 나타난다.

김 대표는 “쉬라즈의 풍미와 진한 보디감은 압구정면옥 메인 메뉴인 어복쟁반(평양식 전골요리)과 잘 어울린다”고 말한다. 담백하면서도 깊고 진한 맛의 고명 때문이라는 것. 그와 함께 간장 양념 베이스의 한우불고기도 쉬라즈와 찰떡궁합 마리아주로 추천했다.

압구정면옥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레드텅 부티크 압구정점’에서 구매한 와인의 경우 2병까지 콜키지(와인 잔 세팅 비용)를 받지 않는다. 다른 와인을 마시려면 병당 2만원을 지불해야 한다. 쌉쌀한 맛의 에일맥주도 갖추고 있어 선택이 편하다.

압구정면옥은 고급스러운 나무 장식 인테리어 등이 예쁘다. 주 고객층은 입맛 까다로운 30~40대 중반 여성. 어복쟁반 외에도 냉면 육수 베이스의 만둣국이 인기. 쉬라즈를 함께 마시는 고객은 전체 20% 정도라고.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