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 세입자 주거 안정 입법목적 정당”

[법알못 판례 읽기]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전경.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전경. 사진=연합뉴스
헌법재판소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규정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임차인의 주거 안정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의 정당성을 고려할 때 집주인의 기본권 제한 정도는 크지 않다고 봤다.

헌재가 법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주관부처인 국토교통부 등은 법률이나 시행령 등을 개정해 제도 보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헌재 심판대에 오른 주택임대차보호법 조항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전월세신고제와 함께 ‘임대차 3법’이란 이름으로 도입됐다. 전세시장 혼란과 전세사기 등을 불러왔다는 비판과 함께 폐지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헌재 “임차인 주거안정 도모 필요”

헌재는 2024년 2월 28일 서울 재동 헌재 대심판정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 3 일부 조항(계약갱신 요구), 제6조의 3 제3항 단서 중 제7조 제2항(차임증액 한도), 제7조의 2(월차임 전환율) 등의 위헌 확인 사건 선고기일을 열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임차인 주거 안정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임차인의 주거 이동률을 낮추고 차임 상승을 제한함으로써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며 이같이 결정했다.

헌재는 “국가는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을 보호하고 사회복지 증진을 위해 노력할 의무를 지므로 임차인의 주거 안정이라는 공익은 크다”며 “임대인의 계약의 자유와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은 비교적 단기간에 이뤄져 그 제한 정도가 크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법익의 균형성도 인정된다”고 밝혔다.

계약갱신요구 조항은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2년의 계약 연장을 1회 요구할 수 있고 집주인은 실거주 등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이를 거부할 수 없는 게 핵심이다. 2년이던 세입자의 최소 임대기간을 사실상 4년으로 늘렸다.

헌재는 “임대인의 사용·수익권을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며 “임대인이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사유를 규정하는 등 임대인의 기본권 제한을 완화하는 입법적 장치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차임 인상률을 제한한 차임증액 한도 조항도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차임증액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계약갱신요구권 제도의 실효성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규제”라며 “(차임증액 한도인) 5%가 지나치게 낮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하면 그 산정률을 은행 대출금리와 해당 지역의 경제 여건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헌재는 이 조항을 두고도 “임차인의 주거 안정을 위한 전문적이고 정책적인 고려가 있어야 한다”며 “(산정률을) 하위법령에 위임할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 사진=한국경제신문
부작용 막는 정부 보완책 나오나

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등 임대차 3법은 2020년 7월 말 시행 이후 전셋값 상승의 기폭제가 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정부가 현재 임대차 3법을 보완할 방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다.

업계에선 임대차 3법이 시행 직후엔 임차물량 부족에 따른 전세난, 최근엔 과도한 전셋값 급등에 따른 역전세난(기존보다 전세보증금이 낮은 경우)을 일으켰다고 보고 있다. 임대차 3법 시행 후 전셋값이 3중(신규 계약, 갱신권 계약, 임대사업주택)으로 형성돼 시장을 왜곡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이 당장 임대차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임대차 3법의 부작용을 완화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임대 계약 갱신·종료와 관련한 분쟁이 갈수록 늘고 있는 데다 법정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아서다.

국토부는 임대차 3법을 보완하는 입법 추진 등을 고려하고 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앞서 “임대차 3법으로 계약을 갱신한 임차인은 주거 부담을 낮추는 효과가 있었지만 시장 측면에선 전세 매물 감소와 가격 상승, 임대인과 임차인 간 분쟁 증가 등의 부작용도 있었다”며 “시장 모니터링과 공론화 과정을 거쳐 개선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규제보다는 시장 기능을 활용해 공급 확대를 유도하는 것이 전셋값과 임차인의 주거여건을 안정시키는 근본 방안이 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토부는 임대차 3법 보완을 위해 인센티브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장기 계약을 하거나 전월세 가격을 낮추는 이른바 ‘착한 임대인’에게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 등이 거론되고 있다.


[돋보기]
집주인이 계약갱신 거절하려면 실거주 직접 증명해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헌법에 부합한다는 판정이 나오면서 이 법과 관련한 판례 역시 기존처럼 재판부의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게 됐다.

특히 집주인이 실거주 목적으로 임차인의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하려면 그 집에 산다는 것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최근 판결이 유효할 전망이다.

대법원 2부는 2023년 12월 집주인 A 씨가 세입자 B 씨를 상대로 제기한 건물 인도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단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

A 씨는 2019년 1월 B 씨와 서울 서초구에 있는 아파트에 대해 보증금 6억3000만원에 2년짜리 전세 계약을 맺었다.

B 씨는 계약 만료일을 약 3개월 앞둔 2020년 12월 “계약갱신을 청구한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하지만 A 씨는 “계약 만료 후 아파트에 실거주할 계획”이라며 거절했다. 이후 B 씨가 아파트 인도를 거부하자 A 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의 3 제1항은 ‘임대인은 임차인이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2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대차계약 갱신을 요구할 경우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이 조문 1항의 8호는 ‘임대인(직계 존비속 포함)이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에 계약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고 정한다.

A 씨는 “노부모를 거주하게 할 계획이라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정한 갱신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B 씨는 “A 씨가 처음에는 남편과 자녀가 들어와서 산다고 했다가 소를 제기한 뒤에는 노부모 실거주로 말을 바꿨다”고 반박했다.

1·2심 법원은 A 씨가 실거주 주체를 변경했지만 적법하게 갱신 거절권을 행사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임대인과 그 가족이 주택에 실제 거주하려 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책임은 임대인에게 있다”며 “A 씨는 실제 거주자에 관해 말을 바꿨음에도 합리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계약갱신을 두고 벌어지는 임대·임차인 간 분쟁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둘러싼 임대차 분쟁 대부분이 ‘실거주 목적’ 등 거절 사유를 놓고 집주인과 세입자가 다투면서 시작돼서다.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2019년 49건이던 계약갱신·종료 관련 분쟁 접수는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된 2020년 154건, 2021년 307건으로 급증했다.


김진성 한국경제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