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 침체에 공사비 부담 커져, 재초환까지 ‘이중고’

서울 서초구 소재 래미안 원베일리 재건축 공사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소재 래미안 원베일리 재건축 공사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수십 년간 대표적인 부동산 투자처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낡은 아파트를 새 아파트로 다시 지으면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어서다. 조합원 간 권리가액 차이로 인한 갈등, 지분 쪼개기 문제 등이 복잡하게 얽힌 재개발과 달리 투자 난이도도 높지 않았다.

실수요자 입장에선 새 아파트보다는 불편하더라도 실거주가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었다. 주거와 투자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재건축 시장은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여러 가지 불리한 변수가 동시에 등장하며 “더이상 메리트가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건축비와 금리가 함께 올라 비용은 높아진 반면, 주택시장이 싸늘하게 식으며 비용 대비 수익은 낮아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부족한 도심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각종 규제완화 방침을 내놓고 있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다. 시장이 활황일 때는 규제가 강해도 사업이 진행될 수 있지만 지금 같은 침체 속에선 점차 속도를 늦추는 곳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분담금 폭탄에 리모델링도 ‘휘청’
우려는 즉각 시세에 반영되고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전용면적 31㎡는 지난 2월 2일 4억6000만원에 실거래됐다. 2021년 9월 기록한 9억원에 비하면 시세가 절반 수준에 그친 셈이다.

해당 아파트 가격이 이처럼 급락한 데는 두 가지 원인이 꼽힌다. 우선 조합원이 전용면적 84㎡를 신청할 경우 재건축 추가분담금이 최고 5억원까지 높아질 것으로 알려졌다. 초소형인 기존의 전용면적 31㎡ 1가구를 84㎡ 새 아파트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5억원이 많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GS건설이 제시했던 3.3㎡(평)당 공사비 650만원은 실제 착공 시기에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인건비 등 전반적인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주비 대출 등 금융비용 역시 조합원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될 전망이다. 결국 지난해 11월 상계주공5단지 조합은 공사비는 물론 48개월에 달하는 공사기간을 문제 삼아 GS건설에 대한 시공사 선정을 취소했다.

몇 년 새 급등했던 집값이 빠르게 떨어진 점도 문제다. 집값 상승기 당시 젊은 일명 ‘영끌족’들이 시세 상승을 이끌었던 노원구는 2022년 하반기 기준금리 인상 이후 서울에서도 큰 폭으로 집값이 하락한 지역에 속한다. 일부 조합원들은 지난 상승기 동안 상계주공5단지 1채를 비싸게는 8억~9억원에 사들였다. 5억원 분담금을 들여 받은 새 집이 최소 13억~14억원까지 올라야 타산이 맞는다. 그런데 상계주공8단지를 재건축한 인근 새 아파트 ‘포레나 노원’ 전용면적 84㎡는 올해 2월 12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대박이라더니 쪽박?’ 위기 맞은 재건축 시장 [비즈니스 포커스]
아파트 리모델링 사정은 더 악화하고 있다. 리모델링은 재건축 사업보다 공사비가 덜 들고 빠른 사업 진행이 가능해 지난 몇 년간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곳곳에서 추진단지가 급증했다. 그런데 최근 리모델링 공사비 역시 가파르게 오르면서 사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 분담금이 커진 데다 사업성이 줄면서 사업 추진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평촌신도시 1호 리모델링 사업’으로 유명한 경기도 안양시 호계동 소재 목련마을2단지 아파트는 리모델링 시 조합원당 평균 분담금이 4억원 선으로 나타났다. 이 사실이 아파트 소유주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면서 일부 소유주들은 재건축추진준비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했다.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아파트 리모델링 공사비는 재건축 공사비의 70~80% 수준이다. 재건축 이익 없어도 재초환 내야…주택공급 감소할까
반면 인근 집값이 높거나 재건축 사업성이 뛰어난 곳에선 각 아파트 단지들이 앞다퉈 사업 속도를 높이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재건축 단지마다 인허가에 시차를 두기 때문이다. 재건축 이주가 한꺼번에 진행되면 일대 임차 수요가 폭증할 것에 대비한 조치다.

총 14개 단지가 재건축 안전진단을 통과한 목동신시가지 아파트가 대표적이다. 대치동에 이은 서울 2대 학군을 자랑하는 목동신시가지 아파트는 대지지분이 높아 재건축 사업성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장주인 ‘목동신시가지 7단지’는 평균 대지지분이 약 63㎡에 달한다. 그러다 보니 일부 단지는 공사비가 3.3㎡당 1000만원 수준까지 올라도 조합원들이 오히려 분담금을 환급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목동 부동산 관계자는 “재건축 사업성이 뛰어난 데다 한꺼번에 여러 단지에서 재건축이 추진되다 보니 빠른 사업 진행에 대한 경쟁심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주변 아파트 시세가 비싸고 조합원들 자금력이 높은 강남권에선 자체 사업성이 떨어지더라도 재건축 추진이 활발한 편이다. 서초구 잠원동 소재 ‘신반포18차 337동’은 조합원당 분담금이 최대 12억1800만원으로 추정됐음에도 2월 23일 총회에서 관리처분변경계획 안건을 통과시켰다.

해당 재건축 사업은 현재 계획상 기존 전용면적 111㎡를 97㎡로 줄여야 한다. 일반분양 없이 1대 1 재건축을 진행하는 데다 시공사인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와 3.3㎡당 958만원에 공사비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업비 부담이 더 커졌다. 이 때문에 지난해에는 관리처분계획 안건이 총회에서 부결되기도 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지속적으로 오르는 공사비와 금융비용 압박을 감당하는 대신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다른 물건 가격과 마찬가지로 공사비 역시 한번 오르면 떨어지기 어렵다”며 “코로나19와 전쟁 여파로 올랐던 건설 자재비는 하락할 수 있지만 인건비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또 다른 장벽이 되고 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재건축조합설립추진위원회 승인 시점부터 새 아파트 준공 시점의 집값 시세 차이가 정상 주택 가격상승분보다 높을 경우 그 차액을 초과이익으로 보고 부담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초과이익에선 공사비와 설계비를 포함한 개발비용이 빠지게 된다.

5층 높이 저층 아파트로 재건축 사업성이 높기로 소문난 용산구 이촌동 소재 한강맨션은 2022년 한국부동산원에게서 재건축 부담금 예정액으로 평균 7억7700만원을 통보 받았다. 지난해 부담금 감면 내용을 담은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로 인해 한강맨션 조합이 얻게 될 부담금 감소 효과는 조합원당 5500만원에 불과하다. 때마침 서울시가 층수 규제를 완화하면서 한강맨션 조합은 68층 초고층 설계 변경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건축비가 많이 드는 초고층 공사를 통해 재건축 초과이익을 줄이고 일반분양이 가능한 가구 수를 늘려 사업수익을 더 높이겠다는 것이다. 설계변경 및 공사 과정에서 사업기간은 2~3년 길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재건축 부담금은 재건축 사업으로 인한 실질적인 이익이 없는 경우에도 부과될 수 있다. 주택 거래를 통해 발생하지 않은 미실현이익에 대해 부과되기 때문이다. 아파트 준공시점에서 집값이 높았어도 실제 해당 주택을 매도했을 때 가격이 떨어진다면 정부에 재건축 부담금을 내고 조합에 추가분담금까지 낸 조합원은 손해를 보게 된다.

결과적으로 재건축 사업이 위축되면 서울에 신규주택 공급이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지금 같은 시장 환경에선 강남이나 목동 같은 일부 지역 외에 개발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재건축 조합은 사업을 미루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소장은 “주택공급 위축을 막기 위해 정부 차원의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