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 AI칩 개발을 추진 중인 오픈AI는 최근 구글의 AI 분야 고급인재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회사 지분과 각종 인센티브 등을 포함해 500만 달러(66억원)~1000만 달러(133억원) 수준의 연봉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1월에는 구글의 AI 전용칩 ‘텐서 프로세싱 유닛(TPU)’ 프로젝트 리더인 리처드 호 시니어 디렉터를 하드웨어 부문 대표로 영입했다. 구글의 생성형 AI ‘제미나이’ 프로젝트의 핵심 인력 중 최근 오픈AI로 이직한 인력은 알려진 것만 6명이다. 차세대 AI 반도체 개발에 뛰어든 삼성전자도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 AGI 반도체 개발 조직 ‘AGI컴퓨팅랩’을 신설하고 구글의 TPU 프로젝트 개발자 출신인 우동혁 박사를 리더로 영입했다. AI 스타트업이 구글·MS보다 고연봉 제시
챗GPT의 등장 이후 대규모언어모델(LLM) 기술은 최고 인기 기술로 떠올랐다. 기업에서는 컴퓨터 비전, 로봇공학, 자연어 처리(NLP), 생물학 및 신경과학에 AI를 적용하는 분야에서 인재 수요가 높다. 석박사급 숙련된 AI 개발자 구하기는 이미 하늘의 별 따기다. AI 고급 인재의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 됐다.
급여 협상 서비스 기업 로라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박사급 AI 연구원을 채용한 600여 개 기업 중 오픈AI와 앤트로픽이 각각 86만5000달러(약 11억5400만원)와 85만5000달러(약 11억4000만원)를 AI 연구원 초봉으로 제시해 1, 2위를 차지했다. 초봉에는 기본급과 보너스, 주식 등이 포함됐다.
주목할 점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보다 AI 스타트업이 제시하는 연봉이 훨씬 높다는 점이다. AI 연구원 초봉 3위는 82만5000달러를 준 인플렉션AI다. 인플렉션AI는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AI 조직인 딥마인드에서 임원을 지낸 무스타파 술레이먼과 카렌 사이모니언이 공동 설립한 AI 스타트업이다. 지난해 MS와 엔비디아로부터 15억2500만 달러(약 2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받았다.
이어 테슬라(78만 달러), 아마존(71만9000달러), 구글브레인(69만5000달러) 등이 뒤를 이었다. 삼성리서치는 28만5000달러로 21위에 올랐다. 이는 3억8000만원 규모로 오픈AI가 제시하는 초봉보다 3배가량 낮다.
업계 관계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AI 전문인력 연봉이 4억~5억원이 높은 수준이었지만 챗GPT 등장 이후 10억원 이상으로 훌쩍 뛰어올라 AI 인력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AI 인재, 전 세계 0.5%에 불과…뺏고 뺏기는 인재 쟁탈전
국내에서는 AI 고급 인재를 두고 뺏고 뺏기는 구인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네이버클라우드는 SK텔레콤에 자사 AI 인력 영입을 중단하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보내며 소동이 일어났다.
네이버의 AI 사업을 총괄하던 정석근 SK텔레콤 글로벌·AI테크 사업 부장(전 네이버클라우드 최고전략책임자·CSO)이 SK텔레콤으로 이직한 이후 그와 함께 일했던 AI 인력 5명이 사직서를 제출해 AI 인력 빼가기 논란이 불거졌다. 사직서를 냈던 5명이 SK텔레콤으로 가지 않고 퇴사하면서 소동이 일단락됐으나 업계에선 챗GPT 등장 이후 치열해진 업계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는 반응이 나왔다.
AI 인재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는 급증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서다. 고용노동부와 직업능력연구원 전망에 따르면 2027년까지 AI 분야에서 수요는 6만6100명에 달하지만 공급이 5만3300명에 그치며 1만2800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클라우드 분야에서도 6만2600명이 필요하지만 공급은 4만3800명에 그쳐 1만8800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의 AI 인재 수는 2551명으로 전 세계의 0.5%에 불과해 AI 전쟁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엘리먼트 AI가 발표한 ‘2020 글로벌 AI 인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전 세계 AI 분야 전문 인재 수가 47만7956명인데 이 중 미국이 39.4%(18만8300명), 인도 15.9%(7만6213명), 영국 7.4%(3만5401명), 중국 4.6%(2만2191명)를 차지했다. 한국은 0.5%로 30개국 중 22위에 그쳤다. AI 고급 인재를 확보하지 못하면 글로벌 AI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감원하고 AI 투자 늘리는 빅테크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는 전 세계 생성형 AI 시장 규모는 연평균 34.7%씩 성장해 2030년에는 1093억7000만 달러(약 147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6년 뒤 147조원 규모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앞다퉈 AI 분야 투자를 늘리면서 ‘쩐의 전쟁’이 격화하고 있다.
지난해 구글이 전체 인력의 6%인 1만2000여 명을 정리해고한다고 밝혔고 MS는 액티비전 블리자드와 엑스박스에서 1900명을 해고하기로 한 가운데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대대적인 감원에 나서고 있다. 이는 AI 분야 역량을 확대하기 위한 인력 조정으로, 구조조정을 통해 코로나19 시기 과잉 공급된 일반 개발자 인력을 축소하고 고연봉의 AI 개발자들을 영입하기 위해서다.
취업정보사이트 인디드에 따르면 AI 분야 관련 채용 게시물이 지난해보다 2.3% 증가했다. 반면 데이터 분석·과학 관련은 30.5%,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개발 관련은 33.5% 감소했다. 기업들의 투자 우선순위도 AI 분야로 쏠리고 있다. AI 경쟁에서 후발주자로 평가받는 애플은 최근 10년간 개발을 추진해온 자율주행 전기차 사업을 접고 일부 직원을 AI 관련 업무에 재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AI가 전 산업으로 확산하며 업종을 막론하고 AI 개발자들을 원하는 기업이 급증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은 글로벌 기업 대비 낮은 연봉으로 AI 인재 전쟁에서 더욱 취약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AI 개발자 연봉은 더 낮다. 로버트월터스코리아의 ‘디지털 연봉 조사서 2024’에 따르면 올해 머신러닝·AI 리서치 사이언티스트 연봉은 6000만~2억4000만원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사급 AI 인력들은 높은 연봉을 제시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로 눈을 돌리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수십만 명을 해고하며 구조조정이 한창이지만 AI 분야 채용만은 지금이 초호황기”라며 “공급 부족으로 임금 프리미엄이 붙고 있어 향후 AI 전문가를 채용하기 위해 기업이 치러야 할 비용은 점점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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