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웹툰이 쓴 해외 성공신화, AI·디지털트윈 앞세워 재도전
건설 위주였던 중동수출, 플랫폼 기업 중 처음으로 존재감 드러내
아람코와 AI 협력 약속, 한국판 AI로 새 이정표 쓸까

[비즈니스 포커스]
지난해 10월 네이버 1784에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정보기술부 압둘라 알스와하 장관 일행./네이버
지난해 10월 네이버 1784에 방문한 사우디아라비아 통신정보기술부 압둘라 알스와하 장관 일행./네이버
지난해 10조원에 육박하는 매출을 냈다. 주요 사업인 커머스(쇼핑)와 콘텐츠는 모두 두 자릿수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기술 경쟁력도 갖췄다. 전 세계에서 3번째로 초거대 LLM(대규모언어모델)을 개발했다. 눈부신 성과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거대한 데이터셋을 운영할 능력이 있다는 말이다.

미래를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매년 매출의 20% 이상을 R&D에 투자하고 있다. 수익성과 혁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웃지 못하는 기업. 한국의 AI 주권을 우두커니 지키고 있는 네이버다. 광고·쇼핑·웹툰에 따라붙은 의문 네이버 주가는 올해 들어 16% 넘게 떨어졌다. 주력 사업이었던 커머스는 쿠팡을 따라잡지 못한 와중에 중국 기업들까지 경쟁에 가세했다. 콘텐츠 역시 네이버웹툰의 나스닥 상장으로 인해 주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쪼개기 상장으로 지분가치가 희석될 수 있다는 우려다.

증권가에서도 올해 네이버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지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네이버의 본업(쇼핑, 광고)이 모두 흔들릴 수 있다”며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 둔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 직구 플랫폼이라는 변수가 추가돼 네이버 쇼핑의 트래픽이 감소하면 이는 곧 네이버의 광고 수익 감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역시 이런 우려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는 지난 2월 콘퍼런스콜에서 “네이버 쇼핑은 광고 중심이기 때문에 중국 커머스 플랫폼이 경쟁 상대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파트너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기업들의 한국 시장점유율이 늘어나면 네이버 광고 역시 성장할 수 있다는 기대다.
네이버는 중동 최대 IT 박람회인 LEAP 2024에 참가했다./네이버
네이버는 중동 최대 IT 박람회인 LEAP 2024에 참가했다./네이버
네이버, 5년 만에 해외 전시 찾았다네이버가 택한 돌파구는 해외시장이다. 라인과 웹툰이 썼던 글로벌 성공신화에 또 한번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최 대표가 2021년 취임 한 달 만에 내걸었던 ‘네이버 3.0’ 역시 글로벌 시장에서의 성장을 통해 도약하려는 네이버의 의지가 담겨 있다. 네이버 3.0은 새로운 시장 공략에 나서 2027년까지 매출액 15조원, 글로벌 사용자 10억 명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네이버의 글로벌 성장 첫 단계인 1.0은 일본을 중심으로 전 세계 사용자 2억 명을 넘긴 메신저 앱 ‘라인’이 이끌었다. 2.0은 웹툰이 일본, 북미, 유럽 시장을 장악하며 쓴 성공기다.

3.0의 키워드는 AI와 디지털트윈, 클라우드 등 네이버의 핵심 기술력 그 자체다.

지난해부터는 3.0의 성과도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주 무대는 ‘중동’. 주연은 네이버랩스(AI·로보틱스·디지털트윈)와 네이버클라우드다. 지휘자는 네이버 창업 초기 멤버인 채선주 대외/ESG정책 대표다.

숫자로는 여전히 검색이나 쇼핑, 콘텐츠와 견줄 만한 수준이 아니다. AI와 클라우드를 포함하는 클라우드사업 부문은 지난해 447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년 대비 11% 늘었지만 아직 검색(3조5891억원)이나 쇼핑(2조5466억원), 콘텐츠(1조7330억원)와는 크게 차이 난다. 하지만 AI와 로보틱스, 디지털트윈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중동 시장을 개척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네이버가 중동을 공략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2022년 11월 중동 진출을 모색했고, 1년 만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업을 수주했다.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사우디 자치행정주택부와 1억 달러(1335억원) 규모의 계약에 성공했다. 네이버가 수주한 프로젝트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 등 5개 도시에서 ‘디지털트윈’ 플랫폼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그간 건설·토목 등이 중심이었던 중동 사업에서 국내 플랫폼 기업이 존재감을 드러낸 첫 사례였다. 무대는 중동, 주연은 AI와 로봇
네이버는 왜 중동에 집중할까[비즈니스 포커스]
디지털트윈은 물리공간을 디지털에 그대로 옮긴 플랫폼이다. 디지털을 활용해 도시를 계획하거나 모니터링하고 기후나 자연재해를 예측할 수 있다.

네이버는 5년간 사우디 리야드를 비롯해 메디나, 제다, 담맘, 메카 5개 도시들을 대상으로 클라우드 기반의 3D 디지털 모델링 디지털트윈 플랫폼을 구축하고 서비스까지 직접 운영한다.

올해는 본격적으로 중동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네이버는 3월 4~7일 사우디 리야드에서 열린 중동 최대 IT박람회인 ‘LEAP’에 참여했다. LEAP는 ‘중동판 CES’라 불리는 행사다.

매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IT박람회인 CES보다 더 많은 관람객이 방문한다. 박람회에서 네이버 전시장은 LEAP의 메인 전시관인 ‘빅테크관’에 자리했다.

네이버 부스 인근에는 애플과 메타가 전시장을 꾸렸고 구글, 알리바바, 마이크로소프트(MS), IBM,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글로벌 빅테크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네이버 부스에는 나흘간 글로벌 테크 관계자를 비롯해 1만여 명의 방문객이 방문했다.

네이버가 글로벌 박람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CES 2019 이후 5년 만이었다. 네이버는 2019년 CES에서 로보틱스 기술을 선보였고, 올해 사우디 LEAP에서는 세계 최초의 로봇 OS ‘아크마인드(ARC)’를 공개했다.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가 LEAP에서 아크마인드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기도 했다. AI 글로벌 ‘전초기지’로 중동 택한 이유 또 다른 성과도 있었다. 이 전시회에서 네이버는 ‘아람코디지털’과 사우디 포함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의 디지털 혁신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아람코디지털은 아람코의 디지털 및 기술 전문 자회사다. 주요 협력 분야는 AI와 클라우드다.

이번 MOU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네이버가 AI와 ‘LLM’을 앞세워 따낸 글로벌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LLM 등 생성형 AI는 승자독식 구조다. 기술력과 자본으로 무장한 거인 기업이 모든 생태계를 장악한다.

투자 대비 수익이 나기 어려운 구조인데 데이터 등 보안 이슈 때문에 다른 기업의 서비스를 가져다 쓰기도 어렵다. 막대한 투자와 높은 비용 부담에 수익모델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뛰어들기에는 사용자 확보도 어려운 시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네이버는 지난해 초거대 LLM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했다. 전 세계에서 초거대 LLM 개발에 성공한 건 네이버가 세 번째였다. 지난 5년간 회사가 AI에 1조원을 투입한 결과다.

네이버가 하이퍼클로바X를 공개한 당일 주가는 6%대 급등했지만 다음 날 곧바로 상승분을 반납했다. 슈퍼컴퓨팅, GPU에 들어가는 투자비용과 운영비용 대비 성과가 나기 어려운 구조라는 평가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자본과 기술력, 정부의 막대한 지원을 등에 업은 글로벌 기업과 경쟁해야 하는 것도 숙제였다. 네이버가 AI를 가지고 중동으로 향한 이유다. 자체 AI 모델이 없는 국가는 다른 나라의 AI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아람코디지털과의 협력 내용을 살펴보면 네이버는 아랍어 LLM에 특화된 ‘소버린 AI’ 개발에 참여한다. 소버린 AI는 데이터 주권을 보장하며 해당 국가의 언어와 문화적 맥락을 반영해 AI 서비스를 하는 것을 말한다.

AI 업계 관계자는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중동 기업들이 오일머니를 기반으로 AI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며 “이미 빅테크가 장악한 미국, 중국이나 개인 정보·저작권에 대한 규제가 깐깐한 유럽 대신 네이버가 중동을 택한 이유”라고 평가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