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 중인 브라이튼 여의도 모습.
공사 중인 브라이튼 여의도 모습.
과거의 하락기보다 지금 상황이 나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인해 추가 미분양 발생 조짐은 여전하다. 일부 주택사업자들은 미분양이 날 것을 예상하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값에 아파트를 분양해야 할 상황이다. 이들이 지난 상승기에 토지를 고가에 매입한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원자재값이 상승하면서 공사비 또한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이다.

현재 판매 중인 주요 미분양 아파트도 분양가가 높아 발생한 측면이 크다. 서울의 주요 미분양 아파트 단지를 들여다봤다.

지난해 10월부터 분양을 시작한 동대문구 ‘이문아이파크자이’ 공급가격은 3.3㎡당 3550만원으로 전용면적 59㎡ 고층 세대(30층 이상)가 9억원 초반대에 책정됐다. 해당 단지가 위치한 이문·휘경뉴타운은 최근 ‘래미안라그란데’, ‘휘경자이디센시아’ 등 대단지 공급이 이어진 데다 이문아이파크자이가 이들 경쟁 단지보다 높은 분양가에 나오면서 청약 물량 일부가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난해 3월 3.3㎡당 2930만원에 분양했던 ‘휘경자이’까지는 “가격이 좋다”는 평가를 받으며 빠른 시일 내에 계약 마감에 성공했다. 그런데 8월 ‘래미안라그란데’부터 3.3㎡당 3000만원을 넘기면서 고분양가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에 따르면 3월 13일 기준 휘경동 소재 신축 아파트인 휘경SK뷰 시세가 3.3㎡당 3173만원이다.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분양되는 아파트라 투자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으며 완판에 실패했다.
역사는 반복된다…신도 모르는 하락기
유동성 장세 끝나, ‘줍줍’도 옥석 가리기 필요해[돌아온 미분양 시대②]
분양보증이 필요 없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심사를 피할 수 있는 후분양을 택한 곳도 미분양에 시달리고 있다. 수분양자로부터 계약금, 중도금을 받아 공사비 등 사업비에 투입하는 선분양과 달리 후분양은 이자비용 등이 더해져 높은 분양가를 책정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곳이 여의도 옛 MBC 부지에 들어선 주상복합 ‘브라이튼 여의도’다. 대형 시행사인 신영은 2019년 이 단지의 아파트와 오피스텔 세대를 동시 분양할 계획이었으나 HUG와 분양가 협의에 난항을 겪으며 결국 아파트를 후분양하기로 결정했다. 부동산이 한창 호황이던 당시만 해도 ‘한남더힐’, ‘나인원 한남’, ‘과천푸르지오써밋’ 등 고급단지 후분양 성공사례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의도에는 2008년 ‘여의도자이’ 이후 신규 아파트 공급이 없었다.

그러나 준공이 다가오자 부동산 경기가 꺾였다. 브라이튼 여의도는 3.3㎡당 1억1000만원에 일반공급하겠다는 기존 계획과 달리 ‘4년 민간임대 후 분양’ 형태로 공급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집값이 급등하며 ‘준강남’이라고도 불리던 동작구 상도동에서 후분양한 ‘상도푸르지오클라베뉴’도 미분양 상태다. 이 단지 분양가는 3.3㎡당 3963만원이며 전용면적 59㎡ 일부 타입은 최고 10억원이 넘게 나왔다. 인근 인기 단지인 ‘e편한세상 상도노빌리티’ 전용면적 59㎡ 타입의 최근 실거래가는 11억8000만원(4층, 올해 2월 계약)이다. ‘상도 푸르지오 클라베뉴’ 분양가보다 비싸지만 이 단지는 7호선 상도역과 바로 인접했다는 장점이 있다. ‘상도 푸르지오’는 7호선 장승배기역과 10여분 걸리는 거리에 있지만 언덕 지형이 단점이다.

지방 사정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실수요가 탄탄한 수도권보다 더 강한 시세 하락 여파에 노출된 데다 최근 높아진 공사비가 시장에 끼치는 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한 부동산 시행사 관계자는 “부동산 시세가 정점일 때 매입한 토지비에 높아진 이자, 공사비까지 붙어 싸게 분양하고 싶어도 어렵다”며 “하락기가 정확히 언제 오는지 맞히는 일은 거의 ‘신의 영역’이므로 부동산 사이클마다 비슷한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대규모 미분양으로 신음했던 대구광역시의 경우 상승기에 집값이 오르자 다시 고가의 아파트가 곳곳에서 공급되며 또다시 미분양이 1만 채 이상 적체되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김학렬 소장은 “수도권 정비사업의 경우 분양가에서 땅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공사비 급등 여파가 상대적으로 덜할 수 있지만 지방에선 지금 공사비 수준으로는 시장에서 소화 가능한 수준의 분양가를 도저히 맞추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좋은 입지라도 싸게 사야 안전해
전례 없이 지속된 ‘제로금리’ 시대가 끝나면서 지난 투자 성공사례를 무조건 따르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2015년부터 본격화한 부동산 상승기는 ‘순환매’ 형태로 전국 주택시장을 들썩이게 했다. 갈 곳 없는 유동성은 아파트 가격을 몇 배로 급등시켰다. 이전에는 서울부터 오르면 지방이 따라 오르던 식이었는데, 이번에는 규제가 없던 지방이 오른 뒤 수도권이 올랐고 정부가 수도권 규제를 강화하자 다시 지방이 오르는 흐름으로 이어졌다. 나중에는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율까지 오르자 투자자들이 취득세 중과를 피할 수 있는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주택을 찾아 지방 비(非)광역시에 있는 낡은 소형 주공아파트까지 싹쓸이했다.

그러나 현재 인구의 수도권 집중 현상까지 심화하고 있어 비광역시는 물론 광역시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버티면 오른다”는 진리가 선택적으로 작용하리라는 것이다. 대구는 수성구 범어동, 부산은 해운대 같은 일부 핵심지역만 살아남을 것으로 보는 부동산 전문가들이 다수다.

수도권에서도 입지뿐 아니라 매수 가격까지 꼼꼼히 따져야 할 전망이다. 2013년 12월 3.3㎡당 4130만원으로 시장에 나와 미분양을 기록한 반포 한강변 ‘아크로리버파크’는 불과 5년 뒤인 2019년 3.3㎡당 1억원 시대를 열며 성공신화로 남았다. 이 같은 사례를 참고하기에는 서울 집값이 다시 2배, 3배씩 오를지 확신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기에 진입했기 때문에 급격한 수요 확대를 기대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지금 같은 하락기에 아파트 분양권 매수를 통해 내 집 마련을 하려면 주변 시세와 분양가를 비교해 ‘안전 마진’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좋다”며 “주변 시세 또한 더 하락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는 한편, 현재 고분양가 논란이 있는 단지의 경우 ‘마이너스 프리미엄’(분양가보다 저렴한 가격)이 붙은 분양권을 노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