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은 디플레이션과 소비부진에 빠진 중국이 싼값에 해외로 물건을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저가공세에 관세 인상으로 대응하는 한편, 대중국 수출통제도 강화하는 움직임이다. EU도 전기차 반보조금 조사에 속도를 내면서 대응 방안을 찾고 있다. 또 미국은 안보위협을 내세워 글로벌 최대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의 미국 내 사용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중국과의 갈등을 예고했다. 관세 인상으로 맞대응하는 주요국
중국이 자국 경기침체로 인한 잉여 생산품을 저가 수출로 밀어내고 있다고 판단한 주요 국가들은 맞대응에 나선 상태다. 이미 미국은 지난 1월부터 중국산 철강에 12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대응 조치를 내놓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세금 공제, 석탄을 중심으로 한 저렴한 에너지 공급 등의 방법으로 중국산 제품의 가격을 낮추고 있고 이 같은 국가 지원 체계가 과잉생산으로 이어져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는 입장이다.
또 미국은 베트남, 말레이시아, 멕시코 등 제3국 공장을 통한 중국 기업 상품의 유입에도 제동을 걸 방침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 자동차 업체들이 관세를 피해 멕시코 등을 거치는 것을 막기 위해 최종 조립 지역과 상관없는 중국산 규제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안보를 명목으로 한 중국산 규제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최근 미국철강노조(USW) 등 5개 노조로부터 해양·물류·조선 부문에서 중국의 부조리한 정책·관행을 조사해달라는 청원서를 받았다. 외국 정부가 미국에 차별적인 무역 정책을 펴면 USTR이 이를 조사할 수 있도록 한 무역법 301조에 따른 조치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 중국산 선박에 항만료를 부과하는 등 광범위한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지난 2월 중국산 커넥티드카의 국가안보 위협에 대한 조사에도 착수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바퀴 달린 스마트폰처럼 연결된 중국 커넥티드카는 민감한 데이터를 수집해 중국으로 전송할 수 있다”고 언급, 국가안보 차원의 대응에 나설 것을 경고했다.
EU도 중국 전기차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를 서두르고 있다. 작년부터 중국 정부의 전기차 보조금을 조사해온 EU 집행부는 중국 정부가 불법적으로 보조금을 지급한 ‘상당한 증거’를 찾았다는 입장을 밝히고 후속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EU는 오는 7월부터 역내로 수입되는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물론 중국산 전기자전거, 광섬유 케이블, 풍력발전 터빈, 태양광 패널 등 광범위한 제품에 대해 수입 제한과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강화되는 반도체 수출통제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의 핵심은 반도체다. 미국은 지난 수년간 집요하게 반도체 등 대중국 첨단산업 수출통제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산업의 쌀인 반도체까지 중국이 기술 격차를 좁히면 중국이 미국의 통제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문제는 반도체 수출통제를 위해서 반도체 선진국인 일본, 네덜란드, 대만, 한국 등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2022년 10월 자국 기업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장비를 수출하지 못하도록 규제한 이후 동맹국에도 비슷한 수준의 수출통제 조치를 도입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처음엔 반도체 장비 기술 수준이 높은 일본과 네덜란드에 주로 수출통제 동참을 요구했는데 작년 하반기부터는 한국에 대해서도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한국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정책의 구멍이 될 수 있어 걱정이다. 미국 기업의 빈자리를 한국 등 다른 나라 기업이 메운다면 미국 기업만 피해를 보고, 반도체 수출통제 정책의 효과는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은 사면초가다. 미국의 요구를 모두 들어줄 경우 국내 반도체산업 경쟁력에 심각한 악영향을 줄 수 있어서다. 최대 시장인 중국에 대한 수출을 통제하면 국내 반도체 장비 산업의 자립화도 어려워질 수 있다. 또 한국 장비업체의 경쟁력은 그 장비를 구매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용경쟁력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미국은 자국 주도의 새로운 다자 수출통제체제 도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한국도 최근 수출통제 근거 법률인 대외무역법을 개정해 향후 미국 주도의 다자 수출통제체제에 참여할 수도 있는 길을 여는 등 보조를 맞추는 모양새다. 미국은 러시아나 중국의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선 동맹국 중심의 새로운 다자 수출통제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수출통제시스템인 바세나르체제의 경우 러시아가 회원국으로 참여하고 있어 미국의 주장을 관철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미국은 반도체, 퀀텀, 인공지능(AI) 등의 분야에서 중국의 약진을 우려하고 있다. 첨단기술을 보유한 동맹국들이 별도의 수출통제를 운영해 기술의 발전 속도에 맞춰서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생각이다. 한국에 이 또한 만만치 않은 고민거리다.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수출통제체제에서 빠지기도 어렵겠지만 중국의 반발과 국내 기업에 미칠 피해 등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서다. 틱톡, 미국에서 사라지나
글로벌 최대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도 미·중 갈등의 중심에 섰다. 미국 하원이 3월 13일 전체회의를 열어 동영상 플랫폼 틱톡 금지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법안이 상원을 거쳐 시행되면 틱톡 운영사 중국 바이트댄스는 180일 이내에 회사 지분을 매각해 분산하거나 미국 내 서비스를 종료해야 한다. 미 정부는 미국인 절반에 달하는 1억7000만 명이 쓰는 소셜미디어 틱톡이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중국 공산당에 넘길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틱톡을 운영하는 바이트댄스는 법안 최종 시행을 저지하기 위해 상원을 겨냥한 로비에 공을 들이고 있다. 쇼우지 추 틱톡 최고경영자(CEO)는 틱톡 인플루언서들을 데리고 이날 워싱턴DC 연방 의사당을 찾아 상원의원들에게 법안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바이트댄스는 이 법이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미국 수정헌법 1조에 위배된다는 입장이다.
틱톡 금지법안의 상원 통과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마리아 캔트웰 상원 상무위원회 민주당 위원장은 CNN에 보낸 성명에서 “헌법에 부합하고 시민의 자유를 보호하는 길을 찾기 위해 상원과 하원 동료들과 대화할 것”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도 최근 틱톡 금지에 반대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최근 CNBC에 “내가 싫어하는 건 틱톡이 없어져 페이스북이 더 커지는 것”이라며 “나는 페이스북을 국민의 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미국의 관세 부과 움직임과 틱톡 금지법 모두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틱톡 금지 법률이 통과되기 전 브리핑에서 “최근 몇 년 동안 미국은 틱톡이 미국 안보를 위협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음에도 탄압을 멈추지 않았다”며 “미국이 공평한 경쟁에서 이기지 못하자 괴롭힘을 선택한 것”이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왕이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은 이달 열린 양회에서 “미국이 아시아 국가에 당황스러운 수준의 무역 억제를 부과했다”며 “미국이 중국을 억압하는 데 집착한다면 결국 스스로 해를 끼칠 것”이라고 비난했다.
베이징=이지훈 한국경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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