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ELS 배상이 ‘일회성 이벤트’일까? [하영춘의 경제 이슈 솎아보기]
역대 금융감독원장 중 이복현 원장만큼 존재감이 뚜렷한 사람은 없다. 검사 출신답게 직선적이다. 일을 미루는 법이 없다. 두리뭉실 넘어가지도 않는다. ‘맞다, 틀리다’를 분명히 한다. 최근만 해도 그렇다. NH투자증권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둘러싸고 말이 많을 때인 3월 초 NH농협금융지주와 NH농협은행, NH투자증권 등에 대한 검사에 전격 착수했다. 강호동 신임 농협중앙회장에 대해 ‘마음대로 CEO 인사를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2023년 말 KB금융 회장 선임을 앞두고는 “후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등 합리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는 말로 가르마를 타기도 했다.

이런 이 원장이 고개를 숙였다. 이 원장은 3월 13일 “홍콩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 등 고난도 상품 판매와 관련해 당국이 면밀한 감독 행정을 하지 못했다”며 “감독 당국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송구하다”고 말했다. 극히 이례적이다. ‘소신’ 또는 ‘윽박지르기’가 먼저 떠오로는 그의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금감원은 3월 11일 은행 등 판매사가 홍콩ELS 손실액의 23~50%를 배상토록 하는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금융사의 과실 여부, 개별 투자자의 특성을 따져 차등적으로 배상 비율을 정하도록 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총 배상 규모는 KB국민은행 1조원 등 2조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이 원장은 배상 규모가 커 은행들의 건전성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것”이라고 일축했다.

시장에서도 인정했다. 배상 규모가 가장 큰 KB금융을 비롯한 금융주는 증시에서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배상 이슈가 주가에 선반영된 데다가 충분한 충당금을 쌓아놓은 만큼 더 이상의 충격은 없을 것으로 받아들였다.

과연 홍콩ELS 배상은 일회성일까? 은행들은 2008년 외환파생상품인 키코(KIKO)를 팔았다가 15~41%를 배상(평균 23%)했다. 2019년엔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증권(DLF·DLS)을 겁 없이 취급했다가 손실액의 40~80%(평균 59%)를 물어줘야 했다. 2020년엔 라임·옵티머스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지고 100%를 배상했다. 그 뒤 고작 4년 만에 2조원 가까운 돈을 물어줄 상황에 몰렸다. ELS 배상 충격은 일회성에 그칠지라도 파생상품 판매로 인한 배상 횟수는 벌써 네 번째다. 홍콩ELS 사태로 물어줄 2조원도 적은 돈이 아니다. 2023년 국내은행 당기순이익( 21조3000억원)의 10%에 해당하는 돈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걸까. 이복현 원장은 은행들의 직원 성과평가(KPI)를 문제로 꼽았다. 제대로 짚었다. 은행원들은 KPI에 목을 맨다. 평가를 잘 받아야 승진도 빠르고 두둑한 인센티브도 받는다. A 은행의 경우 KPI 1000점 만점에 410점이 고위험 상품 판매 실적이었다고 한다. 위험이 클수록 수수료를 많이 받기 때문이다. 은행원들은 고위험 상품을 팔아 인센티브를 챙긴다. 판매한 상품이 3~4년 후 문제 되더라도 상관없다. 손실을 본 고객들이 아우성치면 은행이 물어준다. 이미 수령한 인센티브는 거둬가지 않는다.

이 평가시스템을 손보겠다는 것이 이 원장의 구상이다. 구체적으론 직원들의 성과평가를 고객의 이익과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이 방안이 효과를 내서 은행들의 배상도 이 원장의 사과도 제발 ‘일회성 이벤트’로 그쳤으면 한다.

하영춘 한경비즈니스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