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피규어AI와 오픈AI가 협업해 3월 13일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01. 사람처럼 말하고 소통하며 작업을 수행한다. 사진=피규어AI 유튜브
피규어AI와 오픈AI가 협업해 3월 13일 공개한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01. 사람처럼 말하고 소통하며 작업을 수행한다. 사진=피규어AI 유튜브
인터넷 세상 속에서만 대화가 가능했던 챗GPT에 ‘본체’가 생겼다. 지난 3월 13일 세상에 공개된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01’이 그 주인공.

미국의 휴머노이드 개발 스타트업인 피규어AI와 챗GPT의 개발사 오픈AI가 협업해 피규어01을 내놨다. 사람처럼 소통하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등장은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챗GPT로부터 시작된 생성형 AI 경쟁이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옮겨붙고 있다. 사람처럼 ‘생각하고 창작할 수 있는’ 두뇌를 얻게 된 휴머노이드 로봇을 일상생활에서 마주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넥스트MSC는 전 세계 로봇 시장이 2021년 956억 달러에서 2030년 1848억 달러로 연평균 3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피규어AI를 시작으로 빅테크들의 휴머노이드 경쟁이 한층 더 뜨거워질 전망이다.

협업 2주 만에 내놓은 작품

지금까지 ‘사람과 가장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으로는 영국의 로봇 기업 엔지니어드아츠가 개발한 ‘아메카’가 꼽혔다. 2022년 CES 행사에서 처음 공개가 됐는데 “당신한테 악취가 나는 것 같아”라는 연구원의 농담에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죠”라고 대답해 충격을 줬다.

아메카는 “로봇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까요”라는 질문에 “걱정할 필요 없어요. 로봇은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돕는 존재예요”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아메카의 등장 이후 수많은 빅테크 기업들이 휴머노이드 개발에 나섰고, 휴머노이드는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사람을 닮아가고’ 있다. 피규어01의 등장은 휴머노이드가 더 이상 ‘영화 속 상상’이 아니라 ‘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피규어01의 등장에 ‘놀라움과 기대’만큼이나 ‘충격과 공포’를 떠올리는 이유다.

피규어AI가 공개한 유튜브 영상에는 휴머노이드 로봇인 ‘피규어01’과 한 남자가 등장한다. 코리 린치 피규어AI 수석엔지니어다. “지금 식탁 위에 뭐가 보이나요? 먹을 것 좀 건네 줄래요?” 남자의 부탁에 휴머노이드 로봇이 손으로 식탁 위 사과를 집어 남자에게 건넨다. 동작이 빠르지는 않지만 ‘손’을 쓰는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다.

“지금 한 행동을 설명해 줄래요?” 남자의 물음에 휴머노이드가 답한다. “나는 지금 사과를 줬어요. 그러니까 그게…어…테이블 위에 있는 것 중에서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었거든요.” 이후 로봇은 남자의 부탁에 따라 식탁 위 그릇들을 정리해 건조기로 옮겨 놓고, 쓰레기를 버리는 등 다양한 일들을 수행한다.

“오늘 잘한 것 같나요?” 남자가 묻자 휴머노이드 로봇이 답한다. “내 생각에는…나…나 꽤나 잘한 것 같아요. 사과는 새 주인을 찾았고 쓰레기는 없어졌고 식기는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놓았으니까요.”

영상이 공개된 후 사람들은 챗GPT가 공개됐을 때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피규어01’과 린치 엔지니어가 소통하는 과정이 마치 ‘사람과 사람의 소통 방식’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이다.

피규어01에게 콕 집어 ‘사과’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고 ‘먹을 것을 달라’고 했는데 스스로 추론하고 판단해 사과를 집어줬다. 왜 사과를 줬는지 설명하는 문장을 말할 때는 ‘어’와 같은 추임새를 넣거나 총평을 남길 때는 ‘나’라는 말을 두 번 반복하기도 한다. 마치 사람이 ‘생각하고 말을 하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린치 엔지니어는 영상이 공개된 뒤 자신의 엑스 계정에 “우리는 오픈AI와의 협업 덕분에 피규어01과 완전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며 “피규어01은 시각적인 경험을 설명하고 다음 행동을 계획하는 것은 물론 기억을 더듬고 자신의 추론을 말로 설명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올렸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영상이 피규어AI가 오픈AI와 손을 잡은 지 단 2주 만에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점이다. 오픈AI와 피규어AI는 지난 2월 29일 휴머노이드 로봇을 위한 차세대 생성형 AI의 개발을 위해 협업을 발표했다.

이 영상이 공개된 피규어AI의 공식 유튜브 계정에는 3주 전과 2개월 전, 5개월 전 공개한 피규어01의 영상도 함께 올라와 있다. 가장 최근인 3주 전 영상 속에는 피규어01이 높이 쌓여 있는 상자 더미를 옮기는 작업을 수행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물론 이 영상 속에서도 피규어01은 이족 보행 로봇 치고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걷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릎은 늘 구부러져 있고 발목 또한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속도는 느리기만 하다. 자막에는 로봇의 속도가 일반 인간과 비교해 ‘16.7%’의 속도로 ‘완전자율’로 상자를 옮기는 작업을 수행했다고 쓰여 있다.

사람처럼 걷고 손을 움직이던 휴머노이드 로봇이 챗GPT를 장착한 뒤 ‘사람처럼 말하고 소통하는 능력’까지 얻게 된 것이다. 미국 IT 전문 매체 벤처비트는 “이번에 공개된 피규어01 시연 비디오는 휴머노이드 부문에서 상당히 중요한 도약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며 “로봇이 사람과 자연스럽게 상호 작용하고 사람이 원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추론하고 작업을 수행해내는 데 있어서 과거 다른 휴머노이드와 비교해 훨씬 자연스럽고 원활했다”고 평가했다.
사진=피규어AI 유튜브
사진=피규어AI 유튜브
피규어AI vs 테슬라, 로봇 시장 주도할 주인공은?

피규어01을 개발한 피규어AI는 미 캘리포니아주 서니베일에 본사를 둔 로봇 스타트업이다. 브렛 애드콕 CEO는 1986년생으로 어린 시절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시리즈에 빠진 뒤 평생을 ‘공상과학 덕후’이자 ‘로봇 덕후’로 지냈다고 한다. 16세 때 웹 회사에서 일을 하기 시작해 지금까지 7번 창업을 했다.

2013년 창업한 기술 전문가들을 위한 인재 마켓플레이스인 ‘베터리’, 2018년 전기 동력 기반 상업용 수직이착륙 항공기(eVTOL) 개발업체 ‘아처 애비에이션’ 등이 대표적이다. 2022년 보스턴다이내믹스, 테슬라, 구글 딥마인드, 애플에서 일한 경력자를 중심으로 피규어AI를 설립했다. 현재 CTO를 맡고 있는 제리 프랫은 MIT 출신으로 20년 이상 휴머노이드 분야를 연구했다.

피규어AI가 로봇 업계에서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로 눈도장을 찍은 건 지난 2월 23일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와 AI반도체 선두주자인 엔비디아가 대규모의 투자를 결정했다는 블룸버그의 보도 이후다.

베이조스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익스플로러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약 1억 달러를 피규어AI에 투자하기로 했으며 아마존과 엔비디아가 각각 투자사를 통해 5000만 달러의 투자를 결정했다.

이뿐만 아니다. 1월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가 9500만 달러, 오픈AI가 500만 달러 투자 계획을 밝혔다. 삼성과 LG도 피규어AI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펀딩에서 평가받은 기업가치만 약 20억 달러, 지금까지 확보한 자금만 해도 총 6억7500만 달러에 달한다.

블룸버그는 “피규어AI는 당초 5억 달러의 자금을 수혈하고자 했지만 지난 1월 MS와 오픈AI가 초기 주요 투자자로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른 기업들의 투자가 이어졌다”며 “AI의 새로운 응용 분야를 찾기 위한 쟁탈전이 시작됐다”고 분석했다.

피규어AI의 강력한 맞수로 꼽히는 건 테슬라다. 지난 2월 24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자신의 엑스에 ‘걸어다니는 옵티머스’의 영상을 공개했다. 옵티머스는 테슬라가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이다. 2022년 첫 공개 이후 1년 만에 10kg 가벼워지고 보행 속도가 30% 빨라진 옵티머스 2세대 모델을 선보인 것이다.

아직 사람과 같은 걸음걸이는 아니지만 걷는 모습이 꽤 자연스러워졌다. 정교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섯 손가락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게 됐다. 1년 전 옵티머스는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양팔을 접거나 흔드는 등 기초적인 동작만 가능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빠른 속도의 발전이다.

옵티머스와 관련해 가장 주목할 점은 ‘대량 생산’ 계획이다. 머스크는 “옵티머스를 성능이 매우 우수한 로봇으로 만들고 수백만 대를 양산할 것”이라며 “앞으로 3~5년 이내에 2만 달러 이하로 주문을 하는 게 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24년 3월 18일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열린 연례 엔비디아 GTC 인공지능 콘퍼런스에서 엔비디아의 창립자이자 CEO인 젠슨 황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4년 3월 18일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SAP 센터에서 열린 연례 엔비디아 GTC 인공지능 콘퍼런스에서 엔비디아의 창립자이자 CEO인 젠슨 황이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로운 복병 ‘엔비디아’ 참전, 점점 더 사람을 닮아가는 AI

테슬라와 피규어AI가 불을 붙인 휴머노이드 전쟁에 엔비디아도 참전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로봇 사업에 대한 청사진을 3월 18일 공개했다. 그는 “미래에는 움직이는 모든 것이 로봇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무대에는 생성형 AI를 이용해 훈련시킨 로봇 ‘오렌지’와 ‘그레이’도 함께 등장했다. 마치 ‘반려동물’과 비슷한 생김새를 지니고 있다. 걷는 모양이나 행동도 강아지와 비슷하다. 먹을 걸 달라고 떼를 쓰다가 젠슨 황이 잠시 뒤 주겠다고 하자 조용해진다.

엔비디아는 이들 로봇과 함께 로봇 훈련을 가능케하는 플랫폼 구축을 위한 ‘프로젝트 그루트’, 엔비디아의 차세대 AI반도체인 블랙웰이 탑재된 시스템온칩 ‘토르’를 함께 공개했다. 엔비디아 관계자는 “결국 AI의 마지막 단계는 로봇이다”며 “강력한 하드웨어와 서비스가 모두 합쳐진 로봇을 미래의 방향성으로 제시한 것이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구글도 AI 두뇌를 장착한 로봇을 개발 중이다. 구글은 2023년 7월 자사의 블로그를 통해 ‘말하는 로봇’의 탄생을 예고했다. 로봇 트랜스포머 2(RT-2)라는 시각·언어·행동(VLA) 모델을 적용해 로봇이 “음료를 쏟았어요”와 같은 모호한 문구를 이해하고 문제 해결에 필요한 단계를 스스로 알아서 행동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RT-2는 웹의 텍스트와 이미지로 학습된 트랜스포머 기반 모델로 로봇이 익숙한 상황뿐 아니라 새로운 상황 속에서도 더 쉽게 이해하고 필요한 행동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마존은 로봇 스타트업 어질리티 로보틱스를 지원하고 있다. 어질리티 로보틱스가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디짓’은 현재 아마존의 물류센터에 투입돼 인간 근로자들과 함께 일을 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도 휴머노이드 로봇 투자에 적극적이다. 대표적인 곳이 현대차의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다. 1992년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사내 벤처로 시작해 2013년 구글, 2017년 소프트뱅크그룹을 거쳐 2021년 현대차그룹의 품에 안겼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013년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하며 주목받은 로봇계의 전통 강자다. 아틀라스는 걷기, 장애물 건너기, 계단 오르내리기, 던지기, 공중제비 등의 고난도 동작을 선보이며 세상을 놀라게 했다.

지난 3월 6일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가장 최근 공개한 ‘아틀라스’ 영상은 두 개의 관절을 갖춘 손가락 세 개를 유연하게 움직이며 필요한 동작들을 수행해낸다. 이미 보스턴다이내믹스에서 개발한 사족보행 로봇 ‘스팟’이 현대차그룹의 싱가포르 글로벌혁신센터 생산 라인에 투입돼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아틀라스 또한 머지않아 현대차의 자동차 공장에 투입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런던=이정흔 객원기자 luna.jh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