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3월 26일 여의도 사옥에서 열린 LG전자 제22회 정기주주총회에서 조주완 LG전자 사장(이사회 의장)이 사업계획을 알리고 있다.  이승재기자 fotoleesj@hankyung.com
3월 26일 여의도 사옥에서 열린 LG전자 제22회 정기주주총회에서 조주완 LG전자 사장(이사회 의장)이 사업계획을 알리고 있다. 이승재기자 fotoleesj@hankyung.com
“주주 참석번호 000번입니다. 오늘 프레젠테이션 중 ESG 부문에서 회사의 전략과 함께 경영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말씀하셨는데요. LG전자의 공급사 중 중국 기업 일부가 신장위구르 자치구에서 소수민족에 대한 강제 고용 관행으로 비판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공급망의 인권침해 의혹에 대해 회사의 제반적인 활동을 감독하는 이사회, 특히 ESG위원회에서는 사실 규명 실사를 하셨나요. 했다면 어떠한 결정을 내리셨는지 공개 요청드립니다.”

3월 26일 LG전자의 제22회 정기주주총회가 열린 날. 주총 장내에는 일순 긴장감이 흘렀다.주주들의 공개 질의응답 시간, 그중의 첫 번째 질문이었다. 날카로웠다. 사업자 입장에서 예민한 양국 간의 정치적 리스크에 답을 해야 함은 물론 이사회와 위원회의 현장감독 여부를 한꺼번에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은 구체적인 답변이 가능한 임원을 찾았다.

“네. 질의하신 부분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고요. 구체적인 실사도 완료했습니다. 그 부분은 ESG 개선 보고에 공식적으로 안내하겠습니다.” 이삼수 LG전자 최고전략책임자(CSO)가 곧장 막힘없이 대답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도 마이크를 이어받아 “방금 CSO가 말씀드린 대로 관련 내용은 개선 계획을 마련해서 실행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내용들을 성실하게 개선해 나가고 또 계획도 발전적으로 만들어 나가도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20분 속전속결에서 90분
3월 26일 여의도 사옥에서 열린 LG전자 제22회 정기주주총회에는 LG전자의 성장동력을 알리는 사업모델을 전시했다. 사진=이승재기자 fotoleesj@hankyung.com
3월 26일 여의도 사옥에서 열린 LG전자 제22회 정기주주총회에는 LG전자의 성장동력을 알리는 사업모델을 전시했다. 사진=이승재기자 fotoleesj@hankyung.com
LG전자의 주주총회 풍경이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만 해도 주총의 긴장감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난해 열린 제21회 정기주총은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해 주주들의 질의와 문제 제기 없이 20여 분 만에 마무리됐다. 20분 동안 회사는 재무제표, 정관 변경, 이사 선임,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 이사 보수 한도 등의 안건을 모두 승인했다.

올해 주총은 오전 9시 정각에 시작해 10시 30분에 마무리됐다. 소요시간만 90분, 직전 주총과 비교하면 70분이 늘었다.

주총장을 찾은 인물의 모습도 확 바뀌었다. 2023년에는 부사장이 주총 의장을 맡았지만 올해는 CEO가 직접 선두에 섰다. 조주완 사장은 “올해 주주총회는 열린 주총 콘셉트로 예전과는 전혀 다른 형식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달라진 주총에 대한 자신감과 설렘이 묻어 있었다.

조 사장의 양 옆으로는 LG전자의 임원진이 총출동했다. 회사의 사업본부를 맡고 있는 류재철 H&A사업본부장, 박형세 HE사업본부장, 은석현 VS사업본부장, 장익환 BS사업본부장 등 사업본부장 4인과 김창태 최고재무책임자(CFO), 이삼수 최고전략책임자(CSO), 김병훈 최고기술책임자(CTO) 등 C레벨이 한자리에 모였다.

주총장 맨 앞줄에는 사외이사 4인과 인사, 금융, 회계, 홍보, 글로벌경영관리, 법무 등 담당임원도 자리했다. 주총의 사회는 올해 2월 LG전자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영입된 박원재 IR 담당(상무)이 맡았다. 이전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진풍경이다.

조 사장은 “책임 경영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사업본부장을 직접 초대했다”며 “각자의 자리에서 LG전자의 주주가치 제고에 많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임원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했다.

조 사장은 의안 승인에 앞서 참석한 주주들에게 중장기 전략 방향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헤드셋 마이크를 착용한 그는 단상의 가운데로 나와 대본 없이 20분가량 사업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밸류 업’ LG전자가 달라졌다
중장기 전략 키워드는 ‘성장’, ‘수익’, ‘기업가치’. 기회가 큰 B2B에서 성장을 가속화하고, 전 세계 7억 대 기기를 플랫폼으로 활용하는 서비스 사업을 펼치며 수익을 확대하는 한편, XR이나 전기차 충전과 같은 유망 신사업을 조기에 육성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는 “주주 여러분께 중장기 전략을 발표하는 자리가 처음”이라며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사업본부장들도 조 사장이 제시한 중장기 전략 방향에 맞춰 자신이 맡은 사업본부가 올해 중점적으로 추진할 전략 과제를 설명했다. 곧이어 주주들이 최고경영진에게 질문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됐다. 진땀 나는 ESG 질문 외에도 TV사업 부문에서 경쟁사 추격에 대한 입장, TV사업 부문의 합작법인 설립 여부 등 민감한 질문이 이어졌다.

사전에 받은 검열된 질문이 아니었다. 주주들은 주주번호와 이름을 공개하고 LG전자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질문을 쏟아냈다. 최고경영자들도 성심껏 답했다.

박형세 HE사업본부장은 “패널 가격 상승으로 프리미엄 TV 수익성이 악화된 게 사실”이라면서도 경쟁사의 올레드TV 진출에 대해선 묵직한 한 방도 날렸다. 박 본부장은 “근 10년 동안 LG전자의 올레드를 비방하고 안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들어왔다”며 “(경쟁사의 올레드TV 진출은) LG전자에 시장 확대 측면에서 굉장한 기회요인”이라고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는 “제품 경쟁력 부문에서 절대우위를 가져가면서 5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계속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의 답변을 끝으로 10여 분에 걸쳐 총 3건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일부 기업에서 볼 수 있는 고성과 고함 등 소동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총장에 참여하지 못한 주주들의 사전 질문도 받았다. 인수합병(M&A) 계획에 대한 질문에 조 사장은 “최근 지분 투자가 논의되고 있어 조만간 이야기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며 “우리가 신성장동력으로 가진 플랫폼, B2B 등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규 사업영역으로 전기차 충전과 메타버스를 꼽으며 “최근 메타에 버금가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먼저 저희를 찾아오고 있어 선도 업체들과 협력해 온디바이스 AI 서비스를 확장하면 고객경험 혁신과 사업 모델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1주당 800원, 부족한 면 많았다”이날 LG전자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3개년 신규 주주환원정책도 발표했다.

먼저 배당 주기를 연 1회에서 2회로 늘린다. 또 배당 성향은 기존 연결재무제표 기준 당기순이익의 20% 이상에서 25%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고, 내년부터 최소 배당금(1000원)을 설정한다.

조 사장은 “과거 3년 동안 보통주 1주당 800원대로 부족한 면이 많았다. 물론 여전히 적지만 1000원은 아주 최소한의 보장된 배당금이라는 부분을 이해해 달라”며 “주주분들에게 더 많은 환원을 하기 위해 전 임직원과 함께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달라진 주주환원정책은 최근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발을 맞췄다. LG전자의 실적은 꾸준히 우상향 중이다. 캐시카우인 생활가전 사업과 전장 사업을 합친 매출 규모는 지난해 40조원을 넘어섰다. 8년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성장했다. 또 LG전자의 연간 매출은 작년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3년 연속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러나 LG전자의 주가는 작년 8월 이후 꾸준히 9만~10만원대에서 움직이고 있 있다. 주주로선 아쉬운 부분이다.
‘밸류 업’ LG전자가 달라졌다
LG전자는 이번 주총을 시작으로 기업가치 제고와 주주환원 정책을 담금질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주총의 사회자인 IR담당 박원재 상무는 지난 2월 19일 LG전자 주식 3005주를 주당 9만9100원에 장내 매수하며 기업가치 제고를 확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규모만 3억원어치다. 흔히 임원의 장내매수는 책임경영과 향후 실적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본다는 점에서 ‘바닥론’이 제기된다.

조 사장은 “주주환원정책과 함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사업모델 혁신, 신사업 가속화 등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며 주주가치를 지속 높일 수 있도록 대표이사를 포함해 전 구성원이 함께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