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 Fed 의장. 사진=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 Fed 의장. 사진=연합뉴스
미국 국채 금리가 치솟으며 한국 개인 투자자들이 올 들어 집중 매수한 미국채 상장지수펀드(ETF)의 손실폭이 커지고 있다.

6월로 예상된 첫 금리 인하 시점이 미뤄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미국채ETF의 투자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것이다.

‘홍콩 ELS 채권’ 파문이 가시지 않은 가운데 ‘안전자산’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아 호실적을 자랑했던 증권사도 웃지못할 상황이 됐다. ‘신중론’에 무너진 안전자산8일(현지시간) 미국채 10년물금리가 한때 연 4.464%까지 치솟으면서 지난해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물 국채는 한 주 사이에 20bp가량 급등하며 기술적 저항선인 4.4%선을 넘어서는 등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국채 금리, 즉 이자율이 높아졌다는 건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야 살만큼 시장에서 인기가 떨어졌다는 뜻이다. ‘안전자산’으로 평가 받는 미국 국채의 몸값이 떨어지는 이유는 굳이 안전자산에 투자해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 시장이 그렇다.

지난 달 미국의 비농업부문 신규 고용은 30만3000명으로 시장 예상치(20만 명)를 웃돌았다. 미국 고용지표가 시장 예상치를 웃돌며 6월로 예상된 첫 금리 인하 시점은 미뤄질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페드워치에 따르면 이날 기준 6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48.3%로, 지난달 초 전망치(73.3%)보다 크게 낮아졌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고금리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6월 통화정책에 대한 처방전을 내놓고 싶지 않다”며 “현 상황에서는 (6월) 금리 인하가 부적절한 행동일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선물시장에서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첫 금리 인하 시기로 9월을 예상하는 견해가 늘어나고 있으며, 연내 3회 금리 인하가 가능할지에 대한 의구심마저 커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밝혔다.

6월 인하에 대한 기대가 줄면서 미국 장기채 ETF의 투자 변동성은 크게 확대됐다.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 수익률은 3개월간 -5.37%로 부진했다. 이 상품 순자산총액은 1조원이 넘는다. ACE 미국30년국채선물레버리지(합성H) 수익률은 같은 기간 -10.11%로 하락했다. KB자산운용의 KBSTAR 미국장기국채선물레버리지(합성H)는 3개월 간 -6.80%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TIGER 미국채30년스트립액티브(합성H)는 -8.11%를 기록했다.

미국 ETF에 직접 베팅한 서학개미들 역시 울상이다. 미국 장기 국채 관련 상품은 한국 투자자가 올 들어 집중 매수한 종목이다.

이날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가 미국 증시에서 순매수한 10위 종목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이상 미국채 3배 ETF(종콕코드 TMF)’는 20년 이상 초장기 미국 국채로 구성된 지수의 3배로 수익률이 결정되는 레버리지 상품이다. 서학개미가 최근 3개월 간(4월 5일 기준) 사들인 금액만 2066억7250만원(1억5252만달러)에 달했으나 이 기간 수익률은 –19.5%를 기록했다.

블랙록이 운용하는 ‘아이셰어 20년 이상 국채 ETF(종목 코드 TLT)’에도 3개월 간 1000억원이 몰렸으나 이 역시 같은기간 수익률은 –6.2%다.

앞서 증권가는 연내 본격적인 기준금리 인하 국면을 예측하고 앞다퉈 장기채권 투자를 권장하고 관련 상품 판매에 매진했다. 금리가 하락하면 상대적으로 잔존기간이 짧은 채권보다 수익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채권 개미가 급증하며 증권사의 채권 평가이익도 큰 폭으로 늘었을 것으로 전망된다.

KB증권은 올해 1분기 리테일채권 판매액이 4조3000억원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부터 글로벌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이 종료되고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인하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면서 리테일채권에 시중 자금이 몰린 것이다.

이 중에서도 개인투자자 대상 국채 판매액은 1조1000억원 이상을 기록했다. 이는 KB증권 전체 리테일채권 판매액의 약 3분의 1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 기간 브라질 국채는 2014억원, 미국 국채는 2218억원의 판매액을 기록했는데,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65%, 34% 증가한 수치다.

이밖에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등도 쏠쏠한 실적을 올렸다. 삼성증권은 올 초 이후 2월 15일까지 약 한 달 반 만에 지난해 한 해 동안의 판매액(1조7500억원)의 약 35%에 해당하는 금액을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권사는 웃었지만 상당수 투자자는 ‘비자발적 장기투자자’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주가 상승의 2~3배를 추종하는 레버리지 상품을 담은 투자자라면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채는 안전자산이라고 하지만 장기물 투자의 위험성을 간과한 것”이라며 “채권은 시간과의 싸움인 만큼 긴 호흡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추격 매수에 대한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장기채권의 금리 변동에 따른 수익률 변동폭은 단기채권보다 훨씬 높다”며 “금리 하락에 대한 확실한 시그널이 관측될 때 투자를 해도 늦지 않다”고 말했다.

정채희 김영은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