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신 3고’ 쇼크 : 미국 금리]
제롬 파월 Fed 의장./연합뉴스
제롬 파월 Fed 의장./연합뉴스
미국 경제가 너무 좋아서 문제다. 물가를 잡으려고 기준금리를 5% 넘게 올린 ‘긴축’ 국면에서도 생산, 소비, 고용이 다 호황이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줄어야 하는데, 가계는 소비를 줄이지 않았고 일자리는 빠르게 증가했으며 경제는 탄탄하게 성장했다. 3월 한 달에만 신규 고용은 30만3000명을 기록했고 미국 소비의 주요 지표인 소매판매는 2월보다 0.7% 늘었다. 결국 제롬 파월 Fed 의장은 “물가를 잡는 데 시간이 더 걸릴 것 같다”고 선언했다.

아침을 파월 의장의 얼굴 보는 것으로 시작하던 투자자들은 빠르게 반응했다. 4월 16일(현지 시간) 파월 의장이 고금리 장기화를 공식화하자 연준 금리에 민감한 2년 만기 미 국채금리는 장중 5%를 넘었다가 4.9%대에 안착했다.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도 4.669%까지 올라 올해 최고치를 연일 경신했다.

올해 전망도 심상치 않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올해 미국의 경제 성장률을 2.7%로 전망했다. 주요 7개국(G7) 평균과 비교하면 2배의 성장률이다.
대량해고도 흡수하는 고용력, "금리인상" 발언까지 나왔다
연준 "필요시 금리 인상"발언 까지…고용시장 뜨거운 미국, 금리 딜레마[‘신 3고’ 쇼크]
Fed가 정한 미국 물가상승률 목표치는 2%다. 2지난해 1월 6%까지 올랐던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말 이후 3%대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고용시장과 소비시장 지표는 탄탄하다. 미국 3월 실업률은 3.8%로 완전고용 수준이다.

전규연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 금리인하의 시그널은 실업률이 될 것”이라며 “실업률은 한 번 오르기 시작하면 평균 26개월 동안 상승하며 실업률이 본격적으로 상승하면 대체로 경기침체가 시작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미국 내 실업자 대비 빈 일자리 수는 1.36개로 구직 의사가 있는 노동자보다 인력을 원하는 기업이 더 많다.

지난해부터 미국 빅테크와 금융 업계에 대규모 감원 바람이 불었지만 고급 인력은 빠르게 재배치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주요 기업 역시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 정보 업체 팩트셋에 따르면 미국 S&P500 소속 기업들의 매출 성장률은 지난해 2분기 0.9%까지 떨어졌지만 올해 4분기에는 5.7%로 성장할 전망이다.

고용이 늘자 소비자들도 지갑을 열었다. 미국 소비의 주요 지표인 소매판매는 지난 3월 전월보다 0.7% 늘어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예상치 0.3%를 크게 웃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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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데도 물가, 소비, 고용이 동시에 상승하는 동력은 미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이었다. 코로나19 이후에도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은 이어졌다.

미국 정부가 돈을 푼 대표적인 장면이 ‘학자금 대출 탕감’이다. 백악관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 들어 학자금 부채를 탕감받은 미국인은 430만 명으로 늘었다. 탕감한 학자금 대출은 1530억 달러, 한화로 약 211조원에 이르렀다.

미국이 헬리콥터 머니를 풀자 나라 빚은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 연방정부의 부채는 34조 달러(약 4경5000조원)에 달한다. 의회 예산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97%였던 공공부채는 2033년 114%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IMF 역시 미국 정부의 재정지출을 경고하고 나섰다. IMF도 미국의 경제성과가 재정지출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4월 16일 IMF는 연례 세계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최근 탁월한 성과는 분명히 인상적이고 전 세계 성장의 주요 원동력 중 하나”라면서도 “하지만 이는 장기적인 재정 지속 가능성과 어울리지 않는 재정정책 등 강력한 수요 요인에 기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아메리카 퍼스트'가 인플레이션 촉발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이 2020년 9월 9일 미시간주 워런의 전미자동차노조(UAW) 본부에서 '바이 아메리카'를 슬로건으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이 2020년 9월 9일 미시간주 워런의 전미자동차노조(UAW) 본부에서 '바이 아메리카'를 슬로건으로 연설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의 공급망 재편도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은 삼성전자, TSMC 등 반도체 기업뿐만 아니라 전 세계 배터리, 자동차 기업의 생산기지를 미국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기업들을 유치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내건 것은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등 규제라는 채찍과 보조금이라는 당근이다. 최근 삼성전자도 미국에 60조원을 투자해 첨단 반도체 공장을 짓는 대신 9조원의 보조금을 받기로 했다. TSMC는 보조금(약 9조원)을 포함해 총 15조 7000억원(166억 달러)을 받는다.

이 같은 공급망 재편이 미국 내 투자를 늘리는 데는 성공하는 듯 보일지 몰라도 이를 뒷받침할 인력은 모자라고, 결국 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게리 후프바우어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파이낸셜타임스에 “기업들이 미국에 와서 돈을 쏟아붓고 있는데 정작 일할 사람은 없다”며 “신규 투자 기업에 맥도날드 직원을 데려다 앉힌다든지 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실제 공급망 재편이 더 많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민간 기관인 리쇼어링이니셔티브에 따르면 리쇼어링과 FDI를 통해 창출된 일자리는 지난해 상반기에만 약 37만 개였다.

미국은 이렇게 발생한 인플레이션을 다시 주변국으로 수출했다. 미국은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국가다.

개인이 돈이 없을 때 대출을 받듯이, 국가도 돈이 부족하면 채권을 발행해 돈을 조달한다. 미국이 기존보다 더 높은 금리로 채권을 발행하면 기존에 발행한 채권의 가격은 떨어진다.

결국 새로운 미국채로 수요가 몰리고, 미국에 들어오는 달러 양은 늘어난다. 이는 다시 달러 강세로 이어진다. 달러 가격이 치솟으면 한국 등 다른 나라의 화폐 가격은 하락한다.

원자재나 에너지 수입량이 많은 한국 등 주변국은 물가에 신음하고 금리도 실물경제도 진퇴양난에 빠진다.

반대로 미국이 주변국의 상품을 수입하기에는 좋은 상황이 펼쳐진다. 화폐 가치가 높아진 달러로 주변국 물건을 더 싼 가격에 수입하면서 미국 내 수입 물가는 낮아지고 유가 상승은 억제할 수 있다.

미국이 자국의 인플레이션을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방법이다.

IMF는 이를 두고 “미국의 과잉 지출이 인플레이션을 다시 점화하고 글로벌 자금 조달 비용을 상승시켜 전 세계의 장기 재정 및 금융 안정을 저해할 위험이 있다”며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프트랜딩이 아닌 노랜딩…멀어지는 금리인하미국의 금리인하가 하반기로 미뤄지자 ‘경기 연착륙(Soft landing)’을 준비하던 월가에서는 이제 ‘무착륙(No landing·침체 없는 호황)’이 거론되고 있다.

아폴로 글로벌 매니지먼트의 토르스텐 슬록 이코노미스트는 “경제가 계속 재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Fed는 2024년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펜하이머자산운용의 존 스톨츠퍼스 수석투자전략가는 “우리의 견해는 Fed가 더 높은 금리를 더 오래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이 꺾일 때까지 ‘일시정지’를 지속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수 의견이지만 일각에서는 금리인상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UBS 그룹 AG는 미국 경제의 강력한 성장과 끈질긴 인플레이션으로 Fed의 금리인상 확률이 커졌다고 봤다.

기본 시나리오상으로는 2회 금리인하를 예상하지만 인플레이션이 Fed 목표치인 2%까지 하락하지 않으면 Fed가 금리인상으로 방향을 전환, 국채·주식 투매를 촉발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연준 내에서도 ‘매파’와 ‘비둘기파’ 간 의견이 갈린다. 표를 가진 대부분의 연준 위원들이 ‘금리인하’에 무게를 두고 있지만 최근 미국에서는 '매파'들의 발언이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 매파로 분류되는 크리스토퍼 윌러 연준 이사는 3월 말 “근래 인플레이션 지표가 실망스럽다”며 “최근 데이터를 고려하면 금리인하 횟수를 줄이거나 인하 시기를 미루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존 윌리엄스 뉴욕연방은행(연은) 총재는 지난 18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세마포 경제서밋에 참석해 미국 경제가 강세임을 고려할 때 "금리 인하의 시급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금리 인상 가능성에 대해 "기본 예상치는 아니지만 경제지표에 따라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하다면 단행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