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은 재개발과 함께 조합이 시행을 맡아 수익을 내야 하는 부동산 개발사업이기도 하다. 조합과 조합원들에게는 공사비와 이자 비용뿐 아니라 수익을 가져다주는 일반분양 가격과 입주권이나 새 아파트 시세가 재건축을 추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로 인해 재건축 사업은 양면적 특성을 보인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어야 분양이 잘되고 집값이 올라 수익성이 높아질 수 있는 한편, 집값 급등의 원흉으로 지목돼 ‘규제 폭탄’을 받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리인상이 본격화한 2022년 하반기 이후 2년여가 돼가는 지금, 재건축 사업은 갖가지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몇 년 사이 두 배 가까이 올라버린 공사비와 이자로 인해 비용은 급증한 반면, 주택시세가 떨어지고 수요 또한 감소하며 분양 수익은 장담하기 어렵다. 이에 재건축 사업마다 조합원 추정 분담금은 높아지고 있다. 노원구 상계주공 5단지 전용면적 31㎡ 소유주는 재건축 뒤 전용면적 84㎡ 타입 새 아파트를 받으려면 분담금 5억원을 내야 한다.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에 속한 재건축 사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강남권 재건축 사업에 수억원대 금액이 부과될 것으로 보이는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도 걸림돌이다. 반포1단지, ‘신이 내린 사업성’ 삐끗 사업성과 입지 면에서 강남권 최고라 불렸던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디에이치 클래스트)는 천문학적인 공사비 인상을 앞두고 있다. 재건축 업계에 따르면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올해 1월 기존 3.3㎡당 약 540만원(2017년 협약서 기준)이었던 공사비를 830만원으로 인상하자는 내용의 공문을 조합 측에 보냈다. 총 공사비는 2조6363억원에서 4조775억원으로 2조원이 넘게 늘었다.
반포1·2·4주구 재건축 사업은 일명 ‘구반포’의 상징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더 주목받았다. 반포동 한강변 370484㎡ 부지에 위치한 거대단지인 데다 기존 5층짜리 저층 재건축으로 조합원당 대지지분이 높아 사업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대로를 보고 마주한 반포1단지 3주구(래미안 트리니원)도 미처 피하지 못한 재건축 부담금도 피해갔다. 반포1·2·4주구 조합은 2018년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재시행을 앞둔 2017년 말 관리처분계획을 서둘러 수립해 신청했다. 반포는 2021년 강남구와 송파구에 위치한 일명 ‘압청대잠(압구정·청담·대치·잠실)’에 시행된 토지거래허가제까지 피해갔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에서 실거주 용도로 주택을 매입해야 구청장에게서 허가를 받을 수 있다.
2013년 조합을 설립한 반포1·2·4주구는 규제를 피해 인허가를 마친 뒤 서울 집값이 본격적인 급등에 돌입한 2017년 현대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했다. 그런데 2022년 1월 이주까지 마친 상태에서 막판에 공사비 인상이라는 암초를 만난 셈이다. 반포1·2·4주구는 조합원 1인당 8000만원에서 1억원가량의 수익이 감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일단 가는 초기·후기 재건축 같은 강남권에서 비슷하게 ‘막차’를 탄 곳은 서초구 방배동 주택재건축이다. 이미 방배5구역(디에이치 방배)과 6구역(래미안 원페를라), 13구역(방배포레스트자이)이 각각 착공, 이주를 마친 상태에서 분양 시기를 재고 있다. 이들 단지 역시 일찍이 관리처분인가를 마쳐 재건축 부담금을 피했다. 방배 주택재건축 중 가장 규모가 큰 방배5구역은 지난해 이미 현대건설로부터 공사비 인상 요청을 받아 한국부동산원 검증까지 마쳤다. 총 공사비가 7730억원에서 1조905억원으로 올랐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소장은 “반포1·2·4주구는 기존에 높은 대지지분에 재초환까지 피해 워낙 사업성이 좋은 터라 공사비가 오른다고 해도 ‘1+1’로 전용면적 84㎡ 2채를 받을 수 있는 조합원이 전용면적 59㎡ 2채를 받는 정도의 손해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반포뿐 아니라 방배5구역, 6구역처럼 이미 이주와 철거를 마친 곳은 추가 분담금이 늘어나더라도 일단은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초기 재건축도 사업진행에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착공까지 수년이 걸리는 데다 기본형 건축비 상승으로 분양가도 점점 더 오를 전망이다. 올해 3월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기본형 건축비는 ㎡당 203만8000원으로 지난해 9월 대비 3.1% 올랐다. 현재 서울에선 강남3구와 용산구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고 있다.
지난해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된 압구정 특별계획구역, 대치동 은마아파트와 ‘우선미(우성1차·선경·미도)’, 수서 까치마을아파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선수촌, 신천동 장미아파트 등이 초기에 속한다. 강남도 ‘규모의 경제’ 필요해
반면 건축심의나 사업시행인가를 마친 중간 단계 재건축은 사업이 지연될 가능성도 존재한다. 사업규모가 작고 대지지분이 크지 않은 10층 이상 중층 재건축 사업에서 이 같은 어려움은 심화할 수 있다. 조합원당 비용부담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주택 호황기에는 나홀로 아파트에 가까운 재건축 사업도 강남권에선 활발하게 추진됐다. 인근 아파트 값이 워낙 가파르게 오르면서 높은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됐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단지 중 이런 사례가 많다. 신반포18차 337동 재건축 조합은 최근 조합원들에게 분담금 12억1800만원을 통보했다. 기존 용적률이 246%에 달해 일반분양 없이 1대1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사비 문제로 일부 단지는 3.3㎡당 1000만원에 육박한 공사비를 제시해도 시공사를 뽑기 어려워지고 있다. 1동 규모 신반포27차는 지난 3월 3.3㎡당 957만원 공사비를 제시했지만 한 차례 시공권 입찰이 유찰됐고 SK에코플랜트와 수의계약을 진행할 것이 유력하다.
정부와 여당은 이전 하락기와 유사하게 각종 재건축 규제완화책을 내놓고 있다. 안전진단을 사업시행계획 인가 전까지로 미룰 수 있는 ‘재건축 패스트트랙’이 대표적이다. 그로 인해 시장에 온기가 퍼져나갈지는 미지수다. 이전 하락기와 달리 공사비 급등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인허가보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폐지, 분양가상한제 지역 신축 아파트에 대한 의무 거주기간 폐지 등 사업성 향상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들 정책은 각각 ‘재건축 초과이익환수법’과 ‘주택법’ 개정이 필요한데 지난 22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하면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강영훈 부동산스터디 대표는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이 일반적인 강남권에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공사비 부담을 줄일 수 있다”며 “이미 이주한 사업장은 어쩔 수 없이 가겠지만 중간 단계 재건축 사업은 이 같은 조건에 따라 속도가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강 대표는 “강남 아파트 집주인들이 금전적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재건축 사업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사정상 급하게 매도를 하려는 소유주들이 계속 나타나면 결국 시세도 낮아질 수 있다”며 “장기적 투자 관점에서 지금보다 몇 년 뒤 가격 조정이 진행됐을 때 강남 재건축을 매수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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