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의 가치와 부강한 국가[김홍유의 산업의 窓]](https://img.hankyung.com/photo/202405/AD.36637845.1.jpg)
요즘 들어 우리나라를 볼 때 느끼는 감정이다. 이 짧은 우화를 읽을 때마다 공동체에 만족하는 제도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잘 알 수 있다. 나쁜 제도는 개인의 동기를 자극하지 못하고 혁신의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방식은 가장 민주주의 방식이다. 참여하는 분들 모두 ‘리더’가 되어 분배를 결정한다. 하지만 리더의 지식이 천차만별이라 가장 잘못된 방식으로 결정될 수 있다. 두 번째 방식은 똑똑한 리더를 뽑아 모든 운영을 맡기는 방식이다. 리더가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능력이 있다면 정말 좋은 제도이지만,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고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것이 무능한 독재자 밑에서 평생 살아가는 일이다. 세 번째 방식은 배식에 절차를 만들어 구조화하고 제도화한다. 언뜻 보기에는 멋있고 아주 효율적이며 가장 공평한 의사결정 방식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료화되어 비효율성이 발생한다. 제도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여 발목을 잡는 일이 허다하다. 결국 생산하는 사람보다 관리하는 사람이 더 많은 꼴이 된다.
마지막 방식이 가장 멋지다. 누구에게나 자유의지가 주어지고 모두 참여하는 민주주의 제도, 하지만 선택된 지도자는 구성원보다 가장 적은 몫을 가져야 하며, 권력을 가진 자가 늘 ‘겸손’해야만 가능한 제도이며 세상에 그런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스님이 적용하지 않은 두 가지 분배방식이 있다. 하나는 사회주의 방식으로 외부의 통제집단이 일정한 양의 죽을 강제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아주 평등하고 공평하다. 하지만 죽의 맛은 잘 모르겠다. 스님이 어떤 죽을 좋아하는지에는 관심이 없다. 얼핏 보기에 아주 정의로운 것 같지만 평생 죽만 먹다가 죽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죽을 먹을지 밥을 먹을지를 항상 외부 통제집단이 결정하고, 그 외부 통제집단은 경쟁이 없이 생산과 분배를 결정하기에 부패 권력 집단으로 전락한다.
다른 하나는 시장경제 방식으로 스님마다 죽의 선호도가 다르다는 가정이다. 어떤 스님은 죽을 좋아하여 많이 먹지만, 어떤 스님은 죽을 싫어하기에 분배의 양이 달라도 문제가 없다. 일정한 양이 분배된다면 그 남은 양과 부족한 양을 서로 교환하여 또 다른 가치로 만들 수 있다. 전 국민에게 일괄적인 현금 지급은 전시와 같이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을 때 국가가 분배를 책임지는 방식이다. 이러한 것은 국민의 선호도를 무시하고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가수요를 만들어 물가상승을 겪는다. 아무리 작은 분배라도 가치에 기준을 둔 배분이 필요한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가 무지와 편견에서 탈출하여 부강한 국가에 이르기를 꿈꾼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환경을 더 많이 착취한다거나, 자본주의가 발달하면 할수록 빈부격차가 커지고 불평등이 심해진다거나, 사회주의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공평한 분배를 한다는 것으로부터 탈출하여 진정한 분배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해 볼 때이다. 지금 우리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뿌리인 소상공인과 기업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일자리가 국민의 최고의 복지이고 사람이 국가와 기업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김홍유 경희대 교수(한국방위산업협회 정책위원, 전 한국취업진로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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