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양조용은 포도알 크기가 작고 껍질은 두껍다. 산도와 당도가 식용보다 훨씬 높아 장기 숙성이 가능하다. 유럽 종이 주류인 양조용은 다시 토착품종과 국제품종으로 나뉜다.
먼저 토착품종을 살펴보자. 기후나 토양 등 해당 지역 특색을 고스란히 반영한 경우다. 와인 한 잔으로 프랑스 부르고뉴 황금 언덕 풍광이나 스페인 라만차의 거친 들판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국제품종 정의는 좀 애매하다. 공식적인 규정이나 등록범위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국제적으로 많이 재배되고 인지도 높은 품종’이라는 정도. 국제품종이란 명칭은 세계적인 와인평론가 잰시스 로빈슨 책임편집의 ‘옥스퍼드 컴패니언 투 와인(The Oxford Companion to Wine)’에서 처음 사용됐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본 시리즈에서는 그동안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 샤르도네 등 국제품종을 소개해 왔다. 이제부터는 전설처럼 신비 가득한 토착품종을 알아본다. 와인 역사가 아주 긴 구세계 국가들에는 수천 년 동안 지역 환경을 잘 극복하고 살아남은 수백 종류의 토착품종이 있다.
투우와 플라멩코의 나라 스페인의 토착품종은 400종이 넘는다. 그중 20여 종만이 포도주 생산에 사용되는데, 대표선수로는 단연 ‘템프라니요’다. 주요 생산지는 북부 리오하와 리베라 델 두에로. 온화한 기후와 석회질 토양은 와인의 미네랄리티(미네랄에서 오는 질감이나 풍미)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조생종인 이 품종은 기후나 토양에 따라 맛과 향도 크게 갈린다. 즉 서늘한 곳에서는 피노 누아처럼 섬세하지만 온화한 기후에서는 카베르네 소비뇽 버금가는 짙은 농도를 보인다. 블렌딩용으로 주로 사용했으나 최근 템프라니요 100%로 만든 와인도 많다. 재배면적은 세계 4위에 달할 정도로 넓다.
추천 와인은 ‘토레스, 셀레스테 크리안자’. 고기와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템프라니요를 100% 사용했다. 초반부터 코코넛 파우더 향을 잡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두와 허브, 강렬한 블랙베리 향이 올라온다. “긴 여운 또한 오래 기억에 남는다”는 것이 수입사 신동와인의 설명이다.
다음은 알리칸테 등 중남부 지역이 주 생산지인 ‘모나스트렐’(프랑스 표기는 무베드르)도 잘 알려진 스페인 토착품종이다. 덥고 건조한 기후를 좋아하며 당도가 매우 높다. 숙성되면 검은 과일과 짙은 가죽 향이 특징.
가성비 좋은 알리칸테 와인으로 ‘보데가스 볼베르, 타리마 힐’을 꼽을 수 있다. 이 와인은 해발 700m 산악지대, 순종 모나스트렐 원뿌리에서 생산된 포도로만 만들었다.
첫 모금부터 상쾌하다. 검은 과실 향 때문이다. 좀 더 집중하면 동물 가죽 향도 쉽게 잡힌다. 부드러운 산미와 달콤한 향을 혀끝에서 만끽할 수 있다. 알코올 도수는 15도. 와인 치고는 꽤 높다. 수입사는 동원와인플러스.
끝으로 리오하 지역 주요 화이트 와인 토착품종인 ‘비우라’. 깔끔한 꽃 향과 감귤 풍미, 부드러운 산도가 특징이다. 카탈루냐에서는 ‘마카베로’로 부르는데 생산성이 높아 농부들이 좋아하는 품종이다.
국내에서는 ‘루이스 카냐스, 비냐스 비에하스 블랑코’가 인기다. 비우라 90% 외 말바시아 10%를 섞어 만들었다. 오크통에서 5개월 숙성. 잘 익은 사과나 레몬그라스, 정향이 특징이다. “시간이 지나면 잘 익은 모과와 살구 향도 잡을 수 있다”는 것이 수입사 크리스탈와인의 설명. 아쉽게도 필자는 오래 기다리지 못했다.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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