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회장 "반도체 롤러커스터 계속 될 것"
1분기 배터리·화학·철강은 주춤
반도체, 조선, 자동차 업종 실적이 1분기 나란히 선방하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까지 이끌었다. 지난 1분기 한국 GDP는 전분기보다 1.3% 증가해 ‘깜짝 성장’을 기록했다.
지난해 분기별 0%대 성장을 이어오다 드디어 1%대 성장을 달성한 것이다. 이번 GDP에서 순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8.2%로 역대 최고 수준이었다.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의 힘이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5월 8일까지 1분기 실적을 발표한 상장사 165곳(보험 제외) 중 81개 기업의 영업이익이 작년 1분기와 비교해 상승했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는 웃었고 배터리, 화학, 철강 산업은 지난해 1분기보다 영업이익이 급격하게 감소했다. 반도체 산업은 지난해 1분기에 사상 최악의 적자를 냈던 SK하이닉스가 흑자전환하고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크게 늘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만 놓고 보면 5분기 만에 흑자전환이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전반적인 구매 수요가 늘었고 고대역폭메모리(HBM)와 DDR5, 서버SSD 등 고부가가치 제품 수요가 증가했다.
SK하이닉스는 1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과 두 번째로 많은 영업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1분기 3조원 넘는 적자를 냈지만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2조8860억원을 기록하며 반전 스토리를 썼다. 일등공신은 인공지능(AI) 서버에 들어가는 HBM 등 첨단 D램이었다. 고용량 낸드플래시 역시 판매가 급증했다.
HBM 장비를 만드는 한미반도체 역시 글로벌 AI 열풍의 수혜를 입었다. 한미반도체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이 287억원을 기록하며 지난해 1분기보다 급증했다. 한미반도체는 1조원 규모의 HBM용 생산용량을 확보, 올해는 55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한다는 계획이다.
디스플레이구동칩(DDI)을 생산하는 LX세미콘은 매출이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8% 증가했다. 원가 절감 노력에 집중하며 수익성을 개선한 것으로 풀이된다.
업계에서는 메모리 반도체의 업황 회복으로 적자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사이클 상승 국면이 왔다고 마냥 안도할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6일 "작년에 (반도체 업황이) 너무 나빴기 때문에 올해 상대적으로 좋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올해 좋아진 현상도 그리 오래 안 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도체 롤러코스터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라며 "앞으로 시설 투자를 얼마나 더 하고 얼마나 더 잘 갈 거냐 하는 것은 아직도 업계에 남아 있는 숙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반도체 생태계의 양극화는 심화했다.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1분기 206억 달러에서 309억9000만 달러로 50.7% 늘었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격차는 더 벌어졌다.
코스피 상장 대기업의 영업이익은 급성장한 반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ISC(-12.5%), 주성엔지니어링(-39.3%), 동진쎄미켐(-8.1%)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대비 줄었다. 코스피 시장에서도 중견기업 해성디에스의 영업이익은 –32.8% 줄었다.
고유가·고환율에 웃는 조선 빅3 조선업에도 오랜만에 훈풍이 불었다. 국내 조선 빅3(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는 저가 수주 늪에서 탈출하며 흑자를 냈다.
업황이 개선된 데다 고유가·고환율 덕이 컸다. 조선업은 수주 계약 대금을 달러로 받기 때문에 달러가 강세일수록 유리하고, 유가가 높을 때 해상에서 원유·가스를 시추·생산하는 해양플랜트와 원유운반선 발주가 늘어난다.
지난해 1분기 1518억원의 적자를 냈던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1분기 1602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사업별로 보면 조선 부문의 영업이익은 254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86% 늘었다. 친환경 이중연료 선박 등 고부가가치 선박 매출이 실적에 반영됐다. HD현대중공업 역시 213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면서 흑자전환했다.
삼성중공업은 1분기 영업이익(779억원)이 전년 대비 4배 가까이 뛰며 순항했다. 한화오션도 529억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했다.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과 같은 고부가 선종의 생산량이 증가하며 이익구조가 개선됐고 고환율 효과도 작용했다. 특히 상선, 특수선, 해양 등 3개 사업 분야 모두 매출이 늘고 동시 흑자를 기록했다.
증권가는 조선 3사가 올해 나란히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조선 3사가 모두 흑자를 내는 건 2011년 이후 13년 만이다.
자동차는 부품을 위주로 급격한 성장세를 보였다. 특히 타이어 업체들이 질주했다. 금호타이어와 넥센타이어 영업이익은 각각 167%, 157% 뛰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역시 영업이익이 108.8% 급증했다. 완성차 시장의 성장세는 부진하지만 교체용 타이어 수요가 늘면서 타이어 업체는 탄탄한 실적을 유지했다. 타이어업체 판매 비중을 보면 신차용 타이어가 약 25%, 교체용 타이어는 75% 정도다. 전기차 주춤? 자동차부품은 질주 자동차부품사 역시 고수익 차종 중심으로 대응 전략을 짜면서 선방했다. 현대모비스(29.8%), 현대위아(17.3%), 현대코퍼레이션(9.2%), HL만도(7.7%), 현대오토에버(0.5%) 등 주요 부품사가 안정적인 이익 성장세를 보였다.
완성차는 현대차와 기아가 모두 1분기에만 3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냈다. 현대차는 1분기 3조557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1분기 대비 2.3% 하락한 수치지만 상장사 중 삼성전자 다음으로 영업이익이 높았다.
기아는 판매량이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 대비 19.2%나 뛰었다. 영업이익은 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를 보였고 매출원가율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낮아졌다.
배터리 밸류체인 꺾였다 전기차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K-배터리는 힘을 못 쓰고 있다. 2차전지 제조기업뿐만 아니라 분리막, 양극재, 동박 등 배터리 생태계까지 무너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1분기 영업이익이 75.2% 추락했고 삼성SDI는 28.2% 꺾였다.
배터리 핵심소재 기업은 타격이 더 컸다. 5월 8일까지 실적을 발표한 상장사 중 배터리 소재기업의 영업이익이 가장 크게 떨어졌다. 배터리 분리막을 생산하는 더블유씨피(WCP)의 1분기 영업이익은 96.2% 급감했고 양극재를 생산하는 에코프로비엠의 영업이익은 93.8% 줄었다.
배터리 첨단소재를 생산하는 LG화학의 영업이익은 67.1% 감소했고 배터리 전자의 이동 통로 역할을 하는 동박 제조를 담당한 SKC는 적자를 확대했다.
배터리 밸류체인 기업 중 포스코퓨처엠은 유일하게 반등에 성공했다. 1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대비 87% 늘어난 379억원을 기록했다. 음극재 생산 확대와 판가가 상승한 영향도 있었지만 지난해 4분기 평가손실로 인식됐던 재고평가손실 환입이 467억원 반영된 덕이 컸다. 중국발 공급 과잉과 유가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커진 석유화학 업계는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74.3%), SK가스(-64.1%), 금호석유(-40.4%), TKG휴켐스(-35.1%), 효성첨단소재(-5.4%) 등 화학업체 대부분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떨어졌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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