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라인야후 사태, 기업에 국가란 무엇인가[EDITOR's LETTER]
몇 년 전 롯데가 중국에서 당한 일을 기억하시는지요. 롯데는 2016년 정부의 요구(?)에 성주 골프장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부지로 제공했습니다. 당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던 롯데가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중국 정부가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모른 척하며 시비를 걸기 시작했습니다. ‘물이 약간 새는 것 같다’는 등 온갖 꼬투리를 잡아 행정지도 명목으로 매장 문을 못 열게 했습니다. 문제 하나를 해결하면 만나주지 않는 등의 방법으로 시간을 끌며 고사시켰습니다. 중국 내 롯데 매장은 하나 하나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결국 최근 선양 사업장을 헐값에 매각하며 중국 사업을 완전히 마무리했습니다. 쫓겨나다시피 철수한 것이죠.

롯데가 국내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기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너무 불합리했습니다. 이후 이마트도 철수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때 벌어진 일입니다. 정부는 중국에 아무 말 못 했습니다. 이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고 문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이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기업에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한 CEO는 당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가능하면 사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철수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든다. 정부도 어려운 일에는 나서지 않는다.”

최근 네이버의 역작인 일본 국민 메신저 라인 사태를 보며 그 시절 롯데를 떠올렸습니다.

일본 시장 얘기부터 할까요? 참 어려운 시장입니다. 스마트폰과 TV 세계 1위인 삼성전자도, 가전 1위인 LG전자도, 세계 3위에 오른 현대자동차그룹도 뚫지 못한 시장이 일본입니다. 1990년대부터 계속 문을 두드렸지만 철수를 반복했습니다. 자동차 산업에는 도요타, 혼다가 있고 가전에는 소니, 산요, 도시바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수많은 일본인들이 한국산에 대해 갖고 있는 ‘후진국 제품’이라는 편견도 한몫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크고 작은 화장품 업체들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세이도, SK-II, 슈에무라 같은 세계적 브랜드와 쟁쟁한 중소업체가 버티고 있는 일본 뷰티 시장을 뚫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입니다. 물론 뷰티 산업의 일본 진출 길을 닦아놓은 K팝과 K드라마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어려운 일본 시장을 뚫은 또 다른 기업이 네이버입니다. 국내에서는 온갖 이해관계가 얽혀 확장이 어려워지고 메신저는 카카오에 밀리자 네이버는 라인을 들고 해외로 나갔습니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라인은 일본의 국민 메신저가 됐습니다. 야후재팬과 합작하긴 했지만 메신저 고유의 기능은 네이버의 작품이었습니다. 국내 IT 강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사례로 평가받기도 했습니다.

이 라인이 이제 경영권을 빼앗길 처지에 놓였습니다. 여기서 일본 정부가 꺼내든 카드가 중국이 롯데를 쫓아낼 때 썼던 ‘행정지도’라는 게 참 묘한 감정을 들게 만듭니다. 일본 정부는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일어났다”며 이를 막기 위해 ‘지분구조를 변경하라’고 요구했습니다. 일본 라인 지분율은 현재 네이버 50, 소프트뱅크 50입니다. 행정지도라는 명분으로 네이버가 갖고 있는 일본 라인 지분을 일본에 넘기라는 얘기입니다.

중국이 롯데를 핍박할 때는 중국 정부는 표면적으로라도 “정부는 입장이 없다”고 했고 기간도 꽤 길게 걸렸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수개월 만에 진행됐습니다. 정부가 “역사적으로 한·일 관계가 가장 좋다”고 자평하는 시기에 벌어진 일입니다.

한 기업이 다른 나라 정부, 특히 일본 같은 강대국 정부와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네이버가 잘되길 바란다”는 식의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또 외교부와 주일 한국대사관은 일본 정부의 언론 플레이를 도와줬다는 의혹까지 터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네이버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감정과 무관하게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1호 영업사원이 할 일은 무엇인가, 기업에 국가란 무엇인가.’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