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 허송세월" 국민연금 개혁 왜 못했나
지난 5월 7일 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안 합의가 불발됐다. 주호영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위원장은 국민 앞에 나서 “최종적으로 소득대체율(받는 돈) 2%포인트 차이 때문에 여야 간 합의가 안 돼 입법이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당장 국고에서 소모될 재정과 미래 세대의 경제적 부담 가중이 더 큰 문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연금개혁이 5년 늦어지면 260조원, 매년 약 52조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고 했다. 6년 뒤인 2030년에는 그해 거둬들인 보험료로 지급할 연금을 충당할 수 없어 주식·채권 등 국민연금이 보유하는 자산을 대규모 매각해야 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의 마지막 개혁은 무려 17년 전이다. 이후 3개 정부를 지나오는 동안 합계출산율은 1.19명에서 0.72명으로 반토막 났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6.8%에서 15%로 2배가 됐다. 그 결과 1990년생이 연금을 타기 시작하는 2055년은 기금 고갈이 예상되는 해다. 앞으로 30년 남았다.

21대 국회 임기는 5월 27일 끝났다. 다음 국회에서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를 재구성해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곳곳에서 “2년간 뭐했나”라는 비판과 의문이 쏟아진다.
"2년간 허송세월" 국민연금 개혁 왜 못했나
국민연금개혁은 ‘국민연금 재정계산’의 결과 발표를 앞두고 매번 도마에 올랐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정부는 2003년부터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수지를 계산하고 전망, 보험료 조정, 기금 운용 계획 등이 포함된 국민연금 운영 전반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 공시하고 있다.

이번에도 2023년 제5차 재정계산을 앞두고 전년인 2022년 7월부터 개혁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위원회 설치 공약을 사실상 철회하며 여야 합의로 국회 산하의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7월 구성됐다.

정부도 같은 해 10월 재정계산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연금 개혁안을 내놨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은 연금기금 수익률을 1%포인트 높이겠다는 것 외에 보험료율, 소득대체율, 수급 개시 연령 등 ‘개혁’과 어울리는 숫자가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다시 책임은 국회 연금특위로 넘어갔다. 그래서 연금특위는 2024년 1월 ‘전문가의 견해가 아닌 국민의 선호를 조사하고 반영하겠다’라는 취지로 24억5000만원 예산을 투입해 산하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공론화 절차 운영을 위해 김상균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를 비롯한 각계 분야 전문가 15인 내외로 위원회를 꾸렸다. 또 연금 개혁의 주요 이해관계자인 근로자·사용자·지역가입자·청년을 대표하는 50명 내외의 ‘의제숙의단’과 500명 내외의 시민대표단이 뽑혔다.

여기서 도출된 개편안 2가지가 지난 4월 발표된 ‘소득보장안’(1안)과 ‘재정안정안’(2안)이다. 1안은 보험료율을 13%로,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는 것, 2안은 보험료율을 12%로, 소득대체율은 40%로 유지하는 것이다.

연금특위는 이 두 가지 안을 공론화위원회의 500명 시민대표단의 표에 부쳤다. ‘56%가 1안 찬성’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토대로 여야가 논의를 이어갔지만 결국 합의를 못 내고 지난 5월 8일 연금특위의 활동은 종료됐다.
왜 합의 못 할까···양 정당의 주장은
"2년간 허송세월" 국민연금 개혁 왜 못했나
주호영 국회 연금특위 위원장과 여야 간사들은 지난 5월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최종적으로 소득대체율 2%포인트 차이 때문에 입법이 어렵게 됐다”고 밝혔다.

1안의 내용 중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소득의 9%에서 13%로 올리는데 의견 접근을 이뤘지만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50%로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43%, 더불어민주당 45%로 맞서는 바람에 합의가 불발됐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들어 1안을 반대했다. 재정안정을 위해 개혁을 논의한 것인데 오히려 어려움이 가속된다는 것이다. 1안에 따르면 2093년까지 기금의 누적적자가 현행 대비 1004조원 늘어나는데 이는 2안 시행 시 적자가 4798조원 감소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또 미래세대의 부담가중도 우려했다. 자기 소득에서 빠져나가는 보험료율은 2093년 37.1%, 2078년에는 43.2%로 최고치를 기록한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월 30일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특위에서 “1안에 따르면 지금 태어난 친구들은 40살이 되면 본인 소득의 43%를 내야 한다”며 “지금 태어난 아기에게 ‘너 40살 됐을 때 소득의 43% 낼래’라고 물으면 싫다고 하지 않겠나. 10세 이하 국민들의 의견이 고려되지 않은 것 같다”고 강조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국민연금 개혁 이래로 26년째 9%를 유지하고 있는 보험료율을 감안하면 세대 간 형평성 측면에서도 매우 불공평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1안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와 현 세대의 생애 보험료 부담이 5배나 차이 나는데 이러한 핵심 정보가 시민대표단에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반면 민주당은 국민이 선택한 결과를 정부가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정태호 의원은 1안에 대해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제공된 자료로 학습하고 토론을 통해 최종 결과가 나온 것”이라며 “최종 결과에 대해 정부가 존중하는 입장을 보여 주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최소한의 노후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소득대체율을 50%로 인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점도 들었다. 국회 연금특위 야당 간사인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민주당은 소득보장과 재정안정을 위한 입법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했다.

연금특위 공론화위원회의 ‘토론의 장’···의의와 허점은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 산하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3월 앞서 의제숙의단이 제시한 2개 개혁안에 대해 토론할 500명의 시민대표단을 선발했다. 취지는 학습과 토론으로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숙고된 여론을 도출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의 ‘전국 대토론회’, 스웨덴의 ‘국민의견수렴절차(REMISS)’ 등 유럽 선진국들이 거치는 사회제도 개혁 과정과 닮았다.

‘대한민국의 축소판’ 역할을 하도록 작년 기준 인구구조를 반영해 선발된 500명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개혁 이슈를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전 조사를 했다. 그리고 연금특위가 제공한 자료집을 학습한 상태에서 한 번, 패널 토의·분임 토의 등 숙의 과정을 거친 뒤 2개의 안 중 무엇을 선택할지 물었다.

한편 허점도 지적됐다. 지난 5월 11일 연금특위가 시민대표단에 제공한 학습자료에 재정수지 전망 지표를 대거 제외한 것으로 확인돼 부실한 자료로 정책 결정 방향이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1·2안의 연금 고갈 시기는 1년 차이에 불과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누적 재정적자의 차이는 5000조원 가까이 벌어져 선택에 중차대한 영향을 주는 지표다.

임나영 인턴기자 ny92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