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증권 거래소에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 의장의 연설 모습이 뉴스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모습. 사진 AP=연합뉴스
뉴욕 증권 거래소에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 의장의 연설 모습이 뉴스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모습. 사진 AP=연합뉴스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둔화와 견조한 노동시장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지난해부터 소프트랜딩(soft landing) 혹은 노랜딩(no landing) 시나리오까지 등장하고 있다. 기준금리가 연 5.5%에 이르는 등 긴축적인 통화정책의 부작용을 노동시장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상쇄시킨 영향이다. 강한 노동시장은 지치지 않는 소비로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상 징후가 감지된다. 인플레이션을 견디다 못한 미국의 서민층들이 외식을 줄이고 대형마트에 자주 발걸음하는 게 대표적인 예다. 신용카드 연체율도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급등하고 있다. 소프트랜딩과 침체의 경계선에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지표의 방향이 혼재돼 나타나면서 연내 금리인하 관련 전망도 엇갈린다. 여전히 탄탄한 미국 경제
뉴욕증시는 최근 연이어 급등세를 보였다. 5월 28일(현지 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S&P500지수는 전장 대비 1.32포인트(0.02%) 오른 5306.04로 마감했다. 다우존스지수는 216.73포인트(0.55%) 하락한 3만8852.86, 나스닥 종합지수는 99.08포인트(0.59%) 상승한 1만7019.88에 거래를 끝냈다. 이날 상승세로 나스닥지수는 사상 처음으로 1만7000 선을 돌파했다.

뉴욕증시의 이 같은 강세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인플레이션 지표가 둔화한 영향이 크다.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4% 상승했다. 전문가 예측에 부합하는 수치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0.3%로 전문가 추정치(0.4%)보다 0.1%포인트 낮았다. 올해 1~3월 연이어 CPI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시장을 긴장시켰지만 4월 수치가 둔화하는 것으로 나오면서 증시도 안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고금리 상황 속에서도 미국 경제가 버티고 있는 것은 강력한 노동시장 덕분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의 4월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17만5000건 증가했다. 이 같은 신규 일자리는 미국의 인플레이션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경제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적정 수준으로 평가된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3월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인플레이션에 부담을 주지 않는 고용 증가 속도가 2022년엔 월 6만~14만 명, 2024년엔 월 6만~10만 명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은퇴하는 사람이 늘면서 신규 고용 숫자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미국에 불법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강력한 경제 성장세를 이어가는 미국 상황을 고려하면 올해 월 16만~23만 명의 신규 고용이 있어도 경제에 인플레이션 부담을 주지 않는 것으로 분석했다. 고금리 상황 속에서도 일자리 숫자가 버티고 있는 것이다. 실제 미국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순이민자 수는 330만 명으로 이 가운데 240만 명이 불법 이민자다.

미국 혁신 기업들의 성과도 눈에 띈다. 엔비디아가 대표적이다. 5월 28일(현지 시간) 뉴욕증시에서 엔비디아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6.98% 오른 1139.01달러(153만원)에 거래를 마쳤다. 실적 발표 다음 날인 5월 23일 처음 1000달러를 돌파한 데 이어 2거래일 만에 다시 1100달러를 처음 돌파했다. 3거래일 연속 종가 기준 최고가다. 이에 시가총액도 2조8010억 달러까지 불어나며 시총 2위 애플(2조9130억 달러)과는 불과 1120억 달러(약 4%)로 차이를 좁혔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5월 6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힐튼호텔에서 열린 밀컨 글로벌 콘퍼런스 ‘세계 금융체계의 현황’ 대담에서 미국 경제가 강한 근거로 기업 혁신과 강력한 노동시장을 꼽기도 했다. 침체 지표도 같이 나타나
하지만 장기간 인플레이션과 미국 중앙은행(Fed)의 긴축적인 통화정책은 미국 고소득층의 소비마저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월마트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한 1615억1000만 달러, 조정 주당순이익(EPS)이 0.60달러를 각각 기록했다. 이는 시장 전망치인 1595억 달러, 0.52달러를 크게 상회한 것이다. 존 데이비드 레이니 월마트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집밥보다 외식 가격이 약 4.3배 비싸다”며 “1분기 실적은 고소득 가구에 의해 주도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맥도날드 등 상대적으로 저렴한 외식업체들의 실적은 둔화하고 있다. 맥도날드의 1분기 실적은 월가의 예상치를 밑돌았다. 조정 후 EPS는 2.70달러로 예상치 2.72달러보다 낮았다. 전 세계 동일 매장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해 전문가들이 전망한 2.1%에 못 미쳤다. 재료비와 인건비 상승 등으로 맥도날드 메뉴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들도 발걸음을 돌린 것이다. 한 달 전 270달러가 넘었던 맥도날드 주가는 5월 21일(현지 시간) 종가 기준 265.87달러를 기록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 경제가 침체 초입에 들어간 것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신용카드 연체율이 가장 눈에 띈다. 1분기 신용카드 연체율은 6.9%로 1년 전 4.6%보다 올랐다. 뉴욕 연준의 가계 및 공공정책 연구 부서의 지역경제 책임자인 조엘 스캘리는 “2024년 1분기에 신용카드 및 자동차 대출이 연체로 전환되는 비율이 모든 연령대에서 계속 상승했다”며 “신용카드 대금을 연체하는 대출자 수가 늘어 일부 가구의 재정난이 악화하고 있음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늘어나는 국가부채…경기부양 재원 부족
미국의 급증하는 국가부채도 문제다. 만에 하나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과 같은 침체에 빠질 경우 이를 부양할 재정이 부족해질 수 있어서다.

CBO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의 국가부채 비율이 현재 96%에서 2030년까지 106%에 이르면서 제2차 세계대전 때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30년 후에는 GDP의 166%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 정부 누적 부채 규모는 34조7000억 달러 수준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지난 3월에만 국채 보유자들에게 약 890억 달러의 이자를 지급했다. 대략 분당 200만 달러꼴이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JP모간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최고경영자(CEO)는 5월 15일(현지 시간) 35조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의 천문학적 재정적자를 우려하며 정부에 적극적인 대처를 촉구했다. 다이먼 CEO는 한 인터뷰에서 “조만간 미국 정부가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 완전히 집중해야 한다”며 “이 문제를 계속 간과하면 훨씬 더 불편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금리 전망도 안갯속
한편 미국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기준금리 향방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시장에선 6월부터 3번의 금리인하를 예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연내 1회 금리인하, 혹은 내년까지 금리인하가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블룸버그와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5월 28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행사에서 “금리인상을 공식적으로 배제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금리를 올릴 확률은 상당히 낮지만 지금 시점에서 논의 대상에서 빼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카시카리 총재는 이날 CNBC 인터뷰에도 물가 상승세가 더 둔화하지 않는다면 금리를 올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연준이 금리를 한두 차례 인하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에 관한 질문에 “몇 달간 긍정적인 물가 지표가 나오면 금리를 내리는 것이 적절하다는 확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임금인상률이 아직 상당히 견고하다”며 “인플레이션이 식고 있다는 증거를 더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은 총재도 5월 23일(현지 시간) ‘더 오랫동안 더 높은 금리’를 기대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보스틱 총재는 스탠퍼드 경영대학원 강의에서 “더 인내심을 갖고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인 2%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더 확신한 후에 움직여야 한다”며 금리를 장기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뉴욕=박신영 한국경제 특파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