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터닉스의 최대주주는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이 이끄는 SK디스커버리다. 2대주주는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다. SK이터닉스는 분할 당시 예상 시총이 1200억원이었지만 5월 29일 종가 기준으로 시총 7993억원을 기록했다. 분할 두 달 만에 시총이 8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쪼개진 뒤 저평가→재평가로 ‘반전’
SK이터닉스는 SK디앤디의 신재생에너지·ESS사업부문이었다. 그간 SK디앤디는 부동산과 신재생에너지 두 이종사업으로 인해 시장에서 기업가치가 저평가돼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부동산 사업은 프로젝트 개발 사업의 추진 시점과 속도 등에 따라 수익을 인식하는 시점이 상이해 실적 변동성이 높았다.
SK디앤디는 캐시플로 안정화 수단으로 2008년 신재생에너지 사업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은 미래 성장성이 높지만 초기 투자 비용 규모가 큰 데다 안정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는 파이프라인 구축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만큼 부동산사업과 시너지를 내기 어려웠다.
SK디앤디는 이종사업의 디스카운트 해소와 전문성 강화를 통해 시장에서 적정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인적분할을 결정했다. 지난 3월 인적분할 완료 후 SK디앤디는 종합부동산 전문회사로, SK이터닉스는 신재생에너지 전문회사로 새출발했다.
분할 후 SK디앤디는 김도현 대표가 계속 이끌고 SK이터닉스의 새 수장은 SK디앤디에서 에너지솔루션본부장을 지낸 김해중 대표가 맡게 됐다.
김해중 대표는 “국내 신재생에너지 시장을 선도한 경쟁력을 토대로 발전자원을 지속 확장해 친환경에너지의 무한한 잠재력을 실현하겠다”며 “그린에너지 솔루션 프로바이더로서 국내를 넘어 글로벌 선도기업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분할 전 기준 SK디앤디 매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 사업과 비교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매출 비중은 10% 정도에 불과하지만 장기적인 성장성은 더 높게 평가받는 분위기다. SK이터닉스는 지난 3월 29일 재상장 당일 시초가 9880원에서 거래를 시작해 2개월 만인 5월 23일 장중 3만3100원까지 올랐다.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가가 상승세를 보이자 2대주주인 한앤컴퍼니는 5월 24일 지분 9%를 시간외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해 약 690억원을 현금화했다. 이번 블록딜로 한앤컴퍼니의 SK이터닉스 지분율은 31%에서 22%로 낮아졌다. 해상풍력·ESS·연료전지…핫한 건 다 있다
SK이터닉스는 태양광, 풍력발전, 연료전지,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양한 에너지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육상풍력 톱티어이자 피크저감형 ESS를 운영하는 국내 최대 규모 사업자다. SK이터닉스의 올해 1분기 신재생에너지 사업 매출 비중에서 풍력은 46.2%, ESS는 53.8%를 차지하고 있다. 1분기 기준 수주 잔고는 약 5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증권가에서는 올해는 연료전지, 2025년은 해상풍력이 SK이터닉스의 매출 성장을 이끌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SK이터닉스는 상업운전 중인 제주 가시리, 울진 풍력을 포함해 323MW의 육상풍력 사업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 1.4GW 규모의 해상풍력 파이프라인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SK이터닉스의 매출 지분만 1조원인 총사업비 2조5000억원 규모의 신안우이 프로젝트를 올해 말 착공할 예정이며 이에 따라 2025년부터 3000억원 수준의 매출 인식이 시작될 예정이다.
최근 인공지능(AI)의 전 산업계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연료전지가 주목받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기존 데이터센터의 6배 전력을 소비하기 때문에 신재생에너지만으로는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태양광, 풍력과 달리 연료전지는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을 극복할 수 있다.
SK이터닉스는 미국 블룸에너지의 고효율 연료전지 국내 공급권을 보유하고 있고 연료전지 사업의 개발, PF, EPC, 운영 등 전 밸류체인 통합 솔루션 공급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SK이터닉스는 칠곡(20MW), 약목(9MW), 보은(20MW) 3개 발전소의 연내 상업운전을 추진하며 파주(31MW), 충주(40MW), 대소원(40MW) 발전소 착공 등 연료전지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연내 누적 200MW의 연료전지 발전을 운영 또는 착공할 예정이다.
향후에는 설치면적이 작아 자연환경의 제약 없이 대도시 지역에도 설치할 수 있는 분산형 전원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ESS 시장 진출을 위해 SK가스와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하고 텍사스에 200MW 규모 ESS도 건설 중이다. 올해 4분기부터 단계적 상업 가동에 들어갈 예정이며 이를 통해 미국 내 ESS 용량 1GW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전력중개 사업 밸류체인 확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글로벌 투자사와 펀드를 조성해 재원을 마련하고 올해까지 누적 80MW 규모를 목표로 태양광 발전자원을 매입하는 등 전력중개 사업을 위한 기반을 마련해 왔다. 이를 바탕으로 전력중개 사업모델을 차별화하고 발전자원 확보 및 솔루션 고도화를 통해 전력거래 사업을 활성화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SK이터닉스가 확보한 에너지 사업의 파이프라인은 총 3GW 규모다. 풍력 2.2GW, 연료전지 0.4GW, 태양광 0.5GW, ESS 0.4GW 등이다. MW당 사업비를 10억~50억원으로 가정하고 파이프라인이 차질 없이 진행된다면 중기적으로 연 1조원대 매출원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전력수요 급증에도 보급 속도 더뎌…정책은 변수
정부 정책은 변수로 꼽힌다. 정부는 올해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설비용량 6GW의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상으로 2030년 한국의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목표는 태양광 46.5GW, 해상풍력 14.3GW다. 2023년까지 실제 들어선 태양광과 해상풍력 발전 누적 설비용량은 23.9GW, 0.1GW에 그친다. 그만큼 성장성이 높지만 보급 속도가 관건이다.
정부는 현재 상황에서 재생에너지만으로 첨단산업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방안은 없기 때문에 원전으로 커버하면서 태양광과 해상풍력도 확대해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를 균형 있게 키운다는 방침이다.
최근 공개된 2024~2028년까지의 전력수급계획이 담긴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실무안에 따르면 2030년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는 72GW다. 이는 10차 전기본의 65.8GW 대비 6.2GW 늘어난 수치다. 태양광·풍력 설비 보급 목표는 10차 전기본의 2036년 99.8GW에서 2038년 115.5GW로 상향 설정했다. 11차 전기본이 확정되면 신재생에너지 발전과 원전을 양대 축으로 한 무탄소 전원의 비중은 2023년 39.1%에서 2038년 70.2%까지 늘어난다.
재생에너지 사업은 주민 수용성 확보와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의, 인·허가 지연 등의 문제로 사업이 지연되거나 좌초되는 경우도 있어 이 같은 보급 목표 달성을 실현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10차 전기본에서 제시한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도 달성하기 어려운데 현실적으로 무리한 목표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에너지 산업의 애로사항을 풀어줄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과 ‘해상풍력특별법’ 처리가 끝내 무산된 것도 업계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관련 정책 추진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어서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고금리, 공급망 이슈, 건설단가 상승에 따른 경제성 이슈 등으로 인해 다수의 해상풍력 프로젝트가 지연되거나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던 만큼 프로젝트가 순조롭게 진행될지도 지켜봐야 한다.
다만 오는 14일 시행 예정인 분산에너지법은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분산에너지법은 중앙집중형으로 운영되던 전력 시스템의 지역 단위 분산을 골자로 한다. 분산에너지법에 따라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의 개발 및 설치가 확대돼 신재생에너지 매출 성장도 기대된다.
곽민정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반영되는 연료전지 영업수익과 분산에너지 법 시행을 통한 국내 연료전지 개발 및 설치 확대가 예상된다”며 “올 3분기 해외 ESS 설비 상업가동 등 신재생에너지와 전력거래 시장 성장이 실적 모멘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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