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와인 랩소디<21>
도멘 데 뉘그, 보졸레 랑시에 블랑(왼쪽)과 오보라, 쉐나
도멘 데 뉘그, 보졸레 랑시에 블랑(왼쪽)과 오보라, 쉐나
지난해 11월 말 서울 중구에서 개원의로 활동 중인 의사 몇 분의 만찬 자리에 초청받았다. 매년 서너 차례 와인모임을 갖는데 이번 주제는 프랑스 햇와인 ‘보졸레 누보’라고 했다. 와인을 각자 가져오는 BYO(Bring Your Own)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떤 와인을 가져갈지 고민 끝에 과일 향과 신선함이 잘 배어 있는 모르공 와인을 선택했다. 누보처럼 가메 포도품종 100%를 사용했고 할인행사 가격도 적당했기 때문이다.

식사 전 모르공 지역 역사와 와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 다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보졸레 지역에서 누보 말고 다른 와인도 생산하나요?” 와인 마케팅의 위력이 실감되는 대목이다.

그렇다. 국내에 잘 알려진 보졸레 누보는 가볍고 과일 향 풍부한 햇와인이다. 최대한 빨리 마시는 것이 좋으며 유통기한도 짧다. 매년 11월 셋째 주 목요일 출시 후 이듬해 8월 31일까지만 판매한다.

보졸레 지역 와인 등급은 보졸레와 보졸레 빌라쥐 외 10 크뤼(cru) 등 3개. 모두 12개 지역 특산 와인(AOC)이 생산된다. 특히 가장 고급인 10 크뤼는 고품질 와인을 생산한다고 널리 알려진 포도밭이다. 각국을 돌며 테이스팅 행사를 통해 수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참고로 내가 선택했던 모르공 와인도 여기 속하며 누보와는 달리 장기숙성 가능하고 타닌감이 풍부하다.

실제 지난 6월 3일 서울 송파구 소피텔앰배서더에서 ‘보졸레 와인 마스터 클래스’가 열렸다. 프랑스 보졸레 와인협회가 주최하고 소펙사코리아가 주관하는 행사. 이날은 최근 보졸레를 다녀온 박수진 WSA와인아카데미 원장이 강의 및 테이스팅 행사를 진행했다.

1부 강의에서는 부르고뉴 와인의 역사와 토양 그리고 기후 등을 소개했다. 행정구역상 보졸레는 프랑스 부르고뉴 남쪽 끝 지역이지만 와인 생산과 양조방식, 규정 등은 전혀 다르게 적용된다.

이 지역 포도밭 면적은 여의도 45배에 달한다. 이는 부르고뉴 다른 지역 합계 면적보다 넓다. 재배 포도품종은 가메가 90% 이상을 차지한다. 최근에는 샤르도네 생산이 증가하는 추세다.
토양도 매우 다양하다. 편암, 화강암 등 300종 이상이다. 프랑스 내에서도 가장 다양한 지형 중 하나. 보졸레의 테루아는 2018년 유네스코의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어 2부에서는 9개 크뤼 와인을 대상으로 테이스팅 행사가 진행됐다. 가장 먼저 테이블에 오른 와인은 도멘 데 뉘그, 보졸레 랑시에 블랑. 샤르도네 품종 100%로 만든 화이트로 선이 뚜렷하고 진한 와인이다. 첫 모금에서 전형적인 부르고뉴 분위기를 잡을 수 있었다.

다음은 오보라, 쉐나. 옅은 벽돌 컬러가 예쁘다. 가메 품종임에도 피노 누아 분위기. 초반부터 강한 가죽 향이 특징, 달콤하고 산뜻한 맛도 편하다. 20대 후반 와인메이커의 첫 빈티지(2020) 와인으로 현대적인 스타일이다.

끝으로 리사르, 로티에는 물랭아방 지역 와인이다. 블루스톤 때문일까. 신비스러운 풍미와 강한 미네랄 향을 잡을 수 있다. 초반 바이올렛, 장미 등 다양한 꽃향기가 밀려온다. 전체적으로 구조감과 밸런스가 좋은 와인이다.

[박수진 원장은...]
장기숙성·타닌 가득 ‘보졸레’를 아시나요 [김동식의 와인 랩소디]
WSET(세계적인 와인 전문가 과정. 영국에 본원을 둠) 최고 인증서인 ‘디플로마’ 취득. 2017년 와인 교육기관인 ‘WSA와인아카데미’ 원장으로 취임했다. 소펙사 주최, 한국 소믈리에 대회 심사위원이다.
그 외 각종 국내외 와인 관련 행사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특히 와인 테이스팅 진행 시 보통의 언어로 혹은 진지하고 진실한 표현으로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와인 애정’ 때문에 가능한 일.

김동식 와인 칼럼니스트 juju43333@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