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쩐의 전쟁’ 금융사 결집한 원베일리
(사진) 금융권이 밀집한 원베일리스퀘어. 사진=서범세 한국경제매거진 기자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신흥 대장주로 불리는 래미안 원베일리는 그야말로 ‘슈퍼 리치’의 중심지다. 이곳 상가에는 무려 6개의 증권·은행 등 금융사의 VIP 자산관리(WM) 점포가 자리 잡고 있다. 한걸음 걸어가면 또 다른 금융기관의 간판이 보이는 이곳에서 자산가들을 유치하기 위한 금융권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작은 여의도’ 반포금융권에 따르면 현재 5개 증권사와 1개 은행이 반포 원베일리 상가(원베일리스퀘어)에 스타 프라이빗뱅커(PB)를 배치하고 ‘슈퍼 리치’ 고객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1층과 4층 미래에셋증권을 시작으로 2층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 3층 KB국민은행, 5층에는 한국투자증권과 유안타증권의 PB센터가 들어서 있다. ‘작은 여의도’로 불릴 정도다.

원베일리스퀘어는 서초구 신반포3차, 경남아파트를 통합 재건축해 지하 4층~최고 35층 23개동으로 지은 상가동이다. 반포의 대장주 아파트로 통하는 래미안 원베일리 단지를 끼고 지하철 3호선, 7호선 9호선이 지나는 고속터미널역이 도보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도보 3분 거리에는 9호선 신반포역이 위치한 초역세권 상가다.

최근 금융권이 비용 절감으로 오프라인 지점을 없애는 마당에 원베일리 상가 내 금융권 밀집은 초고액자산가를 향한 금융권의 러브콜을 보여준다.

이들은 최근 ‘돈 되는’ 자산관리(WM) 사업을 강화하며 대고객 서비스와 종합자산관리 능력은 기본이고 자산가들의 주요 관심사인 부동산, 상속·증여, 대안 투자 등 저마다의 강점을 내세워 우량고객 유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기관급 자산운용 서비스를 원하는 슈퍼 리치들을 위해 패밀리오피스(Family Office)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고액자산가들의 컨설팅을 맡는 만큼 각사 모두 최고의 스타 프라이빗뱅커(PB)들을 전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쩐의 전쟁’ 금융사 결집한 원베일리
2개 층에 자리 잡은 미래에셋증권 투자센터 반포WM은 미래에셋증권 점포 중에서도 큰 지점에 속한다. 2개 층을 합쳐 규모가 총 140평에 달한다. 강남, 서초, 방배, 반포 등 고액자산가 대상 컨설팅 경력을 갖춘 전문 PB들을 불러모아 4개 팀을 구성하고 이들과 손발을 맞출 베테랑 업무직원을 더해 32명으로 진용을 짰다.

이들을 이끄는 이성우 센터장은 지난 30년간 증권사에서 인사, 감사, M&A 등 본사 부서를 거쳤다. 현재 투자센터 반포WM에서 VIP 자산관리, 법인자금 운용 및 기업 CEO의 은퇴를 설계하는 일 등을 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강점은 타사와 차별화된 전 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글로벌 투자전문가들이 고액자산가의 컨설팅을 도맡는다는 점이다. 계열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세계적인 ETF 운용사를 보유하고 글로벌 자산배분이 가능한 솔루션을 제공한다. 투자센터반포WM은 미래에셋증권 투자센터 중에서도 해외자산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다.
‘쩐의 전쟁’ 금융사 결집한 원베일리
2층에서는 NH투자증권과 삼성증권이 접전을 벌인다. ‘자산관리의 명가’ 삼성증권은 기존 반포WM지점과 반포퍼스티지WM브랜치 2곳을 통합해 원베일리 상가에 반포WM지점으로 새 둥지를 틀었다.

삼성증권의 강점은 WM 시장을 오랜 기간 주도해 온 이력이다. 2010년 업계 최초로 초고액자산가 전담 브랜드인 ‘SNI(Success & Investment)’를 도입하면서 초부유층 시장을 주도해 왔다. 지난 2022년엔 신흥부유층 전담 센터인 ‘더 SNI 센터’를 오픈했고 최근 패밀리오피스센터를 열며 전통부유층·신흥부유층·패밀리오피스 고객까지 아우르는 국내 유일의 슈퍼리치 자산관리 조직을 갖추고 있다.

반포WM지점을 이끄는 인물은 조완제 지점장은 본사 투자컨설팅 및 상품 관련 부서장 등을 거쳐 삼성타운금융센터법인지점 지점장, 삼성동WM지점 지점장, 파르나스WM지점 지점장, SNI 파르나스금융센터 지점장 등을 역임한 슈퍼리치 자산관리의 베테랑이다.

삼성증권이 ‘명가’라면 같은 층 경쟁사인 NH투자증권은 최근 들어 WM 사업을 강화하는 신예다. 기업금융(IB)의 명가인 NH투자증권이 기업가와 자산가들이 많은 반포에서 WM을 강화하며 IB와 WM 쌍끌이 효과를 노린다는 계획이다.

윤병운 신임 대표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슈퍼리치를 위한 사업부를 신설하고, 반포에만 지점 2곳을 열었다. 원베일리에 신규 지점인 ‘반포 브랜치’를 마련했고 기존 반포 WM센터와 방배WM센터 두 곳을 통합해 ‘반포금융센터’를 열었다.

5층에는 유안타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맞붙었다. 유안타증권은 기존 을지로 GWM센터에서 자리를 옮겨 인력 보강과 함께 차별화된 상품 전략 및 서비스를 갖추고 GWM반포센터로 확장 이전했다.

센터 오픈을 위해 스타 PB로서 오랫동안 고액자산가 대상 자산관리 역량을 보여주고 있는 윤향미 센터장과 베테랑 시니어 PB들로 진용을 꾸렸다. 30년 경력이 빛나는 윤 센터장은 PB센터장으로 지낸 기간만 10년이 넘는 베테랑 스타 PB다. 고객 1인이 아닌 3대가 함께 거래하는 고객 가문의 패밀리오피스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쩐의 전쟁’ 금융사 결집한 원베일리
한국투자증권 반포 PB센터는 PB 경력 20년의 이혜정 센터장이 이끌고 있다. 이 센터장은 20년 이상의 경력을 자랑하며 뛰어난 시장분석 능력과 투자상품, 부동산, 세무 관련 실무에 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 2층과 4, 5층이 증권가의 경쟁이라면 3층은 KB금융의 무대다. KB국민은행은 원베일리 단지에 최상위 고객 자산관리센터인 ‘KB골드앤와이즈 더퍼스트’ 2호점을 열었다. 3층 매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지점장으로 정은영 전 미래에셋증권 상무를 영입했다. 지점장을 맡은 정 상무는 미래에셋대우 청담 갤러리아 WM 등에서 활약한 스타 PB로 과거 ‘그랜드 마스터 PB’로 선정될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랜드마스터는 고객 관리자산이 1000억원 이상, 회사 기여수익이 연간 10억원 이상인 PB에게 주어진다. 증권 기반의 다른 WM 지점들과 달리 KB국민은행과 KB증권 등 그룹의 역량을 총집결해 반포 지역 내 WM 시장을 주도한다는 계획이다.
‘쩐의 전쟁’ 금융사 결집한 원베일리
전 세대 슈퍼리치 집결…효과 의구심도 반포 지역이 ‘작은 여의도’로 떠오른 곳은 최근 강남권의 대규모 재개발, 재건축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압구정동에서 대치·도곡동을 거쳐 반포동으로 부가 이전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반포 지역은 단순히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넘어 금융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고 있다.

래미안원베일리(2990세대), 아크로리버파크(1612세대), 래미안퍼스티지(2444세대), 반포자이(3410세대) 등 대단지 아파트가 밀집해 있어 이곳에 거주하는 잠재 고객만 약 1만 세대에 달한다. 특히 원베일리는 서초구 반포동 일원 ‘신반포 3차·23차·반포 경남아파트’ 통합 재건축을 통해 지난해 8월 준공된 2990가구 아파트 단지다.

래미안 원베일리 국민평형(전용 84㎡) 입주권은 같은 해 7월 역대 최고가인 45억9000만원에 거래되며 국내 최고가 아파트로 자리매김했다. 반포의 대장주다.

원베일리의 특징은 전 세대 슈퍼리치가 집결했다는 점이다. 60대 이상의 전통적인 자산가층은 물론 자수성가한 3040대 신흥 부자, 기존 반포 지역 전통 자산가들이 재건축 아파트를 자녀에게 증여해 2030대 젊은 부자들도 크게 늘었다.

금융권 관계자는 “반포 원베일리는 높은 아파트 가격에 걸맞게 입주민들의 소득수준 및 보유자산 규모 역시 높게 형성되어 있는 지역”이라며 “여의도가 가깝고 법조 단지도 근처에 있어 벤처사업가, 전문직, 고위직 공무원의 입주비율이 높은 곳으로 20대부터 80대까지 자산가 연령대가 고르게 분포되어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연령대는 최근 금융권에서 주목하는 패밀리오피스 서비스와도 결이 닿아 있다. 패밀리오피스 서비스는 가문의 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축적된 부를 지속적으로 이어나가기 위한 자산관리 승계 활동을 의미한다. 금융권은 개별 가문을 위한 전담팀을 설정해 특화된 컨설팅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

부자들의 관심사가 부동산에서 금융자산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도 반포가 ‘작은 여의도’로 떠오른 주요 원인이다. 하나금융연구소가 펴낸 ‘2024 부자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부자의 총자산 중 부동산이 50%, 금융자산이 46%, 실물자산을 포함한 기타자산이 약 4% 정도를 차지했는데 2022년과 비교하면 부동산 비중이 5%포인트 줄었다. 반면 금융자산과 기타자산 비중은 각각 3%p, 2%p 증가했다.

원베일리 전쟁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원베일리가 전략적 요충지라고 하기엔 이미 반포에만 여러 WM센터가 곳곳에 포진해 있고 신흥 부촌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WM 영업은 점주 영업이 아닌 사람 영업이기 때문에 지점의 위치에 따라 자산가들이 이동하지 않는다”며 “특히 신흥 부자보다 기존 부자들이 많은 만큼 이미 PB들과 교류를 하고 있어 새 비즈니스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