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보도에 따르면 주택 시장에서 전세가가 계속 오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KB국민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3년 8월 첫 주부터 2024년 6월 첫 주까지 10개월 동안 전국 아파트 전세가는 1.8% 상승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는 같은 기간 동안 무려 5.0%나 올랐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의 경우 전세가 상승률이 더 높게 나온다. 지난 10개월 동안 전국 아파트 전세가는 4.9%나 올라서 KB국민은행 통계보다 두 배 이상 오른 것으로 나와있다. 정부 산하 기관이나 민간 통계 기관 모두 전세가가 오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 전세가는 왜 오르는 것일까? 이른바 경기 활황기 때는 매매가도 오르고 전세가도 오른다. 예를 들어 지난번 상승기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KB국민은행 통계기준으로 2019년 9월부터 2022년 6월까지 33개월 동안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34.1% 올랐고, 전세가는 22.3%나 올랐다. 10년 전 보금자리주택 ‘로또분양’ 때도 같은 현상시중의 흘러 넘치는 유동성이 매매가는 물론 전세가도 밀어 올렸던 시기였던 것이다. 통화량 통계가 발표된 최근 2년(2022년 3월~2024년 3월) 동안 광의의 통화량(M2) 증가액이 327조원에 불과한 반면, 그 이전 2년(2020년 3월~2022년 3월) 동안 M2 증가액은 무려 그 두 배가 훌쩍 넘는 690조원이나 되었다. 이러니 소위 ‘돈의 힘’으로 매매가든 전세가든 오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다.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시에 하락하는 경우이다. 2022년 6월부터 2023년 8월까지 14개월 동안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기간 동안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10.7%나 하락했으며 전세가는 그보다 더 낮은 13.2%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IMF 외환위기, 세계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위기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극심한 경기 침체기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IMF 외환위기(1997년 10월~1998년 11월) 때에도 매매가가 15.1% 하락하는 동안 전세가도 22.3%나 하락했었다. 경기 침체기에 들어서면 시중에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위기감을 느낀 가계는 매매이든 전세이든 규모나 가치를 줄여 나가는 다운사이징에 나서기 때문이다.

결국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시에 상승하면 경기 확장기, 매매가와 전세가가 동시에 하락하면 경기 침체기라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런데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매매가는 하락하는데 전세가는 오르는 때도 있는 것이다. 10년 전쯤인 2012년 5월부터 2013년 8월까지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기간 동안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1.3% 하락했지만 전세가는 5.6%나 상승했다. 특히 서울에서는 이런 현상이 극단적으로 나타났는데, 아파트 매매가가 5.1%나 내리는 동안 전세가는 5.8%나 상승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매매 수요가 임대 수요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는 정부 소유의 그린벨트를 해제하고 그린벨트 내에 있는 민간 소유 토지를 싸게 수용하여 아파트 부지를 조성하고 보금자리주택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아파트 값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땅값을 낮춰주면서 아파트를 싸게 공급하고자 함이다. 이에 따라 강남구 세곡동이나 서초구 내곡동에 보금자리 주택을 실제로 공급하기 시작했었다.

그러자 주변 시세에 비해 거의 절반에 가까운 분양가로 공급하는 것을 본 실수요자들은 매매 시장에서 기존 집을 사는 것을 멈추고, 보금자리 주택 청약에 매달리게 되었다. 더구나 무주택자들에게 보금자리 주택 청약 우선권을 주었기 때문에 보금자리 주택 청약을 위해서라도 집을 사는 대신에 임대로 남아 있어야 했었다.

한마디로 보금자리 주택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자발적으로 매매 수요가 임대 수요로 바뀐 것이다. 이러니 매매 시장은 침체되어도 전세 시장은 활황을 보였던 것이다.

보금자리 주택 공급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울의 경우 매매가가 5.1%나 하락한 반면, 보금자리 주택 공급의 영향권이 아닌 대구의 경우는 같은 기간 동안 아파트 매매가가 9.6%나 오르는 초강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매매가 약세, 전세가 강세 현상은 그 당시 수도권에서만 발생했던 것이다.
전세 끼고 집 사는 갭 투자자에게 유리그런데 매매 시장 약세, 전세 시장 강세 현상이 지속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매매가에 비해 전세가가 강세를 보이면서 전세가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이(gap)가 줄어들게 된다. 전세가 비율은 전세가를 매매가로 나눈 비율이기 때문에 분자인 전세가가 비쌀수록, 그리고 분모인 매매가가 쌀수록 전세가 비율은 높아진다.

실제로 매매 시장이 침체되기 시작한 2012년 5월의 전국 아파트 전세가 비율은 61.2%였는데 2013년 8월에는 64.5%로 높아졌다. 서울의 경우는 더 극명하여 같은 기간 동안 전세가 비율은 51.9%에서 58.1%로 높아졌다.

이것은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자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2년 5월 서울에 전세를 끼고 집을 사려던 사람이 있었다면 투자금이 집값의 48.1%나 필요했지만 2013년 8월에는 41.9%만 있으면 되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같은 기간 동안 매매가가 하락했기에 실투자금은 과거보다 훨씬 줄어들었던 것이다.

2013년의 세제 개편이 갭투자를 늘리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그 이전에 상당 기간 지속된 매매 시장 약세, 전세 시장 강세라는 환경이 갭투자가 확산되게 한 밑거름이 된 것이다.

결국 매매가 약세, 전세가 강세 현상이 지속되면 갭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현재 주택 시장이 이런 기로에 처했다는 것이다. 2023년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0.96% 하락한 반면, 전세가는 0.98% 상승했다. 특히 서울의 경우는 더 심각하여 매매가가 0.70% 하락하는 동안 전세가는 3.19%나 상승했다. 이 기간 동안 갭이 줄어들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2012~2013년과 같이 보금자리 주택 정책이 재개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현상이 다시 나타난 것일까.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 시중 유동성 등 여러 가지 지표가 개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집값이 내릴 수도 있다는 심리적 불안감이 실수요자를 (매매시장이 아닌) 임대 시장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시장 상황이 불안하니 2년만 더 전세를 살고 그 이후에 시장의 방향성이 정해지면 그때 내 집 마련을 하겠다는 사람이 아직도 상당히 있다는 방증이라 하겠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아 이런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매매가 약세, 전세가 강세 현상이 갭투자자들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고 경기 회복 현상이 경제 전반에 퍼져 나갔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매매가 약세, 전세가 강세 현상은 일정 기간 후 매매가와 전세가 동반 강세 현상으로 전환되고는 한다.

경제 환경이 수시로 바뀌기는 하지만 길게 보면 지금이 그 변곡점에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KB국민은행 통계 기준으로 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아직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주택 시장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서울 지역 아파트 매매가는 5월 중순 이후 상승세로 돌아섰다.

2023년 8월 이후 상승으로 돌아선 전세 시장과 더불어 매매 시장과 전세 시장의 동반 상승이 시작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기조는 하반기에 들어서면 수도권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여 2025년에는 대부분 지역에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 변곡점을 지금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기곰 ‘재테크 불변의 법칙’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