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사진=한국경제신문
서울 송파구 한미약품 본사. 사진=한국경제신문
재계에서 경영권을 둘러싼 가족 간 분쟁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경영권을 두고 남매간 분쟁을 벌여온 아워홈과 모녀-형제 간 대결 구도로 갈등을 빚어온 한미약품그룹이 ‘캐스팅 보트’의 변심으로 또다시 극적인 반전을 맞이하고 있다.

‘형제의 난’으로 총수 일가가 10년 넘게 진흙탕 싸움을 벌여온 효성그룹에선 가족과 의절한 차남이 화해를 제안하며 극적 화합 가능성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모녀 vs 형제 집안싸움, 과실은 제3자가 챙겨

한미약품그룹은 고(故) 임성기 창업주의 고교 후배이자 한미사이언스 개인 최대주주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가족 간 분쟁에서 중재자로 나선 가운데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될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 분쟁의 직접 원인은 ‘상속세’였다. 임성기 창업주가 2020년 8월 별세하면서 한미사이언스의 창업주 지분 2308만여 주(당시 지분율 34.29%)가 부인 송영숙 회장과 임종윤·주현·종훈 등 세 자녀에게 상속됐고 이들은 약 5400억원 규모의 상속세 납부 부담을 안게 됐다.

이들은 5년간 분할해서 납부하기로 했고 지난 3년간 이를 납부했으나 아직 납부 세액이 절반가량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과중한 상속세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던 중 의견 차이로 모녀 대 형제 대결 구도로 갈등이 격화한 것이다.
한미약품그룹 창업주 배우자인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장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 차남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사진=한국경제신문·한미약품
한미약품그룹 창업주 배우자인 송영숙 한미그룹 회장,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장녀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 차남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 사진=한국경제신문·한미약품
한미약품그룹은 올해 초 경영권을 쥔 창업주의 부인 송영숙 회장과 딸 임주현 부회장이 추진하는 OCI그룹과의 통합에 대해 장·차남인 임종윤·종훈 형제가 반발하며 경영권 분쟁을 벌여왔다.

신 회장은 형제 편에 서며 장·차남의 승리를 이끄는 ‘키맨’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이후 모녀 측 지분을 매입하고 의결권을 공동으로 행사하는 계약을 체결, 경영 참여 의사를 밝혔다.

신 회장은 형제 경영 체제에서도 대주주 가족 간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지분 매각설이 끊이지 않으며 주가 하락이 이어지자 실망감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신 회장이 모녀 측으로 돌아서며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그러나 신 회장과 창업주 장남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이사가 경영 방식을 재논의하기로 합의하면서 사실상 가족 간 경영권 분쟁이 일단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약품그룹은 신 회장을 중심으로 전문경영인 체제 구축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송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만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의 사내이사는 계속 유지할 계획이다.

신 회장과 임 이사는 보도자료를 통해 “신동국 회장은 송영숙 회장이 대승적 차원에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며 (임종윤·종훈) 형제와 책임경영·전문경영·정도경영을 하이브리드로 융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2022년 5월 15일 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발인식에서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 장녀 구미현 회장, 차녀 구명진 씨, 삼녀 구지은 전 부회장의 모습. 사진=뉴스1
2022년 5월 15일 고(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발인식에서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 장녀 구미현 회장, 차녀 구명진 씨, 삼녀 구지은 전 부회장의 모습. 사진=뉴스1
아워홈, 4남매 불안정한 지분구조 탓 분쟁 반복

아워홈은 고 구자학 창업주의 네 자녀가 10년 넘게 경영권 갈등을 이어가며 결국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아워홈은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삼남인 구자학 회장이 2000년 1월 LG유통(현 GS리테일)에서 식품서비스 부문을 들고 독립해 키운 국내 2위 식자재유통기업이다.

1남 3녀 중 삼녀인 구지은 전 부회장이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해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돼왔다. 하지만 창업주가 네 자녀에게 4:2:2:2로 지분을 골고루 나눠준 것이 화근이었다.

아워홈 지분은 장남 구본성 38.6%, 장녀 구미현 19.3%, 차녀 구명진 19.6%, 삼녀 구지은 20.7% 등 4남매가 지분 98%를 보유하고 있다. 4남매 중 단독으로 과반의 지분을 보유한 인물이 없어 이해관계에 따라 합종연횡이 펼쳐지며 남매의 경영권 분쟁이 반복되고 있다.

장녀 구미현 씨는 2017년에는 전문경영인 선임과 관련해 오빠 편을 들었고 2021년에는 막냇동생의 손을 들어 ‘구지은 경영체제’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동안 배당 문제 등 이해관계에 따라 오빠와 동생을 오가며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온 장녀가 이번에는 오빠와 손을 잡고 구지은 전 부회장을 밀어낸 후 신임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다.

구미현 회장은 경영 경험이 전무한 가정주부다. 남편인 이영열 전 한양대 의대 교수는 부회장에 올랐다. 구미현 회장은 경영보다 지분 현금화가 목표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구미현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경영권을 전문기업에 이양하겠다”며 경영권 매각 의사를 밝힌 데 이어 사흘 만에 기업공개(IPO)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그간 경영권 분쟁을 이어오며 아워홈의 기업가치는 2022년 2조원에서 현재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과 IPO를 투트랙으로 펼치는 이유로 경영권 매각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구주매출을 통한 현금 회수 방안을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범LG가로 분류되는 아워홈은 그간 LG 계열사로부터 급식 매출을 올리고 있었지만 경영권 매각 이후 LG 계열사 매출이 사라질 수 있어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또한 오너 일가의 경영권 분쟁이 발발할 가능성이 높아 상장 문턱을 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분 매각 과정에서 구지은 전 부회장과 구명진 씨가 보유한 우선매수권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아워홈 정관에는 한 주주가 주식을 매각할 경우 다른 주주에게 주식을 우선적으로 팔아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구미현 회장이 제3자에게 지분을 매각하려면 다른 남매들에게 먼저 인수 의사를 타진해야 하기 때문에 지분 매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효성그룹의 조현준 효성 회장, 조현문 효성 전 부사장,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효성
효성그룹의 조현준 효성 회장, 조현문 효성 전 부사장,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효성
‘형제의 난’ 조현문 화해 손짓에도 불씨는 여전

효성그룹은 고 조석래 명예회장의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이 부친이 남긴 상속재산 전액의 사회환원과 형제간 갈등을 종결하고 화해하겠다고 밝혀 갈등의 골이 해소될지 주목된다.

지난 3월 29일 별세한 조 명예회장은 유언장을 통해 ‘형제간 우애’를 당부하며 조 전 부사장에게도 유류분을 웃도는 재산을 물려줬다. 조 전 부사장의 몫은 효성티앤씨 지분 3.37%, 효성중공업 지분 1.50%, 효성화학 지분 1.26%로 최근 4개월간 평균 평가액으로 환산하면 885억원 상당이다.

조 전 부사장은 지난 7월 5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선친이 물려주신 상속재산을 한 푼도 제 소유로 하지 않고 공익재단을 설립해 여기에 출연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효성으로부터 100% 자유를 바란다”면서 이를 위해 형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과 동생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등 가족에게 공익재단 설립 협조, 비상장사 지분 정리를 통한 완전한 계열분리를 요구했다.

효성그룹은 조 전 부사장의 요구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조 전 부사장의 공익재단 설립 추진과 관련해 상속세를 감면받으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조 전 부사장은 7월 10일 설명문을 내고 “공익재단에 상속재산을 출연해 상속세를 감면받아도 개인적으로 얻는 금전적 이익과 혜택이 없다”며 “공익재단 설립은 오로지 상속재산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조 전 부사장은 공익재단을 통해 상장주식을 보유하는 방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서도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다”면서 효성 경영권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다만 여전히 형제간 법정 다툼이 진행 중이고 조 전 부사장이 효성 측이 명확한 답변을 주지 않으면 유류분 청구소송 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만큼 단시일 내 갈등 해소는 어려울 전망이다.

재계에서 벌어지는 가족 간 분쟁은 대부분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창업주의 유산이 분쟁의 도화선이 된다. 상속·증여세 부담으로 승계를 미루다 유언장이 없는 상태에서 창업주가 별세하면 법정상속분에 따라 가족들에게 골고루 균분상속이 이뤄지는데 지분 차이가 크지 않아 분쟁의 불씨가 되는 것이다.

한미약품그룹에서 창업주 고교 후배가 캐스팅보트로 영향력이 커진 것도, 아워홈 창업주 일가 중 장녀가 오빠와 막냇동생 사이를 오가게 된 것도 모두 창업주 일가의 지분 차이가 크지 않은 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속재산 분할 사건 건수는 2945건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 전인 2014년 771건과 비교해 약 3.8배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상속인 간 최소 상속분에 대한 법적 분쟁인 유류분 반환 청구소송도 2035건으로 10년 전(831건)보다 2.5배가량 늘었다.

지난 4월 25일 헌법재판소가 형제자매에게 고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정 비율 이상의 유산 상속을 보장하는 유류분제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가운데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재벌가 상속 분쟁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