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다 싼 최저임금, 일본 직장인 월급은 얼마일까[글로벌현장]
한국의 내년 최저임금이 처음으로 시간당 1만원을 넘는다. 올해보다 1.7% 인상된 1만30원으로 정해졌다. 엔화로 환산하면 1150엔 정도다. 일본에서 최저시급이 가장 높은 도쿄도가 1113엔이니 도쿄도보다 37엔, 약 300원 비싼 셈이다. 일본은 임금이 물가상승 속도를 못 따라가면서 소비가 위축되는 현상이 강해지고 있다. 최저임금 지역·업종별 차등 적용
한국은 나라 전체, 모든 업종에 단 하나의 최저임금이 적용된다. 일본은 지역별, 업종별 최저임금이 다르다. 중앙정부가 지역별 경제 상황에 맞게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각 지방정부가 근로자 생계비, 기업 지급 능력 등을 검토해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일본은 한국의 광역자치단체에 해당하는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이 있다. 1도(都), 1도(道), 2부(府), 43현(縣)이다. 이 47개 도도부현의 최저임금이 거의 모두 다르다. 올해 기준으로 보면 가장 비싼 곳이 도쿄도로 시간당 1113엔이다. 이어 가나가와현, 오사카부, 사이타마현 순으로 총 8곳이 1000엔대다.

900엔대는 984엔인 시즈오카현부터 900엔인 사가현까지 모두 27곳이다. 800엔대는 899엔인 오이타현부터 893엔으로 꼴찌인 이와테현까지 총 12곳이다. 제일 비싼 도쿄도와 제일 싼 이와테현의 최저시급 차이는 220엔, 원화로 약 1900원에 달한다.

지역별로만 차이가 있는 게 아니다. 지역 내 업종별로도 최저임금이 다르다. 일본은 지역별 최저임금을 결정한 뒤 지역 내 노사 요청에 따라 특정 산업에 대한 최저임금을 다시 논의한다. ‘특정 최저임금’이다. 지역경제를 지탱하는 주요 업종은 인재 유입을 위해 더 높은 최저임금을 설정한다.

최저임금이 가장 낮은 이와테현의 경우 지역 내 자동차 소매업 종사자의 최저시급은 이 지역 다른 업종보다 10엔 높은 903엔이다. 와카야마현의 지역 최저임금은 929엔이지만 지역 내 철강업은 1050엔이다. 가고시마현은 지역 최저임금이 897엔, 지역 내 자동차 소매업은 945엔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전국 224개 업종, 283만명가량이 특정 최저임금을 적용받고 있다. 실질임금 26개월 연속 마이너스
일본의 최저임금은 국제 비교를 해봐도 낮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물가 차이 등을 고려해 구매력 평가로 환산한 일본 최저임금은 2022년 기준 8.5달러다. 프랑스가 13.8달러, 호주와 독일은 각각 13.6달러로 일본보다 5달러 이상 높다. 일본은 9.5달러의 한국과 8.8달러의 튀르키예를 밑돌고 있다.

일본 정부는 최저임금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본의 올해 최저임금은 전국 평균 1004엔으로, 처음으로 1000엔을 넘었다. 작년 평균 인상액은 43엔으로 역대 가장 컸다. 앞서 올해 봄 노사 교섭에서 일본 기업의 평균 임금인상률은 5.1%로 1991년 이후 33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 임금 인상 흐름이 최저임금까지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최저임금도 5% 정도 올리면 역대 최대인 50엔 수준 인상이다. 전국 평균 1004엔에서 1054엔 정도로 오르는 셈이다. 일본 정부는 약 10년 뒤인 2030년대 중반에 최저임금 전국 평균 1500엔을 목표로 잡고 있다. 2035년에 이를 달성하려면 앞으로 매년 3.4%의 인상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임금 인상을 독려하는 이유는 물가가 가파르게 올라 실질임금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개인 소비 침체로 이어져 결국 국내총생산(GDP)에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최근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5월 근로통계조사에 따르면 5인 이상 사업체 기준 1인당 기본급은 평균 26만3539엔이다. 원화로 약 230만원. 여기에 각종 수당 등을 더한 급여총액은 29만7151엔으로 전년 동월 대비 1.9% 늘었다. 원화로 260만원쯤 된다. 올해 봄 교섭에서 5%대 임금 인상이 이뤄진 데 따른 것이다.

문제는 물가상승을 감안한 실질임금은 1.4% 감소했다는 것이다. 26개월 연속 전년 동월 대비 마이너스다. 임금이 올라봐야 물가 상승분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엔저 덕에 실적이 좋은 수출 대기업은 임금을 더 올릴 여력이 있다. 최근 일본 게이단렌은 대기업의 여름 보너스 집계 결과를 발표했다. 17개 업종, 97개 회사에서 평균 98만3112엔을 지급하기로 했다. 1981년 이후 사상 최고 수준이다.

중소기업은 어렵다. 엔저 탓에 수입 비용이 올라 물가상승 속도에 맞춰 임금을 인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본 경제계는 최저임금 중 업종별로 달리 지급하는 ‘특정 최저임금’을 더 올리려는 모습이다. 지역 전체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인상해 모든 기업에 똑같은 부담을 안기는 대신 특정 최저임금을 통해 지급 여력이 있는 업종만 인상하겠다는 의도다. 일본 CEO 연봉 1위는 300억원
이런 가운데 지난해 일본 기업 임원 연봉이 최근 공개됐다. 전년 대비 크게 오른 것으로 나타나 이 역시 직원 임금 인상으로 이어질지 관심이다. 지난해 일본에서 연봉 1억 엔, 약 8억7000만원 이상 받은 최고경영자(CEO) 등 기업 임원은 총 811명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 대비 89명(12%) 증가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연봉 1억 엔 이상 임원이 있는 기업은 332곳으로 12곳(4%) 증가했다. 역시 역대 최대다. 성과에 따른 보상 문화가 확산하는 가운데 기업 실적 호조와 주가 상승이 반영됐다.

지난해 연봉 1위는 소프트뱅크그룹 이사이자 산하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 ARM의 CEO인 르네 하스다. 총 34억5800만 엔, 약 300억원을 받았다. 2위는 소니그룹의 요시다 겐이치로 회장으로 23억3900만 엔, 약 204억원이다.

이어 다케다약품공업의 크리스토프 웨버(20억8000만 엔), 라인야후의 신중호(20억 엔), 노무라홀딩스의 크로스토퍼 윌콕스(17억3000만 엔) 순이다. 앞서 ‘네이버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던 신중호 라인야후 최고상품책임자(CPO)는 개인정보 유출 책임을 지고 이사직을 내려놨다.

일본 최대 기업인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회장은 16억2200만 엔, 약 140억원을 받아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한 수준이다. 지난해 도요타가 3년 치 연결 영업이익 등을 기준으로 중장기 실적을 평가하는 제도를 도입한 덕분이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1조 엔 이상 기업의 CEO 연봉은 종업원 평균의 12.6배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19년의 10.4배에서 격차가 더 커졌다. 이를 감안해 직원 연봉도 인상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마지막 변수는 엔저
일본 정부는 올해 하반기 이후 실질임금이 플러스로 돌아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 변수는 엔저다. 메이지야스다종합연구소 추정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70엔보다 높으면, 즉 엔화 가치가 지금보다 더 떨어지면 내년 상반기 실질임금도 플러스로 전환하기 힘들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종합연구소 추산에 따르면 1년 동안 엔화 가치가 10% 떨어지면 비제조업 중견기업은 연봉이 2.1%, 중소기업은 1.9%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엔저는 전체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비제조업 중견·중소기업 종사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크다는 지적이다.

더 이상의 엔저를 막으려면 임금과 물가가 함께 상승하는 선순환을 통해 금리 인상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생산성 향상과 함께 가격 전가 등 선순환을 가로막는 요인을 제거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도쿄=김일규 한국경제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