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IT업계에 따르면 한 때 대한민국 산업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PC·게임·포털·이커머스 등 IT기업 창업주들의 1세대 벤처 신화가 모두 몰락했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경영진이 시대변화를 읽지 못했거나 문어발식 무리한 사업 확장 또는 개인적인 일탈로 회사를 위기 상황으로 이끌어 간 공통 분모가 존재한다는 비판도 뒤따른다.
1980년 우리나라 벤처기업 1호로 이용태 전 명예회장이 설립한 삼보컴퓨터는 2015년 법정관리를 맞으며 PC업계 1세대 벤처 신화에 종지부를 찍었다. 삼보컴퓨터는 당시 두루넷, 나래이동통신 등을 통해 초고속 통신과 무선호출기(삐삐) 사업을 크게 벌였다.
또 시티폰이라는 희대의 망작을 내놓으며 무리하게 사업을 했다가 결국 법정관리행을 맞았다. 아직 기업이 존속하고는 있지만 중소기업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삼보컴퓨터의 뒤를 이어 세진컴퓨터, 현주컴퓨터, 주연테크, 현대멀티캡 등 여러 업체가 PC산업에 도전했지만 노트북 사업 등을 무리하게 벌였다가 지금은 아예 회사가 없어졌다.
게임사도 마찬가지다. 국내 벤처 1세대인 넥슨 고 김정주 창업주는 지난 2022년 54세라는 젊은 나이로 별세했다.
김 창업주는 게임 산업 불모지였던 한국이 온라인게임 대국으로 발돋움 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하지만 국정농단 사건의 단초를 제공해 초유의 대통령 탄핵이라는 결과까지 낳은 진경준 전 검사장과의 뇌물스캔들로 현재까지 그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포털업계에서는 최근 SM엔터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돼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은 카카오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을 빼놓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은 NHN에 이어 카카오를 창업하며 국내 포털 플랫폼 업계에서 1세대 벤처 신화로 통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최근 위메프와 티몬을 인수해 이커머스 돌풍을 기대했던 구영배 큐텐 대표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티몬과 위메프를 합친 이른바 티메프 정산금 지연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 대표는 국내 최초 오픈마켓인 G마켓을 창업하고 성공 반열로 이끌어 명성을 얻었다.
큐텐그룹은 위메프와 티몬, 인터파크 커머스 부문을 인수하며 거침없이 사세를 확장해 갔으나 현재 정산대금 미지급으로 판매자 및 소비자, 결제대행 금융권 및 여행업계 등에 연쇄 피해를 끼치고 있어 문어발식 경영을 펼쳤다는 날선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다.
1세대 기업인이 저물었다고 기업이 곧장 나락으로 간다는 공식은 없다. 넥슨은 여전히 대표적인 게임회사로 승승장구하고 있고 카카오도 창업주가 위기를 맞고는 있지만 건재하다. 현재 재기 가능성이 있는 김범수 카카오 위원장과 구영배 큐텐 대표가 사상 최악의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갈지 지켜볼 대목이다.
정유진 기자 jin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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