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사실에 가깝다. 명품은 희소성 때문에 중고가격이 원래 가격을 뛰어넘고 아파트도 시계를 거꾸로 돌려보면 최고급 아파트가 더 많이 올랐다. 국내에서 아파트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것은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였다.
2000년대 한국 부동산 시장에는 새로운 강자들이 등장했다.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얼어붙었던 시장에 균열을 내고 20여 년간 진행된 아파트 가격 상승을 이끌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초의 고급 주상복합 모델인 ‘타워팰리스’ 집값은 입주와 동시에 분양가의 두 배 가까이 치솟으며 ‘부동산 붐’을 만들어냈다. 이후 타워팰리스는 지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올라서며 2000년대 주상복합 아파트의 유행을 주도했다.
이후 일부 지역의 부동산 규제가 풀리고 재건축되는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한강을 중심으로 초고가 아파트들이 생겨났다. 트리마제, 나인원한남 등은 부의 상징이 됐다. 일부 아파트의 몸값은 미분양의 뼈아픈 과거가 무색하게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 붐이 꺼지지 않도록 만든 서울의 럭셔리 아파트를 살펴봤다. ◆초고층 주상복합의 시작 타워팰리스2002년 입주를 시작한 타워팰리스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의 시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처음부터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1994년 삼성그룹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위치한 3만3691㎡(1만193평)의 땅을 서울시로부터 매입했다. 활용 목적은 ‘사옥 건립’이었다. 102층짜리 회사 건물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던 중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다. 삼성그룹은 경영 위기를 겪으면서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아파트 건립으로 사업 계획을 틀었다. 층수도 60층대로 낮췄다.
문제는 주상복합이라는 개념 자체가 자리 잡지 않아 흥행에 어려웠고 국가 부도 위기로 당시 시세보다 비싼 분양가에 아파트를 장만할 여윳돈을 가진 가정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초기 분양률은 50%를 넘기지 못했고 삼성 임원들에 특별 분양을 진행하기도 했다.
타워팰리스 1차의 초기 분양가는 3.3㎡(평당)당 990만∼1400만원 수준으로 분양 당시 서울시 평균 분양가보다 3배가량 높았다. 2007년 평당 가격은 4000만원대로 훌쩍 뛰었으나 2010년대 들어 주상복합 시장이 부진하면서 크게 오르지 못했다. 현재 타워팰리스의 평당 가격은 약 6500만원 수준이다. ◆ 논란의 아크로비스타대림산업이 지은 지상 26~37층 규모의 아크로비스타 역시 2000년대 주상복합 아파트 인기에 영향을 미쳤다. 서초동 삼풍백화점 터가 9년 만에 아파트 부지로 바뀌면서 관심을 받았다.
아크로비스타는 착공 전부터 ‘논란의 아파트’로 불렸다. 시행사인 대상은 진혼제를 지내기도 했으며 주변 아파트 주민들이 일조권 침해를 문제 삼아 건축허가 취소청구 소송을 내기도 했다.
또 단지 내 가격 차이도 논란이었다. 아크로비스타는 총 3개 동으로 구분되는데 상대적으로 큰 평수에 남향으로 설계된 C동은 A, B동과 비교했을 때 최대 2배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삼풍 사고를 빗겨간 C동(주차장 터)에 수요가 몰린 결과라는 의견도 나왔다.
2001년 분양 당시 평당 가격은 1000만~1800만원으로 타워팰리스3차 등 다른 주상복합 아파트보다 비쌌다. 그럼에도 초고층에 해당하는 17층 이상은 경쟁률이 최대 31대 1까지 치솟으며 인기를 끌었다. 아크로비스타의 최근 가격은 평당 4966만원 선이다.
최근 대통령 부인이 최재영 목사로부터 명품 백을 받는 장면이 촬영된 곳도 이 아파트다. ◆ 삼성동 아이파크2000년대 주상복합 트렌드에도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은 일반 아파트가 있다. 2004년 완공된 '아이파크 삼성'이다. 46층에 달하는 초고층 아파트로, HDC현대산업개발이 프리미엄 브랜드인 '아이파크'를 처음 사용한 곳이기도 하다.
아이파크 삼성은 한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구릉지에 지어져 2000년대 가장 인기 있는 아파트가 됐다. 10억~11억원대에 분양된 73평형은 입주 전 프리미엄만 10억원을 넘겼고 55평형(분양가 7억3000만원) 역시 7억원 이상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모든 평형에는 기본 1억~2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
그러나 이런 인기를 누린 아이파크 삼성도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같은 미분양 역사가 있다. 2000년 국내 최고가였던 평당 2700만원에 분양에 나섰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와 높은 분양가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고 이듬해 분양가와 평형을 대폭 낮췄다.
삼성동 아이파크의 별칭은 ‘서울 평당 최고가 아파트’였다. 분양 초기부터 큰 관심을 받은 아이파크 삼성의 평당 가격은 2005년 4000만원대로 치솟았고 2010년대 7000만원대로 올라섰다. 현재 이 아파트의 평당 가격은 9812만원에 달한다. ◆ 반포자이2008년 완공된 29층짜리 반포자이 역시 미분양에서 시작했지만 대장 아파트로 올라선 역사가 있다. 당시 전체 3400가구의 17.6% 비중인 566가구가 일반 물량이었으나 이 중 159가구가 미분양됐다.
후분양 아파트로 당첨자들이 청약 후 5개월 안에 잔금을 처리해야 하지만 당첨자 일부가 부동산 침체 등의 영향으로 계약을 포기하면서 다수의 미분양이 생겼다.
그러나 반포자이는 교통, 생활편의시설 등 ‘알짜 입지’에 들어서며 부동산 시장 회복과 동시에 집값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평당 분양가는 2783만~3314만원이었으나 최근 들어 반포자이 평당 가격은 8696만원까지 치솟았다. ◆ 용산 파크타워2008년 완공된 용산구 용산동 대표적인 주상복합 아파트 파크타워도 과거 ‘알짜 아파트’로 통했다.
파크타워 역시 우여곡절을 겪었다. 시공사가 2곳인 것도 그 일부다. 현대건설은 1986년 노후불량주택 재개발 사업 단지였던 해당 구역의 단독 시공사로 선정됐지만 조합의 반대로 삼성물산(당시 삼성건설)이 새로운 시공사로 추가 선정됐다. 논란 끝에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6대 4 비율로 시공을 담당했다.
그럼에도 2000년대 주상복합 트렌드에 힘입어 분양 경쟁은 치열했다. 2005년 4월 분양 당시 전 가구가 1순위에서 청약이 완료되며 인기 단지로 올라섰다. 이로 인해 분양가는 2000만원 안팎(1885만~2197만원)으로 책정되면서 ‘강북 지역 최초의 평당 분양가 2000만원 돌파’ 수식어를 얻었다.
다만 15년간 가격이 크게 오르지는 않았다. 현재 용산 파크타워의 평당 가격은 5600만원대다. 분양가의 2.8배 수준이다. ◆ 아크로리버파크 2010년대 초반 강남 재건축아파트 열풍의 주인공이자 이른바 ‘아리팍’으로 불리는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는 기존 신반포1차 아파트 부지에서 2016년 완공됐다. 교육(학군)·교통·공공시설 등 생활기반시설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 ‘평당 1억원’을 넘는 대표적인 아파트다.
강남 재건축 확률이 높지 않은 점, 한강변 프리미엄, 강남권 명문학군 포진 등이 가격에 영향을 줬다. 특히 아리팍은 당시 강남 한강변에 10년 만에 들어서는 강남 재건축이 되면서 부동산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평당 분양가는 주변 시세보다 낮은 3800만원대로 설정되면서 투자자와 실수요자 모두 몰려 분양권 쟁탈전이 진행됐다. 최고 42.27대 1의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며 전 평형이 1순위에서 마감됐다. 1회차 분양 당시 3040세대의 고소득 전문직이 몰린 것이 알려지면서 ‘강남 부자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아파트’라는 별칭도 얻었다.
현재 아크로리버파크의 평당 가격은 1억1500만원을 넘는다. 서울 반포동 평균 아파트 가격(약 8000만원)을 크게 웃도는 금액이다. ◆ 트리마제성동구 성수동의 대장 아파트 중 하나는 트리마제다. 2017년 입주를 시작했으며 지하 3층, 최고 47층 4개 동의 총 688가구 규모다.
트리마제 역시 미분양의 아픔을 겪었다. 2014년 3월 분양을 시작했으나 평당 분양가가 3200만~4800만원으로 비교적 높게 책정돼 수요층이 줄었다. 이로 인해 2016년까지 266가구가 미분양으로 남았고 2017년 입주 직전까지도 일부 가구가 미분양이었다. 인근에 먼저 들어선 주상복합 갤러리아 포레(2008년 분양·2011년 입주)가 이미 성수동 인근의 투자 수요를 흡수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입주 직후 트리마제의 몸값은 치솟기 시작했다. 유명 배우와 가수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연예인 아파트’로도 불렸다. 현재 트리마제의 평당 가격은 9200만원대다. 성수동 평균 가격(6800만원) 대비 약 2400만원 높고 성동구 전체로 봤을 때는 평균 가격(4400만원)의 2배 이상이다. ◆ 래미안 첼리투스용산구 동부이촌동의 래미안 첼리투스는 재건축 아파트다. 과거 렉스아파트 자리에 들어선 것으로 460세대에서 더 늘어나지 않은 ‘일대일 재건축’으로도 유명하다. 일대일 재건축은 당장 조합원의 분담금 부담은 크지만 단지 고급화를 위해 기존 세대수를 유지하는 게 특징이다. 이로 인해 일반분양 물량은 거의 없다. 실제 세대당 분담금은 5억4000만원에 달했다.
특히 첼리투스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상 르네상스’ 사업의 대표작으로도 꼽힌다. 이 사업으로 한강변 아파트를 50층 이상의 초고층으로 건립 가능하게 만들었다. 첼리투스는 이 수혜를 받아 56층으로 설계됐으며 3개 동은 17층 스카이브리지로 연결됐다.
첼리투스는 파크타워와 함께 용산구의 대장 아파트로 꼽혔다. 평당 분양가는 4500만~5000만원이었으나 2015년 입주가 가까워지자 입주권은 렉스아파트 매매가(10억원)의 2배인 20억원 이상으로 올랐다. 현재 평당 가격은 8800만원으로 이촌동 평균(5700만원)을 크게 웃돈다. ◆ 압구정 현대압구정 현대는 대표적인 투자용 매물로 꼽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아파트 시세 순위 1위부터 10위까지가 모두 현대아파트(신현대 포함)다. 가장 비싼 매물은 평당 1억2000만원 수준에서 거래되며 10위 아파트 역시 평당 1억원이 넘는다. 강남구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다.
현대아파트는 노후화됐다는 단점에도 위치, 교통, 땅의 형세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강남 한강변 최고 입지인 압구정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투자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1970년대 분양 당시 가격은 30평대 865만원, 60평대 1770만원이었다. 당시 직장인 월급이 10만원대 수준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구매가 쉽지 않았다. 여기에 한강변 매립공사를 통해 탄생하면서 한강 다리 외에 교통 인프라나 편의시설이 없어 큰 이목을 끌지 못했다. 25평의 서민용 아파트가 아닌 35평에서 65평의 ‘부자들을 위한 아파트’로 홍보했지만 미분양도 있었다.
이미지가 달라진 것은 1970년대 후반이다. 1978년 ‘특혜분양 사건’이 터지면서 ‘특권층이 사는 곳’으로 인식됐다. 이 과정에서 부자들은 단독주택에 산다는 사회적 인식이 ‘아파트 거주’로 확대되기도 했다.
압구정 현대는 ‘지금이 가장 싸다’는 수식어가 있을 정도다. 1990년대 평당 가격 1000만원대에서 2000년대 들어서며 1500만~2500만원까지 뛰었다. 2000년대 후반 들어 3000만원대로 올랐고 2010년대 초반에는 4000만원대까지 치솟았다. 2010년대 후반 평당 가격은 6000만원대 이상으로 뛰었고 2021년 평당 1억원을 돌파했다. 압구정 현대 재건축 후 시세가 3.3㎡당 2억~3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매매가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 나인원한남용산구 한남동의 ‘나인원한남’은 2019년 입주를 시작한 아파트다. 시행사인 디에스한남이 용산기지 주둔 미군들의 외국인아파트 부지를 재개발한 것으로 나인원한남은 분양가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주택 공급 방식을 ‘임대 후 분양’으로 바꿨다. 분양 전환은 4년 임대 후 원하는 입주가구에 한해 이뤄진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는 평당 분양가를 4000만원대로 고집했으나 6000만원대를 원한 시행사가 전략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당시 편법 분양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2018년 평당 분양가는 평균 6100만원으로 확정됐다. 펜트하우스의 분양가는 평당 1억원 안팎이었다. 국내에서 가장 비싼 분양 전환 민간임대아파트로 꼽혔다. 임대보증금은 33억~48억원에 달했으나 수요가 몰리면서 경쟁률은 5.53대 1을 기록했다. 현재 나인원한남의 평당 가격은 1억3850만원대에 달한다. 한남동 평균(6000만원)의 2배이며 용산구 평균(5000만원) 기준으로는 약 3배 수준이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