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뿐 아니라 중소 온라인쇼핑몰도 줄줄이 문을 닫고 있어요. 가구, 가전 등을 주로 판매했던 알렛츠란 쇼핑몰이 폐업을 공지했고요. 바보사랑, 천삼백케이(1300k) 등도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밝혔습니다. 티메프 사태가 국내 온라인쇼핑 시장의 구조조정을 촉발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반면 티메프 사태로 기대를 갖는 기업도 있습니다. 경쟁 유통사들입니다. 티몬, 위메프가 원가보다 더 싸게 물건을 팔았고 이게 결국 미정산 사태까지 간 것인데요. 티몬, 위메프가 사라지면 이런 ‘출혈경쟁’은 덜 할 테니까요. 또 경쟁자가 적어지는 효과가 있어서 시장점유율을 끌어 올리는 기회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주식시장에서 주목하는 회사가 있는데요. 바로 이마트입니다. 주가가 이미 움직이고 있어요. 티메프 사태가 불거진 이후 한 달간 12%가량 올랐습니다. 지난 7월 23일 5만5600원 했던 게 8월 21일 기준 6만2400원으로 뛰었습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는 2.6% 떨어졌습니다. 시장 상황이 안 좋았는데도 이마트 주가가 오른 겁니다. 투자자들은 이마트에서 어떤 희망을 본 것일까요.
◆티메프 셀러들 G마켓으로 줄줄이 옮겨
티몬, 위메프와 경쟁관계에 있는 곳은 오픈마켓입니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해 주고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는 게 오픈마켓이죠.
국내 오픈마켓에서 가장 큰 곳을 꼽으라면 쿠팡, 네이버 쇼핑, G마켓, 11번가입니다. 티메프 셀러들, 소비자들이 이쪽으로 이동할 것으로 당연히 예상이 됩니다.
그런데 사업 구조를 들여다보면 쿠팡과 네이버는 좀 달라요. 쿠팡은 물건을 떼다 파는 직매입 비중이 훨씬 큽니다. 오픈마켓은 매출의 약 10%에 불과해요. 나머지 90%가량은 직매입 사업을 통해 올립니다. 네이버는 직매입은 없지만 사업 구조가 아예 달라요. 네이버에 입점해서 판매하는 셀러도 물론 있지만요. 쿠팡, G마켓, 11번가에 입점한 셀러도 네이버 검색에 대부분 노출됩니다. 쿠팡, G마켓, 11번가가 네이버와 계약을 맺고 수수료를 주기 때문인데요. 그러니까 네이버는 오픈마켓과 경쟁·협력을 동시에 하고 있는 겁니다. 네이버가 쿠팡 상품을 많이 노출하고 팔아주면 그만큼 수수료도 많이 받습니다.
결국 티메프와 가장 비슷한 곳은 G마켓과 11번가란 얘기인데요. 11번가도 요즘 어렵긴 마찬가지죠. 거래액, 매출이 계속 줄고 있고 적자도 아직 해소하고 있진 못합니다. 여기에 모기업인 SK가 11번가에 대한 지원을 끊어서 현재 매물로 나온 상태입니다. 티메프처럼 되진 않겠지만 안 될 것이란 보장도 없어요.
그럼 남는 게 G마켓이네요. G마켓도 적자를 내고 있긴 한데 여긴 모기업이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바로 신세계그룹, 더 정확히는 이마트입니다.
G마켓은 사실 셀러들에게 존재감이 엄청난 회사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쿠팡과 함께 국내 온라인쇼핑 시장 1등을 다퉜어요. 쿠팡이 직매입 시장에서 1등이었다면 G마켓은 오픈마켓 시장에서 1등이었습니다. 이익도 연간 수백억원씩 잘 내고 있었고요. 티메프 사태로 피해를 본 셀러가 G마켓으로 많이 옮길 것이란 예상이 그래서 나옵니다. 물론 그럼 소비자들도 같이 많이 가겠죠.
그 숫자가 얼마나 될까요. 티몬, 위메프의 월간활성이용자수는 각각 430만 명을 넘어갑니다. 합치면 800만 명 이상이고요. 여기서 거래된 금액이 티메프 사태 직전인 지난 6월 기준 티몬이 8000억원대, 위메프가 3000억원대로 추정됩니다.
이땐 미정산 사태 직전이라 급하게 상품권 같은 것을 많이 팔아서 좀 많긴 한데요. 두 곳 합쳐서 대략 한 달에 6000억원가량 거래가 됐어요. 1년으로 하면 7조원쯤 합니다. 티몬, 위메프는 여기서 7~8%가량 수수료를 떼어 갔고요. 이게 매출이 되는데요. 수수료율을 7%로 잡으면 연간 약 5000억원의 매출이 나오는 셈이죠.
◆유통시장 재편으로 출혈경쟁 완화 기대
5000억원이 커 보이긴 한데 이마트 규모를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니기도 합니다. 이마트의 작년 연간 매출이 29조원을 넘겼거든요. 5000억원 전부 가져간다고 극단적으로 가정해도 매출 증대 효과가 1.7%에 불과해요. 이런 미미한 효과에 비하면 주가가 12%나 오른 게 설명이 잘 안 되는데요. 티메프 몫을 가져와서 좋은 것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건 온라인쇼핑 시장의 재편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 같아요.
이마트는 온라인쇼핑이 성장하면서 대표적인 ‘피해 기업’으로 꼽혔습니다. 마트가 장악하고 있던 생활용품, 예컨대 물티슈, 세제, 기저귀 같은 상품을 온라인이 다 가져갔잖아요. 여기에 고기, 채소, 과일 같은 신선식품도 온라인에 빼앗겼고요.
소비장 입장에선 온라인의 이점이 많은데요. 가장 큰 것은 바로 가격이었습니다. 마트에서 아무리 싸게 팔아도 온라인을 이길 수 없었어요. 이마트는 가격으로 과거에 월마트, 까르푸조차 눌러서 한국에서 몰아낸 적이 있는데요. 쿠팡, 네이버, G마켓은 못 이겼어요. 대형마트를 영어로 하면 ‘디스카운트 스토어’입니다. 할인점이죠. 대형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가격에 이점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마트가 가격으로 못 이긴 것은 온라인이 밑지고 팔았기 때문이었어요. 쿠팡이 작년에 흑자를 내긴 했지만 창업 후 13년간 내리 적자를 냈고요. 누적 적자만 5조원을 넘겼습니다. 티메프 사태도 결국 밑지고 팔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어요. 상품권만 싸게 판 게 아니라 소형 전자제품이나 생활용품도 굉장히 싸게 나왔습니다.
그래서 유통업계에선 온라인쇼핑 산업의 구조조정이 크게 올 것이라 말이 예전부터 나왔어요. 이익도 못 내면서 거래액, 매출만 부풀리는 경쟁이 비정상적으로 보였거든요. 그런데 티메프 사태가 터진 겁니다. 구영배 큐텐 대표란 사람이 나타나서 티몬, 위메프 뿐만 아니라 인터파크 쇼핑, AK몰까지 인수해서 한번에 침몰한 것인데요. 이번 사태로 인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간 가격 경쟁이 다소 완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투자자들이 하고 있는 듯합니다. ◆정용진 회장 ‘절치부심’
이마트도 온라인에 밀려서 고전하는 동안 자체적인 노력을 많이 했죠.
대형마트 이마트, 슈퍼마켓 이마트에브리데이, 편의점 이마트24가 상품 구매를 최근에 통합했어요. 과거엔 이마트 따로, 에브리데이 따로 상품을 사서 팔았는데 지금은 같이 사서 팝니다. 이렇게 하면 더 많이 살 수 있고 그래서 더 싸게 살 수 있어요. 초코파이 100개 살 때와 1000개 살 땐 가격이 다르죠. 싸게 사오면 마진을 더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올 2분기에 이마트의 마트 사업 상품 마진이 0.6%포인트 개선됐어요. 별거 아닌 듯하지만 유통사들 요즘 이익률이 2~3%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꽤 큰 효과입니다.
여기에 얼마 전에 이마트는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받았고요. 매출이 잘 안 나오는 매장은 문을 아예 닫거나 식품 중심으로 리모델링해서 효율을 높이고 있어요. 쿠팡처럼 하려다가 잘 안 된 온라인 배송은 CJ대한통운에 맡겼습니다. CJ대한통운이 G마켓, SSG닷컴 상품을 로켓배송 못지않게 빠르게 가져다 줄 것이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이마트24가 이마트의 인기 PB(자체 브랜드) ‘노브랜드’를 팔기 시작했고요. 결정적으로 정용진 신세계 회장이 골프, 인스타그램 다 끊고 경영에만 전념하고 있다고도 합니다.
‘절치부심’이란 표현이 딱 어울리는데요. 이마트는 어떻게 해서든 오프라인 매장의 경쟁력을 높이고 한편으론 온라인쇼핑 시장에서 존재감을 보이겠다고 해요. 티메프 사태로 찾아온 기회를 이마트가 잘 살릴 수 있을까요.
안재광 한국경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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