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
비철금속 분야 세계 1위 기업인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최대주주 영풍이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확조를 위한 공개매수에 나선 가운데, 지역사회와 여야 정치권에서 고려아연의 중국 등 해외 매각과 국가기간산업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치권 "중국 등 해외 매각 시 기술 유출·기간산업 붕괴 우려"

20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의힘 사무총장인 서범수 의원이 이순걸 울주군수와 울주군의원, 울산시의원 등과 함께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고려아연과 영풍 간 경영권 분쟁에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가 개입한 것에 대해 "국가 기간산업 붕괴가 우려된다"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서 의원은 "단기 수익을 쫓는 사모펀드에는 구조조정과 일자리 감소가 수반되는 것이 다반사인만큼 지역 사회에서의 고용 및 투자 축소가 우려된다"면서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공개매수 이후 경영권 장악을 통해 해외에 매각할 경우 핵심 기술 유출과 국가기간산업이 붕괴할 수 있고 국부 유출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서 의원은 "이번 갈등은 단순히 민간기업 간 경영권 분쟁이라고 하기엔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도 크다"며 "주민들과 정치권이 나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앞서 지난 17일에는 'MBK파트너스의 국민연금 위탁운용사 선정'에 문제를 제기했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희승 의원이 공개적으로 고려아연 공개매수를 비판하며 이번 사안을 오는 10월 국정감사에서 따져보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박 의원은 "MBK가 중국계 자본을 등에 업고 적대적 M&A를 시도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며 "자칫 중국 자본이 고려아연을 인수할 경우 독보적인 기술은 해외로 유출되고 핵심 인력들의 이탈도 가속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국민연금의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에 대한 의문과 국민연금이 올해 국내 사모 PEF 분야 총 1조원 중 2980억원을 MBK파트너스에 배정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박 의원은 "국민연금법상 국민연금 위탁운용사 선정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책임투자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국민의 노후를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우리 기업과 근로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투기적 사모펀드에 돈을 맡기는 것은 책임투자 원칙에 맞지 않다"고 했다.

박 의원은 올해 국감에서 국민연금의 MBK파트너스 위탁운용사 선정 과정과 MBK파트너스의 잇따른 논란이 ESG 책임투자 원칙에 문제가 없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볼 예정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이 19일 고려아연 주식 매입을 인증하고 있다. 김 시장은 지난 17일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반대를 주장하며 울산시민의 고려아연 주식 갖기 운동을 제안했다. 사진=울산시
김두겸 울산시장이 19일 고려아연 주식 매입을 인증하고 있다. 김 시장은 지난 17일 고려아연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반대를 주장하며 울산시민의 고려아연 주식 갖기 운동을 제안했다. 사진=울산시
울산시장 등 '고려아연 주식' 매입 릴레이

지역사회에서는 '고려아연 주식 사주기 운동'이 시작됐다. 지난 16일 김두겸 울산시장의 제안으로 시작된 주식 매입 운동은 19일 김 시장이 1호로 고려아연 주식을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울산지역 상공업계의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이윤철 울산상공회의소 회장이 2호로 주식을 매입했다. 울산상공회의소 최고경영자 아카데미 총동문회 등 울산지역 6개 기업 경영인 단체도 고려아연 주식 매입에 동참하기로 했다.

고려아연을 비롯해 330여개의 기업들이 위치해 있는 울산 온산공업단지를 대변하는 온산공업단지협회도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위해 진행하는 공개매수에 반대 입장을 밝히고 "울산시가 주도하는 '고려아연 주식 사주기 운동'을 포함한 모든 노력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고려아연 분쟁에 정치권 '들썩'…MBK 김병주 국감 소환되나
여야 정치권도 주목…MBK 김병주 국감 소환 촉각

고려아연 분쟁 사태가 여야 정치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을 국감에 증인으로 소환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국회에 따르면 야당 정무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이 다음달 국감 증인 신청 명단에 김병주 회장을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은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 사태와 국민연금의 PEF 위탁운용사 선정 관련 문제로 명단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MBK파트너스는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 연속 국감장에 소환됐다. 치킨 프랜차이즈 BHC 인수 후 가맹점에 원부자재 납품 폭리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2022년에는 BHC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의 윤종하 부회장이 국감 증인으로 소환된 바 있다.

지난해에는 MBK파트너스 창립멤버 중 한명인 부재훈 부회장이 BHC 가맹점에 대한 갑질 문제와 2022년 국감에 출석했던 윤종하 부회장의 위증 혐의와 관련해 국감장에 증인으로 섰다.

여야가 오는 23일부터 증인 신청에 대한 협의를 시작하는 만큼 김 회장이 최종 명단에 포함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하지만 고려아연 분쟁 사태로 지역 사회와 노동계, 정치권에서 반대를 표명하고 나섰고, 파장이 커지면서 최종 명단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진다.
강성두 (주)영풍 사장, 김광일 MBK 파트너스 부회장, 이성훈 베이커매킨지코리아 변호사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안옥희 기자
강성두 (주)영풍 사장, 김광일 MBK 파트너스 부회장, 이성훈 베이커매킨지코리아 변호사가 19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MBK파트너스 고려아연 공개매수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안옥희 기자
영풍·MBK vs 고려아연, 진실 공방전…줄소송 돌입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정치권으로까지 비화한 가운데 고려아연과 영풍·MBK파트너스의 치열한 여론전과 공방전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각종 소송전에도 돌입했다.

연휴가 끝난 지난 19일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최윤범 회장의 비합리적인 투자로 인한 고려아연의 재무건전성 악화와 대리인 문제, 주가 조작 연루 등 각종 의혹 제기로 공격했다.

고려아연은 이에 맞서 "약탈적 기업사냥꾼의 악의적 왜곡"이라며 반박자료를 배포해 MBK파트너스 측이 제기한 의혹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고려아연은 이날 국내 3대 신용평가사 가운데 두 곳(한국기업평가, NICE신용평가)으로부터 장기 신용등급 'AA+'를 받았다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올해 상반기 말 연결 기준 고려아연이 보유한 현금은 총 2조1277억원으로, 부채비율 36%에 차입금의존도가 10%에 불과할 정도로 건전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재무 안정성과 현금창출력, 사업 지속성 등 각종 지표에서 초우량 기업이라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고려아연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고려아연
최씨 일가, 글로벌 네트워크 총가동…소뱅·한투 등판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국내외 사모펀드(PEF)를 만나는 등 백기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최 회장 측은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공격에 함께 맞설 우군을 찾아 글로벌 네트워크를 총가동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이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공개매수를 선언한 직후인 지난 17일 일본 도쿄와 아시아 지역 출장을 통해 막강한 자금력을 갖춘 일본 소프트뱅크, 한국투자증권, 고려아연의 오랜 아시아권 해외 파트너 등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내현 켐코 회장과 최주원 아크에너지 대표 등 최씨 일가 경영진들도 해외 네트워크를 총동원해 최 회장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호주 계열사 아크에너지를 이끄는 최주원 대표는 최근 니타 그린 호주 연방정부 상원의원과 면담해 영풍과 MBK파트너스의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따른 현지 일자리에 미칠 영향과 호주 재생에너지 사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

최 회장은 귀국 후 이번 경영권 분쟁 사태로 인한 내부 동요 진화에 나섰다. 최 회장은 19일 계열사와 협력사 임직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온 힘을 다해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를 저지할 것이고 이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것"이라며 "그들의 허점과 실수를 파악하고 대응해 이기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