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풍정밀 대항 매수·고려아연 자사주 매입 '투트랙' 전략
영풍·MBK 측 공개매수 흔들기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사진=한국경제신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영풍과 사모펀드 MBK파트너스 연합에 맞서 경영권을 사수하기 위해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한 계열사 영풍정밀 주식 대항 공개 매수에 나섰다. 한국 자본시장 역사에서 경영권 갈등과 관련해 공개 대항 매수가 이뤄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재계·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인 제리코파트너스는 주요 경제 신문에 이날부터 21일까지 20일간 영풍정밀 보통주 공개매수 공고를 냈다.

공개 매수 가격은 3만원으로 제시됐다. 공개 매수 예정 주식 수는 전체 발행 주식의 25%인 393만7500주(지분율 25%)다.

제리코파트너스의 특별 관계자로는 최윤범 회장과 최창규 영풍정밀 회장 등 고려아연 최씨 일가와 특수 관계인들의 이름이 올랐다. 이는 제리코파트너스의 영풍정밀 대항 공개 매수가 최 회장 측과 공동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뜻한다.
사진=영풍정밀
사진=영풍정밀
'지분 전쟁 승부처' 영풍정밀 사수 총력전
영풍·MBK 공개매수가 보다 20% 높여


앞서 MBK 연합 측은 고려아연과 함께 영풍정밀 주식 공개 매수를 진행하면서 매수가로 2만5000원을 제시했는데 최 회장 측은 이보다 5000원 높은 3만원을 제시했다. 최 회장 측의 총 투입 금액은 1181억2500만원이다. 하나증권이 공개매수 주관 업무를 맡는다.

영풍정밀은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하고 있으며 시가총액이 3985억원 수준이다. 영풍정밀 경영권을 차지할 경우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늘릴 수 있어 지분 경쟁의 승패를 좌우할 승부처로 꼽힌다.

영풍과 MBK파트너스 연합이 영풍정밀을 차지하면 최 회장 측으로부터 고려아연 지분 1.85%를 확보하는 것이어서 사실상 의결권을 3.7% 확보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리게 된다.

영풍정밀은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배우자인 유중근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단일 최대주주로 있다. 영풍정밀은 최윤범 회장의 작은아버지인 최창규 회장이 경영을 맡고 있다. 최창규 회장은 영풍정밀 지분 5.71%를 보유하고 있으며, 최씨 일가 지분이 장씨 일가 지분보다 더 많다.

이번 공고에 따르면 최 회장 측은 이미 현재 영풍정밀 주식 지분 35.45%를 확보 중이다.

최 회장 측은 현재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고려아연의 내부 현금을 활용한 회사 차원의 자사주 매입과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털 등 외부 자금을 동원한 공개 주식 매수 등 투트랙 대응 전략을 세운 상태로 알려졌다.

자사주 매입 단가는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한 차례 인상한 공개매수 가격 75만원을 웃도는 80만원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를 통해 사들인 자사주 전량을 소각할 방침이다. 고려아연은 2일 오전 9시에 이사회를 열고 공개매수 방식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변수는 2일 나올 법원의 결정이다. 영풍 측은 이번 공개 매수 기간 최 회장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고려아연 법인이 자사주를 취득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서울중앙지법에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자본시장법 제140조에 따르면 공개매수자와 그 특별관계자는 공개매수 기간 공개매수 대상회사의 주식을 공개매수에 의하지 아니한 방법으로 매수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은 고려아연이 영풍의 계열사이기 때문에 자본시장법상 '특별관계자'에 해당하며, 고려아연이 공개매수 기간 자사주를 취득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고려아연 측은 공시를 통해 영풍 측과의 특별관계가 해소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사옥. 사진=고려아연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사옥. 사진=고려아연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 2일 결론
"자사주 매입시 전량 소각" 승부수



고려아연은 가처분 신청 기각과 인용, 부분인용 등 세가지 판결 시나리오 별 의안을 의결해두고, 법원 결정이 나는대로 곧장 자사주 매입과 공개 대항 매수를 병행할지, 고려아연 주식 공개 대항 매수로만 대응할지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돼 고려아연이 회삿돈으로 자사주 매입에 나설 수 있게 되면 최 회장 측이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반면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최 회장 측이 자사주 취득 카드를 사용할 수 없게 돼 궁지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또 자사주 매입 자체를 허용하되, 영풍·MBK파트너스 측의 공개매수 종료 직후 시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부분인용 가능성도 존재한다.

다만 최 회장 측은 2일 나올 고려아연 자사주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공개매수 기간이 끝난 직후 자사주를 더 비싸게 사겠다고 미리 공표해 영풍·MBK 연합 측 공개매수 참여율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공개매수 계획을 흔들기로 한 것이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전량 소각 방침을 내놓은 데에는 배임 논란을 의식한 행보로 풀이된다. 자사주를 기존 주가 수준보다 높은 가격에 사면 특정주주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치는 배임 논란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고려아연 측은 최근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이 최 회장을 상대로 제기한 '자기주식 취득금지 가처분 신청' 재판에서 가처분 신청이 기각돼 자사주 취득이 가능하게 되면 이후 매입한 자사주 전량을 소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