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주가 때문? 필사적인 한미약품 대주주 간 ‘쩐의 전쟁’…경영권은 어디로[비즈니스 포커스]
한미약품그룹의 경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새로운 분수령을 맞이하고 있다. 고(故) 임성기 회장 배우자인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과 딸인 임주현 부회장, 고향 후배인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이 한 진영을 형성한 가운데 장남과 차남인 임종윤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 임종훈 대표이사 형제가 팀이 되어 대응하고 있다.

‘키맨’은 신동국 회장이다. 올해 3월 신 회장이 형제의 편에 서며 형제에게 기울었던 무게추는 그의 달라진 결정에 모녀 쪽에 넘어가는 중이다. 모녀와 신 회장의 일명 ‘3자 연합’이 핵심 계열사인 한미약품을 장악한 상태에서 지주사 한미사이언스는 아직 형제 손에 있다.

3자 연합이 11월 28일로 예정된 한미사이언스 임시주총을 통해 이사회 구성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바꾸면 ‘경영권 확보’는 성공한다. 이에 형제 측은 한미약품에 임시주총을 요구하는 등 반격을 가하는 형국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재계에서 ‘형제의 난’은 제법 흔한 일이다. 그런데 한미 사례처럼 친모와 아들형제 간 대립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대주주 각자의 입장을 따져볼 때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해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는고 분석한다. 임 회장 가족들은 각자 상속세 재원 마련 또는 오너경영을 지키는 목적에 의해, 신 회장은 10년 이상 기다려온 한미 주식 ‘엑시트’를 위해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신동국 회장, 왜 ‘키맨’ 됐나?
송영숙 회장과 자녀들의 지분 관계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 전자공시에 따르면 6월 말 기준 송 회장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12.85%, 임주현 부회장이 7.46%를 보유하고 있었고 임종윤·종훈 형제 지분율은 각각 12.46%, 9.15%였다. 이들 지분을 합한 송 회장 측 특수관계자 지분율은 32.60%, 형제 외 관계자 지분율은 25.20%였다.

같은 기간 가족이 아닌 신동국 회장 지분이 12.43%에 달했다. 신 회장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된 이유다. 최근 송영숙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 모녀가 연합전선을 이루게 된 신동국 회장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신 회장 지분율은 14.97%로 더 높아졌다.

모녀와 형제 간의 지분 구도는 2020년 8월 임 회장이 지분정리 없이 작고하면서 생긴 일이다. 2010년부터 한미사이언스 사장을 맡았던 장남 임종윤 이사가 후계자였다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임 회장 생전 지분 34.27%는 법대로 가족들과 재단에 나뉘어 상속됐다.

임 회장은 2010년 한미사이언스(옛 한미홀딩스)와 한미약품을 인적분할하는 방식으로 지주사 체제를 만들어 그룹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지만 지분 구조상의 후계 구도를 완성하거나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임 회장은 작고하기 불과 며칠 전까지 정상적으로 업무를 볼 만큼 건강에 이상이 없어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남은 가족들은 상속세 5400억원이라는 ‘발등의 불’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신동국 회장은 한미약품이 인적 분할된 이후 신약 기술 이전 이슈로 한창 ‘핫’하던 2010년 한미사이언스 지분 113만여 주를 매수하기 시작해 한미약품 지분도 늘려갔다. 일부 주식을 매도하고 무상증자를 받으면서 현재 신 회장은 한미약품 지분 7.71%를 보유하고 있다. 후계자 문제가 불씨 댕겨
이 같은 구도에서 송영숙 회장 체제가 이어지던 중 송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은 상속세 재원 및 연구개발(R&D) 투자금 마련 등을 위해 OCI그룹과 한미 간 통합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송 회장과 임 부회장은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임종윤·종훈 형제는 그렇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딸인 임주현 부회장은 임성기 회장 작고 이후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모친과 스킨십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며 “반면 임종윤 이사는 북경한미약품에서 일하는 등 해외에 주로 머물며 몇 년간 소원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후계구도가 딸 쪽으로 기울어지며 형제들이 불만을 갖게 됐다는 주장도 있다. 통합 계획에 따르면 통합 그룹을 지배하는 OCI홀딩스가 한미사이언스 지분 27%를 취득하고, 임 부회장은 OCI홀딩스의 주요 주주가 되면서 제약바이오 부문 대표이사를 맡을 예정이었다. 송 회장은 일부 지분을 단순 매각해 현금을 확보하는 방안이었다. 이 계약에서 형제 측은 빠졌다.

실제로 임종윤 이사는 올초 ‘OCI 딜’이 알려진 직후 “한미 측이나 가족에게서 어떠한 고지나 정보를 제공받은 바 없다”면서 자신이 그룹 통합 결정에서 배제됐다고 주장했다.

지향하는 경영방식도 다르다. 지금도 모녀는 오너가로서 앞에 나서기보다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려 하는 반면, 형제는 오너경영을 통한 사업 확대 및 전환을 꾀했다. 해외투자를 유치해 기존의 R&D뿐 아니라 제조업 위주의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으로 사업영역을 넓히겠다는 것이었다.

양측은 여론전에 나섰다. 형제 측은 모녀에 대해 “사모펀드(자문사 라데팡스파트너스) 말을 믿고 회사를 넘기려 한다”고 주장했고 모녀는 형제의 경영전략 대해 “현실성이 전혀 없다”고 공격했다.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는 경영권 분쟁이 한창이던 올해 3월 26일 “(임종윤 이사가) 바이오의약품 100개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걸 봤다”며 “희망적일 수는 있겠으나 생산 현장을 너무 쉽게 말하는 것 같아 힘이 빠졌다”고 밝혔다. 제조본부장 출신인 박 대표는 송 회장, 임 부회장 체제인 지난해 대표이사에 선임된 바 있다. 운명의 11월, 최종 승자는?
그러나 이틀 뒤 열린 한미사이언스 주주총회에선 형제가 승리했다. 신동국 회장이 형제의 손을 들어주면서 형제 측 사내이사 5명이 모두 한미사이언스 이사회에 진입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임종윤·종훈 형제는 이사회 내 과반 의결권을 장악하게 됐다.

신 회장이 형제 편을 들었던 이유에 대해선 여러 추측이 나온다. 모녀와 함께 그룹 통합을 추진했던 OCI가 신 회장 몫을 잘 챙기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신 회장은 2010년 주당 약 3만7000원에 첫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매입했으나 현재 이 주식은 투자에 나선 2010년 이래로 최근 3만원 초반대에 형성돼 있다. 15년 가까이 소위 ‘물린’ 셈이다.

신 회장이 선배였던 임성기 회장의 뜻에 따라 형제를 지지했었다는 주장도 있다. 신 회장이 형제의 편을 들어주되 “모친과 화해하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후로 반년째 가족 간 화해도 주가 상승도 현실화하지 못했다. 한미약품은 2027년 상용화를 목표로 임상 3상 단계인 한국인 맞춤형 비만치료제 ‘에페글레나타이드(efpeglenatide)’를 개발하고 있어 국내 ‘비만신약 대표주’로 꼽히는 반면, 상속세를 내야하는 대주주들의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이슈 등으로 주가 상승폭이 부진한 상태다.

결국 신 회장은 모녀의 손을 잡게 됐다. 다음 달로 예정된 한미사이언스 주총에서 모녀와 신동국 회장이 추가 우호 지분을 확보해 전체 지분의 3분의 2 이상을 확보하면 정관 변경이 가능해진다. 업계에선 정관 변경을 통해 이사회 정원이 10명에서 11명으로 늘면서 신 회장과 임주현 부회장이 나란히 이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면 총 11명으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6대 5로 3자 연합 측이 우위를 점하게 된다.

이에 대해 한미사이언스는 “3자 연합이 추진하는 전문경영인 체제라는 것이 결국 회사의 실제 주인이 신동국 회장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과반의 동의만 얻게 되면 정관 변경이 필요한 이사진 증원은 실패해 5대 5로 교착 상태에 빠진다.

지주사 한미사이언스를 지배하는 형제 측은 한미약품 흔들기로 반격을 꾀하고 있다. 한미사이언스는 지난 8월 모녀 우호 인사로 알려진 박재현 대표를 사장에서 전무로 강등하는 한편, 한미약품에 박 대표와 신동국 회장(기타비상무이사) 해임을 안건으로 하는 임시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10월 2일 한미사이언스가 수원지방법원에 ‘한미약품 임시주주총회 허가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법정공방까지 예고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한미사이언스의 주총 요구에 대해 절차상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미사이언스가 먼저 임시주총을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한미약품은 “지난 5월 열린 한미약품 임시 주주총회는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의결 과정을 거친 후 진행된 바 있다”며 “한미사이언스 대표이사가 한미사이언스 이사회 결의 없이 독단으로 임시주총 허가를 신청한 것이라면 이는 절차적 정당성에서 문제가 될 소지가 있으므로 이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