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이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주요 경합지역 선거관리 담당자들이 ‘불복 사태’에 대한 대비를 서두르고 있다. 조지아주 “신분증 꼭 필요해”
지난 10월 21일 미국 국무부 외신센터 취재단의 일원으로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만난 선거관리 담당자들은 선거를 앞두고 국토안보부와 함께 모든 기계의 상태와 선거장비 보관 장소를 재점검하고 선거 사무원들을 위한 긴급 대응용 문자메시지 시스템을 갖추는 등 대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당시 조지아주에서 불과 1만1779표 차이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졌다. 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선거 불복과 의회의사당 난입사건으로 이어졌다. 스털링 책임자는 “모든 카운티는 선거결과를 11월 12일 오후 5시까지 인증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췄다”며 “실수가 발생할 수 있지만 실수를 잡고 수정하고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설계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개표 초기에는 자신이 이기고 있었는데 나중에 결과가 뒤집혔다며 부정선거론을 제기했던 조지아 최대 선거구 풀턴 카운티도 선거조작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플리퍼 템플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레지나 월러 풀턴 카운티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는 “2020년 이후 직면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보안 훈련을 강화했다”며 “모든 장소에 보안인력과 보안요원을 배치하고 조지아주에서 발급한 신분증을 반드시 확인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풀턴 카운티는 새 개표장에 대형 화면으로 실시간 집계결과를 공개하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선거규칙 놓고 치열한 다툼
이들은 공통적으로 시민들이 선거에 대해 갖는 불신이 커진 상황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스털링 책임자는 2020년 선거에서 조지아주가 새로 도입한 종이 투표시스템 초대 관리자였다. 그는 공화당원이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이겼다고 판단했고 이에 관해 기자회견을 열고 하원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증언했다. 이후 그에 대한 살해 등 테러 협박이 쏟아졌다. 허위신고를 받은 특수경찰 부대가 그의 집을 에워싸는 일도 있었다.
그는 “극단적으로 당파적인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거 불복) 행동이 미국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며 “이들에게 미국을 구하는 것이 틀렸다고 하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을 바꾸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조지아주 브라이언 켐프 주지사와 브래드 래펀스퍼거 총무장관은 공화당원이지만 선거조작설 대응 문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갈등하는 관계다.
스털링 책임자는 가장 우려하는 상황으로 “선거일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는 것과 양측이 동수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는 것”을 꼽았다.
미국의 대부분의 주는 한 표라도 더 많이 얻은 쪽이 그 주의 선거인단 모두를 가져가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하지만 네브래스카주와 메인주는 선거인단을 양당에 배분한다. 공화당이 우세한 네브래스카주에서 해리스 부통령이 1명을 확보하고 민주당 색채가 강한 메인주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1명을 확보하며 다른 주에서 확보한 선거인단 수가 매우 유사할 경우 양측의 선거인단 수는 똑같아진다. 이 경우 의회가 차기 대통령을 결정하게 돼 있으나 양쪽 모두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매체 액시오스는 이런 상황을 ‘퍼펙트 스톰’이라고 묘사했다. 재선거를 치러야 하는 상황으로 휩쓸려 갈 수도 있다.
조지아주에서 선거절차와 규칙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치열하게 진행되는 것도 이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노력이다. 조지아주 선거관리위원회는 최근 ‘수개표’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으나 법원이 ‘선거가 임박했다’는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도입이 무산됐다.
스털링 책임자는 이와 관련해 “(공화당 측 선관위원들이) 존재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하려 시도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것이 설령 좋은 아이디어였다 하더라도 이렇게 늦게 규칙을 변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2500개의 장소에 각각 3명의 개인이 참여해서 안전한 보관함에서 봉인된 투표용지를 꺼내 쌓아놓고 헤아려야 한다는 것은 약 150만 장에 가까운 투표용지를 7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뤄야 한다는 뜻”이라고 묘사했다. 사람은 부정확할 뿐 아니라 투표용지에 손대는 이들이 너무 많아서 새로운 논란의 여지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조지아주 선관위는 선거관리위원들이 선거절차에 대한 우려나 의혹이 있으면 선거 결과를 ‘인증’하기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하려고도 했으나 역시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린 상태다. 외부에서도 조지아주 선거 결과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가 강화되는 분위기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민주당)이 설립한 카터센터는 그동안 주로 아프리카나 남미 등에서 부정선거 감시 활동을 주로 해왔으나 이번 대선에서는 조지아주 풀턴 카운티 선거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센터는 선거 후 절차를 평가해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선거관리 담당자들은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진 상황에서도 좌절하기보다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털링 책임자는 “개인적인 공격이 많지만 이 업무를 나에게서 빼앗아 갈 수는 없다”며 “더 열심히 일하고 싶어질 뿐”이라고 말했다.
월러 매니저는 “전 세계의 눈이 (조작설에 휩싸였던) 풀턴 카운티를 지켜보지 않겠느냐”며 “우리는 결과가 어떻든, 누가 승리하든 명확하고 투명한 선거를 치러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종차별 논란에 소송전 잇따라
조지아주는 선거 과정을 보다 엄격하게 통제하는 규칙을 꾸준히 도입하고 있다. 특히 2021년 부재자 투표를 엄격하게 만들고 대면 사전투표(현장투표)를 확대하고 선거에 관해 주의회 통제권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 선거법(선거진실성법 SB202)을 통과시켰다.
조지아주는 또 비시민에게 투표를 허용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털링 책임자는 “조지아에서는 이름을 바꾸거나 결혼·이혼 시 관련 증명서가 있어야 하고 이로써 시민권을 입증해야만 한다”고 했다. 또 “운전면허 기록에 외국인 번호가 있는 경우 시민이 아니므로 별도 분류하고 (투표권을) 통제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러한 엄격한 시민권 확인 절차가 흑인이나 저소득층 등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의 유권자가 투표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은 스스로 운전면허증이나 여권을 이용해 자신이 누구이며 적법한 투표권이 있음을 증명하는 절차를 요구한다. 선거일은 휴일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증명서를 갖춰서 투표소를 방문하거나 우편투표를 하는 일은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기회비용(일당 등)을 요구한다.
흑인이나 히스패닉 등에서 상대적으로 지지를 많이 받는 민주당은 이런 절차를 강화하려는 전반적인 흐름을 ‘유권자 억압’이라고 통칭하며 더 많은 사람이 투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민주당계 민간단체인 ‘페어파이트액션’(공정한 싸움을 위한 행동)은 SB202가 트럼프 전 대통령 측의 입장에 기울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페어파이트액션 측은 조지아주 총무장관을 상대로 ‘유권자를 억압하지 말라’는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이들은 선관위가 선거 결과를 인증하지 않으려 할 경우에는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애틀랜타(미국)=이상은 한국경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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