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의존도 높은 폭스바겐
中 판매량 급감하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
중국 외 국가로 일찌감치 눈돌린 현대차와 대조적
현대차, 북미·유럽·인도 판매량 늘며 폭스바겐 맹추격
올해 3분기 영업이익 처음으로 폭스바겐 제쳐
2020년 10월 현대자동차그룹 총수가 된 직후 정의선 회장은 중국 시장을 놓고 큰 고민에 빠진다. 중국에서 판매량이 매년 급감했기 때문이다. 과거 현대차·기아에 중국은 기회의 땅이었다. 2016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연간 180만 대에 달하는 차량을 판매하며 해외 매출을 견인했다. 중국에서의 판매를 발판으로 ‘글로벌 톱5’ 완성차 기업으로까지 도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2016년 7월 양국의 관계가 급격히 냉각되며 위기를 맞는다. 당시 한국과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사드)’의 배치를 결정하면서 중국 내에선 거센 한한령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한한령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정 회장이 취임한 2020년에도 중국에서는 여전히 ‘한국 제품을 사지 말자’는 분위기가 만연한 상태였고 현대차·기아엔 좀처럼 반등의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다. 200만 대에 육박했던 판매량은 60만 대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현지 법인의 적자는 쌓여갔다.
결국 정 회장은 결단을 내렸다. 중국 내 생산공장을 매각하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하며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로 했다. 대신 미국·유럽을 비롯해 인도·중남미 신흥국 판매에 더욱 집중하며 중국 시장에서의 부진을 만회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이후 약 4년이 지난 현재 글로벌 자동차 업계 상황을 보면 앞서 정 회장이 세웠던 ‘탈중국’ 전략은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국 내 판매 비중이 높은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 로컬 브랜드의 급부상으로 인해 판매량이 급감하며 생존을 걱정해야 할 위기에 처했다.
현대차·기아의 경우 일찌감치 중국 외 국가로 눈을 돌려 선택과 집중을 해온 덕분에 판매량이 계속 늘고 있어 머지않아 세계 자동차 판매 순위를 뒤바꿀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현대차는 작년 기준으로 세계 판매 3위였다.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폭스바겐그룹(작년 2위)을 추월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되고 있다. 순위 바뀜은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제기될 만큼 양사의 상황은 극명하게 엇갈린다.
무너진 자동차 명가폭스바겐은 현재 창사 이래 최대 위기다. 중국 시장에서 판매가 부진한 것이 원인이다. 실적이 추락하며 독일 내 공장 세 곳의 문을 닫기로 했으며 수만 명에 달하는 직원들을 해고하기로 결정한 상태다. 전 세계 도로 위를 누비며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로 불렸던 폭스바겐의 몰락이다.
뾰족한 수도 없어 보인다. 폭스바겐의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40%에 달한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중국은 폭스바겐이 가장 큰 수익을 올리던 최대 시장이었다. 문제는 중국인들이 더 이상 폭스바겐과 같은 수입차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중국 자동차 시장이 갖는 특징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가 전기차 ‘캐즘’을 겪고 있지만 중국은 예외다. 일부 지역에서 내연기관차 판매를 금지하는 등 정부의 적극적인 친환경차 정책에 따라 전기차 판매가 빠르게 늘고 있다. 현재 중국의 전기차 침투율(EV Penetration Rate)은 약 50%로 추정된다. 신차를 구매하는 이들 중 절반이 전기차를 구매한다는 얘기다.
유럽(약 20%), 미국(약 10%)과 비교해도 훨씬 높다. 중국인들의 전기차 선호 현상은 과거부터 내연기관차를 중심으로 중국 시장에 침투했던 폭스바겐과 같은 완성차 입장에선 큰 타격이다.
둘째는 갈수록 향상되는 중국 자동차 브랜드의 경쟁력이다. 폭스바겐도 당연히 전기차 모델을 중국서 판매한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과 경쟁이 되지 않는다. 비야디 등 수많은 전기차 기업들이 1000만원대부터 살 수 있는 저가형 모델을 내놓고 있어서다. 가격도 저렴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국 전기차 기업들의 성능과 디자인도 개선되고 있으며 또 중국인들 사이에서 ‘자국 브랜드의 제품을 사자’는 애국 소비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중국승용차협회(CPCA)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외국 업체들의 합계 점유율은 약 33%였다. 2019년만 해도 65.9%에 달했던 점유율이 이렇게 하락했다. 과거엔 글로벌 완성차들의 기회의 땅이었던 중국이 현재는 이들의 무덤이 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메리 바라 GM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투자자들에게 “중국에서 돈을 버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전하기도 했다.
인재 영입과 투자로 제품 업그레이드폭스바겐도 이를 모를 리 없다. 한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의 부진을 만회할 만한 방법을 찾기 어려워 직원들을 해고하고 독일 내 공장까지 멈춘 것 아니겠냐”고 했다.
현대차·기아의 분위기는 폭스바겐과 대조적이다. 중국에서 한발 물러선 현대차는 점차 중국 비중을 줄여나갔다. 2016년 20%에서 현재는 약 4%까지 떨어졌다. 중국 대신 공략에 나선 곳은 성장 잠재력이 가장 높다고 평가받는 인도였다. 인도는 일본 스즈키가 과거부터 50%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하며 최강자로 군림해왔다. 경쟁이 만만치 않은 시장이었지만 중국에서도 사실상 발을 뺀 마당에 인도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인구수(약 14억 명)로 중국까지 제친 인도는 아직 자동차 보급률은 전체 가구의 8.5% 수준에 불과하다. 매년 빠르게 성장하며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고 있고 인구도 워낙 많다 보니 자동차 시장 규모는 중국, 미국에 이은 세계 3위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약 500만 대의 자동차가 인도에서 판매됐다. 이런 인도 시장에서 판매량을 끌어올려 중국에서의 부진을 만회하겠다는 게 현대차·기아의 계획이었다.
현지에 생산공장을 짓고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며 현대차·기아를 널리 알리는 데 집중했으며 서서히 점유율을 높여 나간다. 선택과 집중 전략은 주효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인도에서 사상 최대 점유율인 20%(현대차·기아 합산)를 기록하며 일본 스즈키(약 40%)에 이은 2위로 올라섰다. 전망도 밝다. 현대차 인도법인은 지난 10월 인도에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약 190억 달러(26조4822억원)로 기업가치를 평가받고 인도 IPO 역사상 최대인 33억 달러(약 4조6008억원)를 조달하기도 했다. 현대차는 이를 통해 인도에 더욱 집중하기로 했다. 생산공장을 추가로 건설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가 인도에서의 판매량을 더욱 끌어 올릴 경우 판매량 측면에서도 충분히 폭스바겐을 제치고 2위에 등극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물론 이런 전망이 나올 수 있는 것은 현대차·기아의 기술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정 회장 취임 이후 현대차·기아는 수많은 업계의 유명 디자이너와 기술자들을 꾸준히 스카우트했다. 자동차 성능 및 내·외관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다.
미래 자동차 시장 선점을 위해 전기차 개발에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이를테면 정 회장은 취임 후 ‘모터’가 아닌 ‘모빌리티’ 기업으로의 전환을 선포했다. 연구개발(R&D) 끝에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빠르게 구축하며 경쟁사들보다 빨리 혁신적인 내·외관의 전기차를 만들어냈다. 성과도 기대 이상이었다. E-GMP에서 만들어낸 아이오닉5와 같은 전기차는 신선한 디자인과 성능으로 주목받으며 글로벌 유력 매체들이 선정하는 각종 상을 휩쓸었다. 이런 수상 실적을 앞세워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기술력을 인정받은 현대차·기아는 테슬라에 이어 미국 전기차 시장점유율 2위를 기록 중이다.
기술로 캐즘도 이겨냈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술 개발에 매진한 끝에 현대차·기아는 내연기관차부터 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까지 만들 수 있는 세계 유일의 완성차 기업이 됐다”고 전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전기차 판매가 부진해지자 다양한 하이브리드를 신차를 앞세워 실적 개선에 성공한 바 있다. 올해도 다양한 차종이 판매 호조를 보이는 상황이다. 그 결과 현대차·기아의 올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사상 처음으로 폭스바겐을 뛰어넘기도 했다.
이 여세를 몰아 중국 시장에도 다시 도전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제네시스 브랜드와 같은 고급 전기차 위주로 중국 시장 공략에 다시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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