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3회 해외 유학 박람회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제53회 해외 유학 박람회 현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아무리 여유 있어도 지금 같은 고환율 시기에 유학비를 대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올해 두 자녀가 미국 동부 사립대에 입학한 A 씨의 말이다. A 씨는 약 반년 동안 쌍둥이 자녀의 학비와 기숙사비, 과외활동비 등으로 약 1억5000만원을 지출했다. 1년이면 총 3억원 정도다. 중학생이던 아이들을 처음 미국에 보냈던 4년 전 원·달러 환율은 1200원 정도였다.

A 씨는 “올해는 신입생이라 학교 기숙사에 머물고 내년부터 친구들과 나가 살면 지출이 조금 줄 수는 있다고 한다”며 “그래도 환율이 좀 떨어졌으면 한다”고 토로했다.

올해 들어 환율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유학비용 역시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특히 유학 선호 지역인 미국, 영국 등의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유학생과 학부모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그러나 지난 IMF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당시보다 환율 문제로 귀국할 학생들은 훨씬 적을 전망이다. 외환예금 등을 통해 환율 변동 리스크에 대비한 사례가 늘었기 때문이다. 3~4년 새 20% 오른 美 달러
부자들도 등골 휘어…고환율에 치솟는 유학비용[비즈니스 포커스]
12월 11일 기준 원·달러 환율은 1430원 선을 유지하는 중이다. A 씨가 자녀들을 미국에 보낸 당시보다 20% 가까이 올랐다. 1년 동안 써야 할 돈이 5000만~6000만원 증가한 셈이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미국은 유학생이 많이 가는 나라로 매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미국 유학생 수는 4만775명으로 전체 유학생 중 무려 33%를 기록했다. 유학생 3명 중 1명 꼴이다.

미국은 대학 학비가 비싼 데다 건강보험, 생활비, 항공비가 두루 비싸 1년에 유학생 1명당 ‘억대’의 비용이 들어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보딩 스쿨’이라 불리는 기숙사 고등학교도 학비가 비싼 것은 마찬가지이며 공립학교에 다니더라도 높은 비용을 내고 홈스테이를 하거나 주택에서 자가용으로 등학교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게다가 유학생들이 통상 발급받는 F1 비자로는 근로활동을 할 수가 없다. 그나마 대학생은 학내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지만 용돈 벌이 수준이다.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일명 ‘금수저’만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다.

그런데 하필 7개 주요 유학 국가 중 최근 가장 환율 변동이 컸던 곳이 미국이다. 지난 1년간 최저 환율과 최고 환율 간 차이가 11.3%가량 났다. 1200원대에서 1400원을 훌쩍 넘긴 것이다.

악기 전공자인 한 학생은 서울 소재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유학을 알아보면서 되도록 장학금을 주는 곳을 찾으려 하고 있다. 집안이 유복한 편이지만 환율 상승으로 높아진 유학비용은 그에게도 부담이다. 치솟은 미국 유학비용 때문에 다른 나라에 가는 것도 고려 중이다.

그는 “줄리아드에 가면 좋지만 1년 학비만 1억원 정도”라며 “아직은 어학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미국 학교나 독일 유학 등도 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IMF·금융위기보다는 덜해
중국, 일본 등 상대적으로 가깝고 비용이 덜 드는 이웃나라 외에도 예술이나 철학으로 유명하고 학비가 저렴한 프랑스, 독일도 인기국가에 속한다. 그 외 대부분은 영미권을 선호한다. 특히 어릴 때에는 캐나다, 호주 등 거주환경이 쾌적하고 상대적으로 안전한 나라에 조기유학을 보내는 사례도 많다.

국내에 조기유학이 일반화하면서 환율 변동 이슈에 미리 대비하는 학부모들도 증가했다. 미리 목돈을 환전해두거나 외화예금 또는 외화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외화예금은 금융위기 이후 수출액이 늘면서 기업예금 위주로 성장했지만 안정성 자산 투자 등을 목적으로 한 개인예금도 늘고 있다. 일부 직장인들은 주재원 시절부터 거주자외화예금에 가입해 달러화 등을 모아뒀다가 나중에 자녀 교육을 위해 지출하기도 한다.

외화보험은 주로 달러로 설계돼 있는데 보험료를 달러로 납부하고 달러로 보장받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 환율 변동성이 커지면서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이 11월까지 판매한 달러보험 규모는 9488억원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판매한 5693억원보다 60% 늘었다.

한 금융권 직장인은 “IMF나 금융위기 때는 지금보다 환율이 훨씬 폭등했고 갑자기 부모님 사업이 기울어서 유학을 포기하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요즘은 그런 분위기도 아니고 부유층들이 유학자금으로 쓸 돈을 몇억씩 미리 환전해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지 ‘취뽀’ 하면 ‘대박’
그렇다고 요즘 유학생들 사정이 마냥 녹록했던 것만은 아니다. 지금 유학생 상당수는 ‘불운한 유학 세대’로 꼽힌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학비를 내고서는 학교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귀국해 온라인 강의 등을 들으며 공부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일부 성공사례도 있다. 외국인 신분으로 졸업하자마자 현지 기업에 입사하면서 고환율 혜택을 보게 된 것이다. 영국 파운드화도 미국 달러화 못지않게 환율이 급등한 외화로 꼽힌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현지 물가까지 가파르게 오르면서 유학생들은 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한 영국 유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는 “올 하반기 아이가 현지 유명기업에 입사해 저렴한 값에 원화를 사둘지 고민 중이라고 한다”며 “상반기까지 여러모로 힘들었는데 고생 끝에 낙이 오는 듯하다”고 말했다.


민보름 기자 brmin@hankyung.com